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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18), 175-200

[특집: 고 전상운 전 회장(1932-2018) 추모] 학술 여행 동반기: 전상운 회장을 추념하며

by 남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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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여행 동반기: 전상운 회장을 추념하며

남문현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1. 과학문화재 지정 산파역을 만나다

1985년 8월 4일. 『조선일보』는 “자격루(自擊漏) 등 과학 문화재 3점 첫 국보(國寶) 지정”이라는 제목과 함께 “자동 시보 장치 달린 물시계 자격루”라는 부제로 229호 보루각 자격루 사진을 머리기사로 실었다[사진 1-1]. 이것 외에 10면에는 “잊었던 우리의 옛 「첨단 科學」… 뒤늦게 보물(寶物)된 보물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사진 1-2], 제230호 자명종 혼천(渾天) 시계[사진 1-3]와 주요 보물을 설명과 함께 실었다. 8월 6일 『조선일보』에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날로 높아가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그늘에 가려있던 과학 문화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 같아 기쁨을 감출 길이 없다”는, 문화재 지정에 산파역을 한 전상운 문화재위원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 『경향신문』에도 국보 지정의 의의와 과학 문화재 보존과 복원의 필요성을 역설한 기사가 실렸다[사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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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과학 문화재 국보 지정과 전상운 박사 인터뷰 기사 (순서대로 1, 2, 3, 4)

앞의 기사는 1985년 6월 8일에 대한전기학회에서 발표한 “15세기 한국의 물시계에 대한 제어공학적 해석”이라는 논문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부심하던 내게 일말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1만 원 권 지폐(1979년 6월 15일에 한국은행 발권) 전면에 세종대왕 영정과 함께 들어있는 “물시계” 그림의 실물을 찾아 덕수궁 광명문 안에 진열된 보루각 자격루를 관찰하였지만, 저절로 시각을 알렸다던 ‘자격루’라 할 만한 시보 장치는 없고 물 항아리 다섯 개만 덩그러니 배열돼 있었다. 1984년 10월 24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방문하여 자격루 복원을 논의하던 중에 국회에서 자격루와 옥루를 복원하라는 지시를 받은 국립과학관 이종수 부장이 보낸 임봉재 학예사가 들어와서 자격루를 복원하는 분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동석했던 은사 스타크(Lawrence Stark) 교수와 박종국 관장은 자동제어 공학을 전공한 내가 좋겠다고 소개하면서 박 관장은  『국역증보문헌비고ㆍ상위고』를 주면서 역대 왕조실록과 함께 읽어 보라고 하였다. 이어 10월 26일에 연세대 나일성 교수를 만나 자격루 이야기를 드렸더니 Carl W. Rufus 교수가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RASKB)에서 1936년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을 모은 “Korean Astronomy” 복사본 한 권을 주면서 한 번 연구해 보자고 하셨다. 앞서의 기사와 학술 정보는 자격루 복원ㆍ제작과 지난 30여 년 동안 나의 한국기술사 개척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들어있는 “중성기(中星記)”는 시간 측정의 기본을 제공하고, 자명종은 자격루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유물은 내게 중요한 연구 도구였다.

전상운 회장님(이하 “전 회장”)과의 학술 여행은 1989년 11월 4일 계명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회 추계 발표회에 내가 발표한 “경점시보(更點報時) 시스템”을 지정 토론해 주면서 시작되었다. 1986년 송상용 교수님 권유로 회원이 된 이래 첫 번째 발표였다. 박성래 교수님은 이듬해(1990) 8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제6회 중국 과학사 국제회의(6th ICHSC)가 열린다고 하면서 참가를 권유하였다.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전상운 박사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나일성 부회장, 박종국 이사, 유경로, 손보기 고문, 이용삼, 정재훈(문화재관리국장), 세종조 이천(李蕆), 장영실 후손과 함께 1990년 8월 19일 덕수궁 광명문(光明門) 안 보루각(報漏閣) 자격루(自擊漏) 앞에서 자격루 연구회(自擊漏硏究會) 창립 기념 사진을 찍었다.[1] 전 회장과 함께 한 여행기는 회장의 회고록에 일부 실려 있지만, 이 가운데 1990년부터 시작된 나와의 국내외 과학사 관련 여행기는 소략하여 나의 스크랩북 속에 남아있는 사진을 꺼내 소개하기로 하겠다.

2. 제6회 중국 과학사 국제회의(6th ICHSC, Cambridge, 1990. 8. 2-6)

