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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18), 153-157

[특집: 고 전상운 전 회장(1932-2018) 추모] 전상운의 한국 과학사 초기 연구(1959-1974): 두 명의 스승과 한 명의 친구

by 신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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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운의 한국 과학사 초기 연구(1959-1974): 두 명의 스승과 한 명의 친구

 

신동원 (전북대학교)

 

한국 과학사 최초의 통사 『조선과학사』를 펴내면서, 사학자 홍이섭은 자신의 저서는 시론적인 책에 불과하며 엄밀한 의미의 과학사로서의 체계화는 뜻있는 이들의 공동 연구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자연과학자로서 역사학에 소양이 있는 겸비의 학자들이 비로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1]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학자로서 그는 자신이 대상으로 삼은 과학과 기술의 내용을 분석할 수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10여년 후 화학을 전공했으면서 역사학에 큰 관심을 가진 신예 학자가 등장했다. 전상운(1932- 2018)이 바로 그 인물이다. 1959년 처음 한국 과학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이후 7년 동안 12편의 굵직한 논문을 집필하여 그 결과를 모아 1966년 『한국과학기술사』를 펴냈다.

전상운이 자신의 첫 책을 홍이섭(1914-1974)에게 헌정했다. 홍이섭은 명실상부 그의 멘토였다. 초기 전상운의 학문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이섭이 개척한 한국 과학사 연구를 살펴봐야 한다. 30세를 갓 넘긴 젊은 학자 홍이섭은 당시 한국인이 쓴 학술서로 변변한 게 별로 없는 상태에서 20세기 이전 한국의 과학과 기술 전반을 시대별로 고찰한 『조선과학사』를 저술했다. 그는 “1940년대의 일제의 군국주의적 파쇼화 정책 하에서 ‘조선 문화’에 있어 무엇을 활자로 전해 볼 것이냐”는 고민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2]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 정치적 상황이 최악에 이르렀을 때, 과학 시대에 문화의 핵을 이루는 한국의 과학기술사 전반을 고찰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과학 분야도 다른 사회 현상과 마찬가지로 정체되어 있었고, 또 퇴퇴(頹退)하는 경향을 밟은 것으로 의심되며, 경험적인 활동만 존재했기에 이론과 방법을 특징으로 하는 유럽의 과학기술과 같은 것을 낳지 못했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했다.[3] 이런 결론과 달리 이 책이 주는 효과는 다른 데 있었다. 세계의 역사를 보편적으로, 또 사회경제사의 연관 속에서 봤을 때 이런 거시적인 결론이 도출된 것이지만, 그런 관점을 택해서 본다고 했을 때에도 한국의 과학기술 전통이 한 권의 두툼한 분량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식으로 3백 쪽 이상의 과학기술사가 씌어졌다는 사실, 그것은 단지 몇몇 우수한 것만을 부각하여 선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효과를 자아냈다. 이 책이 오랜 전통, 또 수많은 과학과 기술의 분야에 걸쳐 비록 서양과 같은 과학 전통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한국 민족이 나름대로의 꾸준한 활동을 벌였음을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 역사 시대 이후에 존재하는 풍부한 사료, 과학과 기술의 각 분야사에 관한 당대의 연구를 통해 조선 과학 통사를 구축해냈다. 이 책은 한국의 독립 직후 1946년 극도로 열악한 출판 상황에서도 다시 한국어로 출간되었는데, 당시 한 신문은 짧은 서평으로 이 책의 가치를 요약했다. “원시 조선으로부터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이조 양 봉건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학기술 다시 만근(輓近)의 서구 과학의 수용과 이조 봉건 과학의 지양에 도달되는 각 과정을 체계화한 공적을 높이 찬양한다. … 부침미도(斧鍼未到)의 이 분야를 개척한 선구적 노고에 대하여서 재삼 경의를 표하는 바로서 현하 출판계의 최악 조건을 극복하고 3백항의 호화판으로 간행된 것을 조선 출판계를 위해서 경하하는 바이다.”[4] 홍이섭의 『조선과학사』는 최소한 분량이나 체계라는 면에서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의 과학사 연구, 즉 伊藤至郎(1899-1955)가 지은 310쪽의 『日本科学史』(1941)보다 못하지 않은 것이었다.[5]또한 중국 과학사의 경우, 아직 번듯한 단행본이 출현하지 않은 때였다.