1990년 봄에 송상용 선생이 추천하여 투고한 Korea Journal 1990년 7월호 표지에는 나의 첫 번째 자격루 조감도가 실렸다. 이 논문을 들고 8월 2일 케임브리지 대학 로빈슨 칼리지(Robinson College)에 도착하여 개막식에서 한국 대표단은 전 회장의 인솔로 Joseph Needham(중국명 李約瑟, 존칭 李老)을 뵙고 90회 생신을 축하하였다[사진 2-1]. 처음 뵌 그의 형형한 눈빛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8월 5일 런던대학 과학사학과 Rattansi 교수 주재로 열린 ‘Water-clock Symposium’에서  나는 “A Reconstruction of Double-hour Annunciating System of the King Sejong’s Striking Clepsydra”를 발표하였다. 아랍ㆍ이슬람 물시계 전문가인 Donald Hill은 “Arabic Water-clock”, 중국 북송 시대 수운의상대(水運儀象臺) 연구가인 Sleeswyk은 “Regulating the Water-operated Celestial Armillary Sphere and Globe”를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서 The Hall of Heavenly Records (朝鮮“書雲觀”天文儀器與計時機, HHR)의 공동 저자인 John Combridge 선생은 내게 자격루와 자명종 저술 경위를 들려주었다[사진 2-2]. 논문을 증정하였더니 그 해 Antiquarian Horological Society 학회지 Antiquarian Horology 12월호 표지에 나의 자격루 조감도가 실렸다고 축하한다고 하면서 한 부를 보내 주었으며, 1996년에는 졸저 『한국의 물시계』 (1995)도 학회지에 소개했다.[2] 또한 Kensington Science Museum의 수학 분야 학예사 Judith Fields가 참석하여 자격루가 복원되면 전시를 주선하겠다고 꼭 알려 달라고 하였다. 이틀 뒤에 박물관을 찾으니 친절하게 안내하고, 기계 분야 학예사 Tom Wright (Antikytera 복원가)와 하이드 파크에서 오찬을 같이 하였다.[3] Hill은 이슬람 기술자 Ibn al-Jazari가 1206년에 아랍어로 지은 kitab fi mar’ifat alhyal al-handasiya(기발한 기계 장치에 관한 지식 백서) (Dordrecht, 1974) 한 권을 보내주었다. 폐회식에서 Hill 부부, 1989년에 Needham과 재혼한 Robinson College Fellow Lu Gwei-Djen 魯桂珍도 만났다. HHR 저자 가운데 Major를 뺀 3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사진2-3]. 폐회식 날 드린 인사로 세기의 거인과 만남은 끝났지만, 1995년 5월 27일 열린 Joseph Needham(1900-1995) 추모강연회(제38회 전국역사학대회, 한양대학교)에서 사회를 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의 저술은 아직 나의 서가에 꽂혀 있다. 이 회의를 끝으로 국제동아시아과학ㆍ기술ㆍ의학회의(ISHEASTM)를 발족하여 回次를 승계하기로 하고 Nathan Sivin(U. Penn)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였다.[4] 이 회의에 참석하여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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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위에서부터 1. 90회 생신 축하. Needham (중앙), 시계방향으로 전상운, 남문현, 송상용, Baloch(파키스탄), 간호사, 박성래 선생은 일부만 보인다(1990. 8. 2) 2. Combridge 선생(1990. 8. 6) 3. 魯桂珍, Hill 부부(1990. 8. 6).

3. 북경 고관상대(古觀象臺) 탐방과 중국 과학기술사 국제학술연토회

한국과학사학회가 1992년 8월 25일부터 중국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서 열리는 중국 과학기술사 국제학술연토회(中國科學技術史國際學術硏討會)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자격루 연구회에 참가를 권유하였다. 전 회장이 한·중 과학기술사 학술 교류의 물꼬를 트고, 조선조 천문·역산과 계시기 연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자는 지시를 하여 나는 북경 고관상대(古觀象臺) 崔石竹 대장(臺長)과 교섭하였다. 송상용(한림대, 단장), 전상운(성신여대), 유경로(서울대), 김상호(서울대), 장회익(서울대), 모혜정(이화여대), 그리고 나는 1992년 8월 21일 북경고관상대를 방문하여 崔振華 북경천문관(北京天文館) 관장, 崔石竹 대장과 인사를 나눈 후 청대(淸代) 흠천감(欽天監) 감부(監府) 자미원(紫微垣), 유물 전시관을 비롯한 지상 시설과 17, 18세기에 Ferdinand Verbiest(중국명 南懷仁)와 전교사(傳敎士)가 만든 8종의 천문 의기를 관찰하였다. 관찰이 끝나고 앞으로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곳은 홍대용(洪大容) 선생을 비롯하여 조선 사신이 오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으나, 당시 법이 금하여 오르지는 못하므로 문지기에게 인삼과 종이를 선물하고 간신히 밤에 마당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황제가 사는 자금성보다 높은 관상대에 오르는 외부인은 처형당했다고 한다. 유 선생이 홍대용 선생의 방문 기록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제일 먼저 오른 분은 역시 전 회장이었다[사진 3-1]. 崔 대장은 우리를 관상대 꼭대기로 안내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사진 3-2]. 유경로 선생은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탁본을 사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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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북경 고관상대. 위에서부터 1. 전상운 회장. 2. 앞줄 왼쪽부터 모혜정, 崔振華, 김상호, 유경로. 남문현, 둘째 줄 전상운, 송상용, 장회익, 가이드 미스 김, 崔石竹, 맨 뒷줄 콘덕터 李士敏. [기형무진의(璣衡撫辰儀) 앞에서, 1992. 8. 21].

북경에서 자금성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사진 4-1]에 들어가서 청대에 사용한 종표관(鐘表館)의 동호적루(銅壺滴漏) [사진 4-2]를 관찰하였다. 천안문 광장 앞 중국역사박물관(현 중국국가박물관)에서 1316년(延祐 3) 작두(作頭) 세운행(洗運行), 두우성(杜干盛)과 남해현(南海縣) 해리(該吏) 진용화(陳用和) 등이 제작하여 광주(廣州) 공북루(拱北樓)에 설치한 연우누각(延祐漏刻)을 관람하였다. 이것은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온전한 계시기(計時器)로서 역사성과 과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송원(宋元) 시대에 왕보(王普)가 제안한 삼급보상식만류형(三級補償式漫流型) 누각(漏刻, 물시계)을 구현한 것으로서 원대이래 명ㆍ청대까지 사용한 중국 표준 계시기의 원형이다[사진 4-3]. 세종대왕이 장영실(蔣英實) 등을 연경(燕京)에 파견하여 관찰한 결과로 제작한 경점지기(更點之器)의 모범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나의 중국 여행 목적의 반은 이룬 셈이다.

서안(西安)에서는 박물관과 진시황 병마용(兵馬俑), 반파유지(半坡遺址)를 탐방하고, 계림(桂林)에서 유람한 뒤, 상해에 도착하여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였다. 공교롭게도 거기서 한ㆍ중 수교 발표를 들었다. 8월 24일 항주(杭州) 서호빈관(西湖賓館) 제일 넓은 객실에 짐을 풀었다. 이 방은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때 묵었던 방으로 수행원이 머물 부속실도 달려있어 전 회장에게 배정되었으나 혼자 쓰기에 너무 넓다고 송 선생과 나에게 양보하였다. 오후에는 송상용, 유경로 선생과 함께 시외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소흥(紹興)의 노신(魯迅) 고가를 방문하였다. 두 분은 노신의 단골 함형주점(咸亨酒店)도 찾아 한 잔 하였다고 한다. 저녁에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中國科學院自然科學史硏究所) 杜石然, 陳美東, 薄樹人, 陳久金 등이 내방하여 환담하였다. 동행한 분들은 구면이지만 나는 초면이었다. 25일 오전에 절강대학(浙江大學) 소일부과학원(邵逸夫科學院) 국제 회의실에서 개회식이 열렸다[사진 5-1]. 앞서 만난 자연과학사연구소 인사를 비롯하여 중국과기사학회(中國科技史學會) 이사장 盧嘉錫, 북경과기대(北京科技大) 柯俊, 니덤 연구소(李約瑟硏究所) 何丙郁 소장, Durham 대학 Richard Stephenson, 일본의 야노 미치오, 미야지마 가츠오, 하시모토 케이조, 대만의 黃一農 (新 淸華大) 등이 참석하였다. 何 소장은 치사에서 92세 李老(Needham)의 근황과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SSC) 출판 근황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나는 “King Sejong’s Automatic Striking Water-Clock (世宗 自擊漏)”란 논문을 제출하고 29일에 일반 발표를 기다리면서 통역인 상해 천문대(上海天文臺)의 江曉原(현 上海交通大) 연구원을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절강대(浙江大) 張汎 교수가 자기가 통역할 것이라고 하면서 28일 오전에 전체 부회(plenary session)에서 발표를 준비하자고 하여 어리둥절하던 터에 江 연구원이 찾아왔다. 안내를 맡은 소흥 보건대(紹興保健大) 鄭紀宣 교수가 와서 연사가 바뀌었다는 학술위원회 부주임 何丙郁의 말을 전하여 江 교수와 어색한 장면을 수습하였다. 아무튼 何丙郁의 사회로 한국을 대표하여 발표하였다(사진 5-2). 유경로 선생을 비롯하여 어제 저녁에 만난 분들이 훌륭한 발표였다고 악수를 청하였다. 이때 만난 학자 가운데 생존한 이와는 지금까지도 교류하고 있다. 항주일보(杭州日報)에서는 회의 특집에 게재하겠다고 하여서 취재 동의서에 서명하였다. 중국과학기술대학(中國科學技術大, 合肥, 安徽省)의 李志超 교수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가 손수 만들었다는 궁루(宮漏)를 함께 연구하지며 논문을 내게 주었다.[6] 발표가 끝난 뒤 절강대학 蔣景陽 교수가 자기는 절강 동양현(東陽縣) 장점촌(蔣店村) 출신인데 자격루를 제작한 장영실 가문에 대하여 원로들에게 문의해 보겠다고 자청하였다.[7] 나의 발표를 전해 들은 소주 천문의기 복원연구소(蘇州天文儀器復元硏究所) 陳凱歌 소장이 안내하여 귀로에 현무관(玄武館, 현재 夫子廟)에 소장된 송대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를 새긴 비석을 관람하였다[사진 4-4]. 가장 감격한 분은 전 회장과 유경로 선생이었다.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드렸다. 陳 소장이 건륭제(乾隆帝)가 남순(南巡)할 때 마다 들렀다는 왕사가 주점(王四家酒店)에서 오찬을 내었다. 오후에 한산사(寒山寺)를 관람하고 상해를 거쳐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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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순서대로 1. 자금성 고궁박물원에서 전 회장과 남문현. 2. 종표관(鐘表館)의 동호적루(銅壺滴漏). 맨 위부터 단계적으로 일천호(日天壺), 야천호(夜天壺), 평수호(平水壺), 수수호(受水壺). 3. 연우누각(延祐漏刻). 1316년 광주(廣州)에서 제작, 앞의 동호적루와 같은 배열이며, 수수호(受水壺) 뚜껑 위에 12시 시각 눈금을 새긴 동척(銅尺) 하나를 삽입하여 수수호에 띄운 부주(浮舟)에 꽂은 막대가 떠오르면서 눈금을 지시하여 시간을 측정하였다. 항아리마다 하부에 용두(龍頭)가 달렸다. 높이가 2.64m이다(자격루는 5.6이다). (1992. 8. 22) 4. 소구지(蘇州市) 현무관(玄武館, 현 蘇州博物館)에 전시된 남송(南宋) 순우(淳祐) 연간에 석각한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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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위에서부터 1. 중국 과기사 국제연토회의 개막식. 왼쪽 아래가 전 회장(1992. 8. 25) 2. 좌장 何丙郁, 통역 張汎, 발표 남문현(1992. 8. 28) 3. 전 회장의 북경 고관상대 기념사진 증정(1992. 9.).