전상운은 멘토 홍이섭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한국 과학사 전반을 총괄한 시야의 확보가 가장 큰 가르침이었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배움은 그의 학문적 태도였다. 홍이섭은 자랑할 만한 과학기술 유산만을 골라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방식의 접근법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한국의 과학 전통 전체를 냉정하게 조망하고자 했다. 홍이섭은 “우리는 조선의 과학과 기술을 무조건 광휘만을 낼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국수주의적 태도를 거부했다.[6] 아울러 그는 국수주의자의 반대편을 겨냥해서 “과거에 있어 어떤 의도 하에서 당연히 과학적인 가치를 부여하여야 할 것을 무조건적으로 말살하려던 것도 배격하고 당연한 비판으로써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비난했다.[7] 그 반대편이란 문화 역량이 부족해 망국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본 통치자의 식민주의적 태도와 그 논리에 동조하는 일부 지식인의 허무주의적 태도였다.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초판본을 받아든 홍이섭은 한국과학사 연구 분야에서 이제 자기의 역할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자로서 역사학을 겸비한 학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상운의 한국 과학사 연구가 홍이섭의 『조선과학사』와 크게 달라진 점은 『한국과학기술사』의 목차 구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전상운은 시대 구분 방식이 아니라 분야별로 구성했다. 예컨대 천문학을 보면, 고대 중국의 우주론을 제일 먼저 다루고, 이어서 이 주제와 관련해서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18세기 조선의 지구 회전설을 그 다음에 다루고, 천체의 구조를 담은 천문도, 관측 기구와 시설과 각종 시계를 제시하고, 이어서 역법과 시법, 하늘의 현상을 점치는 천변(天變)에 관한 내용을 제시하고, 북극 고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전상운은 비슷한 방식으로 기상학, 물리학과 물리 기술, 화학과 응용 화학, 지리학과 지도 등 중요한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보인 성취를 드러냈다. 홍이섭이 한 작업이 과학과 기술 각 분야의 특기할 사항을 시대별 틀에 맞추어 배열하고, 그것의 시대적 특징을 뽑아내는 작업이었다면, 전상운이 한 일은 과학과 기술의 전반적인 구조를 헤아리고, 그 내용을 분석하여 ‘과학적’ 원리를 읽어낸 것이었다. 홍이섭이 어렴풋이 한국 과학기술의 골격만 헤아려냈다면 전상운은 그것의 속살까지 속속들이 밝혀낸 것이다.

죠지프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 없었다면, 과연 전상운의 『한국과학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전상운 스스로 인정하듯 니덤은 제2의 멘토였다. 그가 한국 과학사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 니덤의 총서의 1권 총론(1954), 2권 천문학(1956), 3권 수학(1959), 4권 물리학(1959)과 물리 기술(1962), 기계 공학(1962) 등이 발간되었다. 전상운은 모 장학재단에서 받은 돈 모두를 털어 국내에 막 들어온 니덤의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었다. 그 책의 넓고 깊음은, 전상운이 한국 과학사 연구의 주제를 정하고, 연구 수준을 결정짓는 가늠자가 되었다. “내 학문 역정에서 가장 큰 스승은 니덤이었다.” 전상운은 그렇게 회고했다.[8] 당연히 『한국과학기술사』의 체제는 니덤 총서의 구상을 따른 것이었다.