보름에 걸친 중국 여행을 마무리하는 해단 모임에서 전 회장과 송상용 단장에게 북경 고관상대와 계림에서 찍은 사진을 증정하였다(사진 5-3). 전 회장이 방문지 기념물 현판이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습관이라고 해서 찍어드린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중국 여행은 내가 겪은 여행 가운데 가장 재미있던 여행의 하나로 기록되었다.[8]

4. 한중 과학유물 조사단

1) 자금산 천문대(紫金山天文臺) 창대(創臺) 60주년 기념식과 남경 천문역사박물관(南京天文歷史博物館) 개관식

1994년 7월부터 한국기술사연구소(소장 남문현)는 앞서 4월에 과학기술처가 공모한 특정연구개발사업에 “전통 과학기기의 복원기술 개발”이라는 과제가 선정되어 자격루,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및 척도 기기 복원기술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 해 2월에 남경과 하문시(廈門市) 동안현(同安縣) 소재 『신의상법요(新儀象法要)』의 저자 소송(蘇頌)의 고거(故居)를 방문했을 때 자금산 천문대(紫金山天文臺, 紫臺) 徐振韜 교수가 9월에 천문대 안에 “남경 천문역사박물관(南京天文歷史博物館)”을 개관하는데 한국에서 문화재 관리국장과 한국과학사학회 등 관련 인사를 초청하고 싶다고 하였다. 과제에 참여한 교수들은 학기 중이라 어려우니 과제에 자문 위원으로 초빙한 전상운, 나일성, 박성래 선생과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세 분에게 동행하자고 하였다. 또한 1993년 8월 북경 고관상대 국제회의 때 자연과학사연구소(소장 廖克)는 한국기술사연구소와 협력 관계를 갖고 싶다는 의향을 밝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하고 남경에 갔다가 북경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떠나기 전에 나일성 교수가 못가겠다고 하여 전 회장, 박성래 선생 부부와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을, 우리 연구소는 서예가 정도준 선생에게 “개물성무(開物成務)”라는 휘호를 받아 기념품으로 가지고 갔다. 9월 19일에 상해에서 남경행 자금산호(紫金山號, 특급열차)로 남경에 도착하여 동남대학 외빈초대소에 들었다. 저녁에 통역을 겸하여 안내를 맡은 남경대 문성재 선생과 천문대의 凌榮福 연구원이 함께 와서 개관식장에서 축사를 해달라고 하였다. 전 회장과 박 선생에게 상의 드리니 내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밤새 문안을 작성하여 문 선생이 번역하고, 다음날 개관식장에서 축사를 하였다[사진 6-1]. 끝난 뒤에 구면인 중국과학원 王綬琯 원사, 李元 교수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사진 6-2]. 이어 자금창대(紫臺創臺)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다[사진 6-3]. 張棋和 대장(臺長)은 특별히 우리 일행을 청중에게 소개하였다. 식이 끝나고 천문대는 남경 쌍문루빈관(雙門樓賓館)에서 열린 기념 오찬에 일행을 초대하였다. 기념으로 차림표에 돌아가며 서명하였다[사진 6-4와 5]. 밤에는 어스름한 달빛아래 월계수 향에 취하여 천문대의 명대(明代) 유물을 관상하고, 다음 날 남경박물원에서 명대 동호적루(銅壺滴漏) 누기(漏器)를 관람하였다[사진 6-6]. 이로써 원ㆍ명ㆍ청대 누각(물시계) 유물을 모두 관찰하였다.[9] 명대 과거 시험장, 태평천국 기념관(太平天國紀念館), 부자묘(夫子廟)를 관람하고, 현무호(玄武湖)를 유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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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남경천문역사박물관 개관식과 자금산천문대창대 기념식.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축사(남문현, 1994. 9. 20). 2. 기념사진: 왼쪽부터 이미혜, 박성래, 박옥선, 王綬琯, 전 회장, 李元, 남문현, 홍용선. 3. 기념식장. 4와 5. 南京雙門樓賓館 午餐記念 차림표(일행과 통역 문성재, 典禮 안내인 凌榮福, 謝曉之, 陳紅玲 연구원 서명). 6. 明代 銅壺滴漏 日天壺 유물(南京博物院, 1994. 10. 21).

2)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

9월 22일 오전에 북경에 도착하여 오후에 자금성[사진 7-1과 2]을 관람하고, 이어서 북경 천문관을 관람하였다. 저녁에는 노사다관(老舍茶館)에서 만찬을 겸하여 경극(京劇)을 관람하였다. 신기하고 지루하였다. 23일 오전에 부인 일행은 金鮮女 여사(과학의기연구소 연구원)의 안내로 팔달령(八達嶺) 장성(長城)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전, 박 선생과 함께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한·중 두 연구소 간 연구 협약식을 갖고[사진 8-1], 한국기술사연구소 개소식에 축사를 보내준 자연과학사연구소 초대소장 席澤宗 원사에게 준비해간 타이핀을 선물하였다[사진 8-2]. 廖克 소장이 안내하여 도서관에서 귀중본을 열람하였다[사진 8-3]. 고색창연한 건륭제 후손 저택이었던 부왕부(斧王府)에서 연구소 임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중경사천소동천주가(重慶四川小洞天酒家)에서 기념 오찬을 하였다. 자연과학사연구소 기술사 연구실장 고 吳熙慶 교수의 영식(令息) 吳龍燮 선생이 통역하였다[사진 8-4]. 오후에는 중국역사박물관(中國歷史博物館) 학계실장(學藝室長) 李强의 안내로 천안문 광장 앞 박물관을 관람하였다[사진 8-5]. 저녁때 부인 일행이 돌아와서 함께 북경 고관상대를 방문하여 관상대 마당과 꼭대기에 남아있는 유물을 관람하였다[사진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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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자금성. 위에서부터 1. 九龍壁. 2. 皇極殿 앞. 건물 좌, 우에 각각 ○표한 것이 嘉量(度量衡器)과 日晷(北京에 온 傳敎士가 17세기에 제작한 세종 懸珠日晷式 해시계). 英祖때 磻溪 柳馨遠은 이것을 본떠 昌德宮 仁政殿 앞에도 嘉量과 日晷를 설치하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가량과 일구는 『書傳』 “舜典”에 “同律度量衡 恊時月正日”에서 유래한 帝王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은 우리 일행, 古觀象臺 연구원, 오른쪽 끝이 통역 吳龍燮이다(1994. 9. 23).

3) 북경 여유(旅遊)

9월 24일 오전 북경 서쪽에 위치한 이화원(頤和園)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이화원 동쪽에 건륭제가 바로크식으로 건축한 원명원(圓明園)을 관람하였다[사진 9-1]. 이곳은 1709년 강희제부터 1860년까지 황제가 기거하며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이후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하여 이곳을 약탈ㆍ방화하여 원명원은 폐허가 되었다.[10] 저녁에는 답례로 한국기술사연구소에서 천안문 앞 북경오리 전문점 전취덕(全聚德)으로 자연과학사연구소의 席澤宗, 廖克 소장, 陳久金 교수 부부, 고관상대 대장과 일행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다[사진 9-2]. 만찬 뒤에 장성대반점(長城大飯店) 앞에 벌려 놓은 야시장을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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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자연과학사연구소, 역사박물관과 고관상대 방문.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1. 연구협약식. 통역: 孫小淳 교수 (북경, 1994. 9. 23). 2. 선물 증정. 3. 도서관 열람. 4. 오찬장 앞 기념사진, 왼쪽부터 남문현, 廖克, 전상운, 席澤宗, 박성래, 薄樹人, 陳久金, 뒷줄 왼쪽부터 孫小淳, 王渝生, 劉鈍, 吳龍燮. 5. 역사박물관. 가운데 선 분은 李强 학예관. 6. 고관상대. 청대 제작 圭表 앞. 가운데 선 분은 金鮮女여사(199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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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北京 旅遊. 위에서부터 1. 圓明園에서. 2. 만찬회(北京 全聚德, 1994. 9. 24).

5. 경덕진(景德鎭)과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제2회 동양천문학사회의(ICOA-2)가 1995년 10월 16일부터 3일간 강서성(江西省) 응담시(鷹潭市)에서 열렸다. 나는 과기처 과제로 설계한 세종 간의대 “Korean Sun-and-stars Time-determining Instrument, Ilsong Jongsi-ui”를 전상운, 이용삼(충북대) 교수와 연명으로 발표하였다[사진 10-1].[11] 회의 중에 용호산(龍虎山)에 자리한 도교본산(道敎本山)을 관람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19일 아침 일행은 버스로 북송 시대 건설한 경덕진(景德鎭)에 도착하여 유서 깊은 도자기 공장을 관람하면서, 도자기 감식에 안목을 지닌 전 회장의 추천으로 작은 차 주전자를 하나 샀다. 이곳은 도자기 만드는 데 쓰는 토질이 좋고 가까이 구강(九江)의 수로를 거쳐 해로로 각지에 도자기를 운송하기 적합하여 북송 경덕(景德) 연간(1004-1007)에 도자기 가마[陶窯]를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전해오는 비사(祕史)를 간직한 곳이라고 하였다. 사연인즉, 청대 옹정제를 거슬려 멸문지화를 당한 여유량(呂留良)의 넷째 손녀 여사랑(呂四娘)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화공(畫工)이 되어 조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옹정제가 마시는 찻잔에 맹독을 발라 그 독으로 인해 옹정제가 독살 됐다는 소문이 돌아 청말에 부활되기까지 폐쇄되었다고 한다. 유럽에 수출한 도자기를 China로 부를 만큼 명성을 지닌 도자기 본 고장의 야시장에서 또 다른 방문 기념품을 한 가지씩 사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사진 10-2].

20일에 여산(廬山)에서 장개석(蔣介石)과 송미령(宋美齡)의 별서(別墅)와 중국 공산당이 건국 후 첫 번 전원회의를 한 회의실을 관람하여 모택동(毛澤東) 주석의 젊었을 때 육성을 녹음으로 듣기도 하였다. 10월 21일에 강서성 성자현(星子縣) 여산(廬山) 오로봉(五老峯) 밑에 고풍을 그대로 간직한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관람하였다. 이곳은 당대(唐代) 이발(李渤)이 백록(白鹿)을 기르며 독서로 소일하였기에 백록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사진10-3]. 불교를 숭상하던 수와 당이 무너지자 한유(韓愈), 소옹(邵雍),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이(程顥)와 정호(程頤) 형제 등 당대 지식인들은 불교에 맞설 수 있는 이론을 확립하는 데 부심했다. 남송(南宋)의 남강군지사(南康軍知事) 주희(朱熹, 朱子)는 이곳을 맡아 이들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유학(性理學)을 창시하였다[사진 10-4와 5]. 이후 남송 학문의 쌍벽을 이룬 주희와 육구연(陸九淵)이 “의론(義論)”을 벌인 곳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천하의 영재가 모여 들었다고 한다.[12] 1930년대 장개석은 이 서원을 방문하고 국립 대학으로 개편하려고 구상했으나 중일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입구 석벽에 “백롱동(白鹿洞)”이라 각석한 붉은 글씨며[사진 10-6], 돌다리, 돌 탁자와 서원 건물은 고풍이 풍긴다. “만세사표(萬世師表)”라 편액(扁額)이 걸린 공자묘, 주자사당을 둘러보고, 주희가 쓴 “천기함양(天機涵養)”이라는 족자를 하나 샀다. 전 회장을 비롯하여 이 회의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나카야마 시게루, 미국에서 가족이 참석한 Chen Kwan Yu(陳廣瑜) 교수, 전 회장, 나일성, 이용삼 교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 10-7]. 중국학자들도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을 왔다고 곳곳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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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景德鎭과 白鹿洞書院.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1. ICOA-2 논문집. 2. 경덕진 도자기 야시장. 3.백록.  4 萬世師表 孔子廟. 5. 朱子祠堂. 6. 白鹿洞 각석. 7. 白鹿洞書院앞. 오른쪽부터 나일성, 나카야마 시게루, 전상운, Chen Kwan Yu, 남문현, 이용삼(1995. 10. 21).