전상운은 니덤이 중국의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읽어낸 방법을 그대로 채용해서 『한국과학기술사』를 엮었다. 그는 천문학, 물리학, 화학, 인쇄술, 화기와 화약, 금속 공예와 광업, 토목ㆍ건축 기술, 지도 제작술 등에 담긴 과학과 기술 내용의 수준을 읽어냈다. 그가 다룬 주제 안에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과학기술적 업적으로 손꼽혀온 동양 최초의 천문대인 첨성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의 청자,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인 고려와 조선의 인쇄술,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알려진 거북선 등에 담긴 과학기술 내용을 냉정하게 분석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상운은 “세계 최초니, 국내 최초니” 하는 허사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하는 자료의 확보, 적절한 분석, 그에 입각한 역사 해석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밝혀낸 결과는 대체로 한국 과학기술 전통의 “우수함”이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과학에 내재한 ‘과학성’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근거를 찾아 말하고자 했다.

영문판 한국 과학사 Science and Technology in Korea: Traditional Instruments and Techniques (1974)를 준비하면서 전상운의 시야는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전상운을 자신이 기획한 M.I.T. East Asian Science Series 중 하나로 초청한 동갑내기 네이선 시빈(Nathan Sivin, 1932- )은 단지 영어권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한국 과학사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데에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과학사와 중국 과학사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시빈의 질문으로 해서 전상운은 각 한국 과학사 각 분야사에서 이룩된 뛰어난 과학성을 밝히는 데서 더 나아가 전체를 관통하는 거시적인 총론, “한국 과학기술 창조성의 연원”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그것은 홍이섭의 실증주의적 연구법, 니덤의 전통 과학에 내재한 원리 파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전상운은 영문판에서 자신의 통찰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과학 전통이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복제하거나, 적용하거나, 창조하는 패턴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9] 이런 관점에서 그는 그간 중국 과학 문명의 성취로 알려진 것 중 금속 활자 인쇄술 같은 것이 한국에서 창안된 것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이룩된 문명이 중국만이 홀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문명의 상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러한 전상운의 기여에 대해 시빈은 그의 작업으로 해서 동아시아의 과학 문명의 이해가 더욱 풍부하게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10]

전상운이 1959-1974년 사이 15년간 펼친 초기의 한국 과학사 연구는 이후 50년간 계속 확대ㆍ심화되어 더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밝힌 내용과 주장에 대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신선함을 떠올리기 힘들다. 특히 한국 전통 과학 유물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을 비롯한 수많은 출판물들이 그의 연구를 옮겨 싣고 있지만, 후학이나 독자들은 그게 한 학자가 땀땀이 일군 노력의 결과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 지식을 소비한다. 이처럼 전상운은 세상에 최상의 기여를 남기고 떠났다. 그게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 이와 함께 그의 곁에 홍이섭, 죠지프 니덤이라는 두 명의 거대한 스승, 네이선 시빈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그의 길을 이끌었음을 같이 기억하고자 한다.

 



[1] 홍이섭, 『조선과학사』 (정음사, 1946), 2.

[2] 홍이섭, “『조선과학사』 事緣 數駒”, 『홍이섭전집 1: 과학사ㆍ해양사』 (연세대학교출판부, 1994), 379. 원래 이 논문은 『일산 김두종 박사 희수 기념 논문집』 (탐구당, 1966)에 발표된 것이다.

[3] 洪以燮, 『朝鮮科學史』 (東京: 三省堂, 1944), 452.

[4] “신간평: 『조선과학사』”, 『한성일보』,  1946, 12. 8, 4면. 국립도서관 디지털 자료를 이용했다.

[5] 伊藤至郎, 『日本科学史』 (大賀文庫, 1941).

[6] 홍이섭, 『조선과학사』 (정음사, 1946), 10.

[7] 같은 곳.

[8] 전상운, 『한국과학기술사』 개정판 (정음사, 1976), v.

[9] Sang-woon Jeon, Science and Technology in Korea: Traditional Instruments and Techniques (Cambridge, MA: MIT Press, 1974), xii.

[10]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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