6. 제7회 국제중국과학사회의(7th ICHSC, 1996. 1. 16-20. 중국 深圳市)

“중국의 과학 사상”과 “20세기의 중국 과학”이라는 의제를 내건 제7회 국제 중국 과학사 회의가 중국의 신흥개방도시 광동시(廣東省) 심천(深圳) 소재 심천대학(深圳大學)에서 열려 전 회장과 함께 참석하였다. 1월 16일 오후 환영 만찬에 이어 17일 오전에 席澤宗 중국과학원 원사 사회로 회의가 개막되었다[사진 11-1]. 주석단(head table)에는 중국전인대 부위원장 吳階平,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楊振寧, 니덤 연구소 何丙郁 소장 등이 자리하고, 그 다음 줄에 국제고문위원 전상운, 나카야마 시게루, Schnell(TUB), 廖克, 程貞一 등이 자리 잡았다. 1995년 3월에 별세한 Needham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13] 1996년 8월에 서울에서 열릴 제8회 동아시아과학사회의(8th ICHSEA)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이어서 蔡德林 심천대학 교장(총장)이 楊振寧을 명예교수로 추대한다는 선언에 이어, 1983년 개교 이래 최대의 영광이라는 발언을 하였다.[14] 여기서 잠시 심천 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국제 중국 과학사 회의(ICHSC)는 1968년 Needham, 錢臨照(중국과기대, 合肥, 노령으로 이번 회의 불참, 축사 전달) 등이 결성하여 벨기에, 북경, 홍콩, 미국 샌디에이고 등지에서 열리다가 앞서 소개한 Cambridge 회의를 끝으로 국제 동아시아 과학ㆍ기술ㆍ의학사 회의(ISHEASTM)로 개편되었다. 7회 교토 회의에 이어 1996년 8월에 서울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경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회의 내용이 주로 중국 과학사이므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고사를 들먹이며 7회 대회를 심천에서 개최하여 맥을 이어 가겠다고 참가를 요청하였다. 침체에 빠진 중국과학사 학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楊振寧과 같이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학자들의 호응했기에 가능하였다. 개회식이 끝나고 대학 도서관을 돌아 나오면서 전 회장 부부, 나카야마, Nusayr(이슬람 수학사)와 혼천의 분수대를 구경하였다[사진 11-2]. 18일에 전 회장과 함께 제출한 부자 밸브(float valve)를 이용한 자격루의 수위 조절기 설계 시안 A Flow Regulator System for the Striking Clepsydra(朝鮮朝 世宗自擊漏的流量調節器硏究)를 발표하였다. 李志超, 華同旭, 郭世榮 등이 토론해 주었다.[15] 19일 오전에 ‘20세기 중국 과학’과 Needham박사 추모강연회가 열렸다. 1943년 중경에서부터 2년을 수행한 니덤 연구소 부소장 黃興宗의 회고[사진 11-4]와 『中國의 科學과 文明(SSC)』출판에 얽힌 에피소드, 제자이며 두 번째 부인이었던 Lu(魯桂珍)와 함께 떠나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줄 때는 모두가 숙연했다. 程貞一 교수는 Needham의 중국 과학 사상 일면과 영향에 대해 회고하고, 이름(Joseph Needham과 Joseph Chen)에 얽힌 이야기로 좌중을 웃게 하였다. 199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동양천문학사회의(ICOA-1)에서 만난 후루카와(古川麒一郞) 교수에게 『한국의 물시계』를 기증하였다[사진 11-3].[16]

마지막 날, 다음 8회 개최지인 베를린 공대(TUB) Schnell 박사의 안내에 이어 2001년 9회 북경 대회에서 만나자는 席澤宗 회장의 안내가 있었고, 전 회장은 8회 서울 회의에 대하여 안내하였다. 동년배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중국어로만 진행되어 닷새 동안 하품만 하였다고 투덜대면서, 8회 대회부터는 영어를 공용으로 해야 중국 학자들을 국제 무대로 끌어내서 중국 과학사를 더 배울 수 있다는 데 동감하였다.[17] 2001년 북경 대회는 어쩐 영문인지 소식이 없었다. 폐회 만찬은 말로만 듣던 진미의 광동 요리.

회의가 끝나고 전 회장은 홍콩으로 돌아가고, 물시계 연구가들의 모임을 갖자면서 광주대학(廣州大學) 부교장(부총장)이며, 광주시 부교육감인 華同旭 교수가 은사 李志超 교수와 북경 친구, 우리 부부를 광주로 초대하였다.[18] 광주는 19세기말 아편 전쟁의 주역 임칙서(林則徐, 이번 회의에서 그의 과학 사상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의 영웅적인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어서 도착하는 길로 유적을 관람하였다. 1992년 항주에서 만난 李志超 교수는 錢臨照 교수와 중국과기대 과학사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집필 중인 『水運儀象志─中國天文鍾的歷史』 (合肥: 中國科技大 出版社, 1997)에 나의 『한국의 물시계』를 소개하겠다고 하였다.[19]  다음 날 오전 연우 누각(延祐漏刻)을 설치했던 시내 중심가(현재 北京路)에 있던 공북루(拱北樓)는 헐리고,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광주박물관(廣州博物館)을 관람하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였다. 오후에 華 부교장이 광주대학을 안내하여 방문하였다[사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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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제7회 국제중국과학사회의.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1. 개막식장(1996. 1. 17). 2. 심천대학 도서관 앞 渾天儀 분수대(왼쪽부터 전 회장 부부, 나카야마 시게루, Nusayr 교수, 남문현(1996. 1. 17). 3. 일본 후루카와 교수에게 저서 기증. 4. 추모식장. 오른쪽부터 남문현, 何丙郁, 黃興宗, 席澤宗, 미상(1996. 1. 18). 5. 廣州大學 방문[왼쪽부터 曾關乾(鄭州大學), 王渝生(自然科學史硏究所, 數學史), 남문현 부부, 趙慧芝(『自然科學史硏究』 편집 주임), 李志超, 廣州大辦公室長, 뒷줄 왼쪽 華同旭, 劉鈍(自然科學史硏究所, 數學史)(1996. 1. 21).

7. 제3회 동양천문학사 국제회의(ICOA-3, 1998. 10. 27-30, 후쿠오카 교육대, 日本)와 남병철(南秉哲) · 남상길(南相吉) 묘역 참배

제3회 동양 천문학사 국제 회의가 1998년 10월 27일부터 4일간 일본 후쿠오카 교육대에서 열려 한국에서는 전 회장을 비롯하여 나일성 교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박종국 회장 등 10여명이 참석하였다(사진 12-1). 나는 전상운, 나일성 교수와 연명으로 박규수(朴珪壽)가 창제한 평혼의(平渾儀)를 연구한 “Honpyong-ui, A Universal and Astral Astrolabe”를 발표하였다.[20] 1990년 8월 19일부터 두 해 남짓 활동하고 해산한 자격루연구회 회장, 부회장, 총무 3인방이 유일하게 연명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평혼의”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내가 “평혼의”를 처음 본 것은 문화재관리국 정재훈 국장의 요청으로 1992년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에 소장된 조선조 척도기(尺度器)와 의기를 조사할 때였다. 별자리가 정교하게 새겨진 의기가 눈에 띄어 자료를 조사해보니 Rufus의 “Ancient Korean Astro- nomy” Plate 16, Fig. 31. “Iron Clock Frame and Astrolabe, Yi”의 오른편 사진과 같았다[사진 12-2]. 별자리 판 표면에 새긴 “환당 창제(桓堂 刱製)”라는 명문(銘文)을 읽었지만 환당(桓堂)이 누군지 몰랐다[사진 12-3과 4]. 뒷날 김명호 교수(당시 성균관대, 현 서울대)가 박규수 선생 종가에 보관 중인 지본(紙本)으로된 “평혼의(平渾儀) 환당수제(瓛堂手製)”를 발굴하여 『조선일보』에 실었다[사진 12-5와 6]. 김 교수 연구실을 찾아 내가 선원전에서 찍은 사진과 규재(圭齋) 남병철(南秉哲, 1817-1863) 선생이 지은 『의기집설(儀器輯說)』 하권에 실린 “혼평의”를 보여주었더니 김 교수는 “환당(桓堂)”, “환당(瓛堂)”, “환경(桓卿)”은 모두 박규수 선생의 아호라고 알려주었다. 이런 일로 몇 년 뒤에 김 교수는 나의 『의기집설』 연구에 연구원으로 동참하여 “남병철과 박규수의 천문의기 제작―『의기집설』을 중심으로―”[『조선시대사학보』 12집 (2000), 100-125]를 발표하였다. 그 간에 덕수궁으로 옮겨 놓은 것을 조사한 다른 사람들은 평혼의를 “목륜(目輪)”, “중반성구(重盤星晷)”, “성좌판(星座板)” 등 내키는 대로 이름을 붙였다. 한편, 전 회장은 『의기집설』 하권에 실린 “혼평의”를 읽고 “내 친구 박환경(朴桓卿)이 제작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박환경”이 누구인 줄 모르겠어서 우선 규재(圭齋)의 고향을 찾으면 단서를 찾을 것 같아서, 경남 의령읍에 갔다고 한다. 남씨(南氏)를 찾아 물어보니 그런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대답뿐이어서 실망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느 모임에서 들려주었다. 내가 의령을 왜 갔느냐고 물었더니 남병철 선생이 “의령인(宜寧人)”라고 하여 태어나신 곳에 가면 무엇인가 알 것 아니냐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씨 시조가 생활한 지명 뒤에 “인(人)”을 붙여 본관(本貫)이라고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호적을 정리하면서 “인(人)”을 뺀 것을 모르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저희 작은 댁 증조부라고 말하고 묘소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더니 해묵은 숙제를 풀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언제 날을 잡아 참배해야겠다고 하셨다. 천문학계에서는 나일성 교수가 처음으로 묘소를 찾아 1984년 여름에 선친이 안내하여 참배하고 나서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여 앞서 소개한 대로 1984년 10월 26일에 연세대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 마침 의령 남씨(宜寧南氏) 지재공종회(志齋公宗會) 회장(南洛鉉)이 나의 가형(家兄)이라 종중(宗中)에 소개할 기회가 생겨 초청하겠다고 하여 남씨 대종회장(南氏大宗會長)을 비롯하여 임원들이 총출동하고, 전상운, 송상용, 이성규 회장, 김명호, 김지인(건국대) 교수 등을 모시고 남병철과 남상길(구명 秉吉) 형제분 묘소에 참배하였다. 전 회장은 인사말에서 앞서 의령을 찾아가 허탕  이야기를 하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남 교수에게 진작 물어보았더라면 고생을 안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해(1998) 후쿠오카에서 남 교수와 논문을 발표 한 일을 이야기 하였다. 마지막으로 19세기 한국 과학사의 큰 업적을 남긴 두 분의 업적을 선양하는데 먼저 다녀가신 천문학자 나일성 교수와 후손인 남 교수와 힘을 합해 일을 할 수 있도록 성원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사진 12-7]. 전 회장은 열흘 뒤에 한국산업기술학회 창립 총회에서 “21세기를 지향하는 한국 산업기술사 연구를 위한 총론”이라는 기념 강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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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제3회 동양 천문학사 회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陳久金, 남문현, 席澤宗, 曾關乾. 2. Rufus 논문에 기재된 渾平儀. 3. 선원전 소장 平渾儀. 오른쪽에 “桓堂 刱製”라는 銘文이 보인다. 4. 평혼의(국립고궁박물관 소장). 5. 朴珪壽 宗家에 전승된 平渾儀 瓛堂手製 紙本 케이스. 6. 앞의 3의 모본. 7. 崇祿大夫行吏曹判書大提學 贈諡文貞圭齋南秉哲之墓 (圭齋선생의 외사촌 左贊成 思潁 金炳冀 謹撰) 앞에서 전상운 회장 인사 말씀. 그 옆이 남문현, 앞에 이성규, 송상용 회장이 보인다(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남병철 묘소, 1999. 10. 30).

옛 사진을 보니 지난 날 회장님을 동반하여 동서를 누비며 지낸 즐거웠던 날들의 추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에 계신 회장님도 이것을 보고 빙긋이 웃고 계시리라. 회장님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추념(追念)에 갈음한다. 


[1] 졸저 『장영실과 자격루: 조선시대 시간측정 역사 복원』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278-279 참조.

[2] Needham의 Heavenly Clockwork(HC) (1960, 1986)은 이 학회 Monograph No.1, HHR은 25이다.

[3] Fields 여사는 퇴임하여 대신 2012년 Amsterdam에서 열린 機構機械史學會(HMM-2012)에 참석한 Wright에게 알려주었다.

[4] 1993년 일본 京都 7회 대회에서 나까야마 시게루, 1996년 서울 8회 대회에서 Catherine Jami를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5] 이 회의에서 만난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London(SOAS)의 Christopher Cullen 교수는 1996년 서울 동아시아과학사회의에 온 김에 나의 자격루 모형을 관찰하고 Needham이 못한 일을 해냈다고 복원되면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하였다. 『한국의 물시계』를 보완하여 Needham Research Institute Studies Series로 내보자고 권고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미루던 차에 2016년 전북대 과학기술문명사연구소 개소식에서 만났더니 잊지 않고 그 얘기를 꺼냈다. 아직도 빚으로 남아있다.

[6] 李 교수는 내가 2014년 合肥 科技大에서 열린 第八屆 東方天文學史 國際會議(ICOA-8)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회의에 참석한 爲公硏究所長 程貞一(Joseph Cheng), 홍콩대학 馮錦榮(Fung Kam-Wing), 西安天文臺 馬莉萍(Ma Li-Ping)과 우리 부부는 安徽敎育出版社 회장의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南秉哲의 『儀器輯說』과 南相吉의 『六一齋叢書』 중국어판 출판을 논의하였다.

[7] 몇 달 후에 너무 오래되어 찾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8] 아마 우리 南氏 元祖의 고향이라서 DNA가 맞아서 그랬는지도. 2016년 9월에 元祖 金忠(신라 景德王이 南敏이라는 姓과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의 고향 河南省 汝南縣 金浦鎭을 탐방하였다. 그리고 蔣英實의 8代祖 北宋의 金紫光祿大夫神慶衛大將軍 蔣壻가 金의 침략(金胡之亂)에 맞서 사투를 벌린 靖康의 變(靖康之變)의 현장인 開封을 찾았다.

[9] 1994년 2월에 南京 鼓樓에서 새벽을 알리는 북과 人定(통금)을 알리는 데 쓴 종을 조사하였다.

[10] 복원하지 않고 국민정신 교육장으로 그대로 남겨두었다가 최근에 복원하였다.

[11] 논문은 Frontiers of Oriental Astronomy 東方天文學前沿, Kwan Yu Chen and Sun Xiaochun, eds., 『陳廣瑜 孫小淳 主編』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006)에 실렸다.

[12] 조선 中宗朝에 풍기군수 周世鵬은 고려시대 朱子學者 安珦을 기리기 위하여, 이 서원을 본떠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웠으며, 이것이 조선시대 書院의 효시가 되었다.

[13] Needham은 1968년 결성한 이 회의의 발기인이다.

[14] 이 회의 참가기는 『과학과 기술』제29권 5호(1996. 5. 한국과총) 참조.

[15] 논문은 第七屆國際中國科學史會議論文集, Shenzhen, China, January 16-22, 1996. pp. 305-314, 大象出版社에서 출판되었다. 발표한 모델은 Needham도 아랍 과학의 영향을 받아 자격루에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지만, 실험해 본 결과 적합하지 않다는 것으로 밝혀져 漫流(overflow) 平水法으로 교체되었다. 새로운 모델은 베를린에서 열린 8회 대회에서 발표하였다.

[16] 후루카와 교수는 東京天文臺에서 여러 개의 소행성을 발견하여 일본에 천문학을 전해 준 觀勒, 세종대왕 등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 후 일본에서 후루카와 교수는 나가노(長野) 儀象堂을 두 번, 동경시내 大名時計博物館 등을 안내하는 등 친분이 이어졌다.

[17] 베를린 대회(한국에서는 김영식 교수와 내가 참가)에서 중국 학자들은 중국어로 발표하면 젊은 세대가 옆에 앉아 유창한 영어로 통역하였다. 베를린 회의는 훨씬 세련된 대회였으며, 대회가 끝난 다음 중국 학자들은 로마로 간다고 들떠 있었다.

[18] 개방 후 중국은 대학교수와 연구소 연구원 등 지식인을 행정부 고위직 주로 “副” 직위에 임명하였다. 華 교수는 副縣長, 副校長을 거쳐 副敎育監에 임명됐다고 한다. 1993년에 北京 古觀象臺에서 처음 만났을 때 華 교수는 楊貴妃의 主食인 리치(荔枝)를 調達하던 근처 縣의 副縣長이었다.

[19] 몇 달 후에 『自然科學史硏究』에 기고한 『한국의 물시계』 書評을 보내왔다.

[20] 논문은 Proceedings of ICOA-3, ed. Hirai M.(Fukuoka, Japan: Fukuoka Univ. of Education, 1998), pp. 165-168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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