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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18), 29-58

[연구논문] 아랍에서 조선까지 이슬람 역법의 전래와 수용 (Transmission and Assimilation of the Islamic Calendrical Astronomy, from Arab to Joseon Korea)

by 이은희(LEE Eun-Hee), 한영호(HAHN Young-Ho), 강민정(KANG Min-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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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In the thirteenth century, there were extensive astronomical exchanges between the Islamic world and Yuan China. Particularly, Islamic calendar system based on the Greek astronomy was first introduced into Yuan China, and a Persian Zij by new observations was compiled by the Muslim astronomers who were active in Beijing observatory equipped with the Arabic instruments. In the next Ming dynasty, the Chinese version of Islamic calendar, Huihui lifa 回回曆法, originated from the Persian Zij, was compiled by the contributions of the Chinese and Muslim Astronomers, and it was transmitted to Joseon Korea during the King Sejong period (1418-1450). However, Korean astronomers found the serious mistakes in the epoch and the date conversion method of the Huihui lifa, and they compiled a newly revised version of Chinese-Islamic calendar, Chiljeongsan oepyeon 七政算外篇. In this paper, we examine the transmission of Islamic calendrical astronomy from Arab to Joseon Korea via China. Through the study of the Islamic Zijes and literatures related with the Huihui lifa, we trace the inter-relation among them. As well, we try to get the information and clues such as their origins and the years or places of the observations, from the analysis of astronomical tables in the Huihui lifa and Chiljeongsan oepyeon.
주요어 Astronomical exchanges, Islamic calendar system, Persian Zij, Huihui lifa, Chinese-Islamic calendar, Chiljeongsan oepyeon, Islamic Zijes, Astronomical tables

이 논문은 2016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NRF-2016-R1D1A1B03934993)

아랍에서 조선까지 이슬람 역법의 전래와 수용

이은희, 한영호, 강민정

이은희: 연세대학교 천문대, ehl77@naver.com / 한영호: 건국대학교, yhhahn@konkuk.ac. kr / 강민정: 독립연구자, kmjih1890@hanmail.net

1. 서론

회회(回回) 천문학, 즉 이슬람 천문학의 기원은 아랍의 두 번째 칼리프(Khaliph) 제국인 압바스 왕조(Abbasid, 750-1258)로 거슬러 올라간다. 압바스의 제7대 칼리프인 알 마문(Al-Mamun)은 828년 “지혜의 집(House of Wisdom)[1]”을 세워 선대(先代)에 수집된 그리스 원전(原典)을 체계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는데, 10세기 초에는 그리스 과학 원전의 대부분이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다.[2] 이때 번역된 서적들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83년 경-168년 경)의 『알마게스트(Almagest)』와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기원전 4세기 중엽-3세기 중엽)의 『원론(原論, Elements)』 등은 그 후 아랍의 수학과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듯 번역 사업에서 시작된 아랍의 과학은 서구(西歐)로 전해지기 이전, 이미 이슬람 세계에서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 전해진 아랍의 이슬람 역법, 즉 중국의 『회회력법(回回曆法)』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기초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천문학은 북송(北宋)으로부터 시작해서 원(元)과 명(明)의 3대(代)에 걸쳐 중국에 수입되었으며 중국의 왕조가 바뀐 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이전까지 중국에 전해진 이슬람 서적들은 모두 서역 문자(대부분 아랍어와 페르시아 어)로 기록된 것들로서, 이들을 연구하고 역서(曆書)를 제작하는 일들은 모두 서역 출신의 회회인(回回人)들이 맡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발행하는 서적과 역서 또한 모두 서역 문자로 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언어와 글을 모르는 중국의 학자들은 그 내용이나 방법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원을 멸하고 명을 세운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원의 한족(漢族)과 회족(回族)의 모든 천문 기구들을 접수하고 주요 인재들을 모두 남경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원의 회회사천감(回回司天監)에 있던 서역 문자로 된 서적들을 모두 남경으로 옮기는 한편, 이 서적들을 번역하라는 명을 내렸다.[3] 이 때 번역과 편찬의 실질적 책임을 맡은 사람은 홍무 2년(1369) 아버지 마덕노정(馬德魯丁)과 함께 서역의 노밀(魯密)[4]로부터 중국에 온 마사역흑(馬沙亦黑)과 마합마(馬哈麻) 형제였다. 태조의 명에 따라 마합마는 홍무 16년(1383)에 『천문서(天文書)』[5]를 그리고 마사역흑은 홍무 18년(1385)에 『회회력법』을 번역ㆍ편찬하였다.[6]

그러나 태조는 자신이 명한 『천문서』와 『회회력법』이 편찬되자 또 다른 명을 내렸다. 홍무 17년(1384) 『대통력법통궤(大統曆法通軌)』가 완성되고 그 다음 해인 홍무 18년(1385) 『회회력법』도 편찬됨에 따라 이제 중국과 서역의 두 역법을 ‘하나로 합하여 일세일원(一世一元)[7]의 역법 제도를 이루라’는 새로운 명령을 하였다.[8] 이에 따라 춘분이 계산 기점인 『회회력법』을 동지가 계산 기점인 중국 역법 체계로 쓸 수 있게 하는 일이 시작되었고, 홍무 갑자년(1384)을 역원으로 하는 『대통력법통궤』에 따라 『회회력법』도 홍무 갑자에 맞추어 계산하는 일이 수행되었다. 이렇게 중국과 서역의 역법을 서로 회통(回通)하여 쓸 수 있게 하는 작업은 마사역흑 등이 페르시아 어로 된 회회력법을 번역한 후에도 10년 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새로 태어난 『회회력법』은 단순한 번역물인 아닌 서역의 역법을 중국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중국식 이슬람역법이었다.

한편 명초에 편찬된 중국식 『회회력법』은 세종 시대에 관련 역산서들과 함께 조선으로 전해졌다. 이때 조선의 역관들은 『회회력법』 속에 중대한 잘못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잘못된 오류를 바로 잡는 한편 새로운 역원과 환산 방법을 갖춘 조선식 회회력법, 즉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편찬하였다. 현재 규장각에는 『칠정산외편』의 편찬과 관련하여 수입된 명초 이슬람 역산 관련 문헌들이 다수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중국의 회회력법사 연구와 함께 『칠정산외편』에 담긴 내용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보다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규장각 본으로 전하는 이슬람 역산 관련 문헌들과 『칠정산외편』을 통하여 명초에 회회력법의 편찬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들과 조선에서 이를 받아들여 『칠정산외편』으로 편찬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고,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의 분석을 통하여 아랍에서 출발한 이슬람력이 서역과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어떠한 변천이 있었는지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이슬람력의 기원과 중국의 회회력법

이슬람력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초기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박해로 메카에서 메디나로 천도한 히즈라(Hijra or Hijri) 사건과 관련이 있다. 히즈라 후(A.H.)[9] 17년에 이슬람의 제2대 칼리파 오마르(Kalifa Omar, 634-644)는 이 성천의 날을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선포하였다. 히즈라력[10] 원년 1월 1일 (A.H. 1 Muharram 인 이날은 서력으로 622년 7월 16일에 해당한다.[11] 이슬람력은 1년 12달을 354일(평년) 또는 355일(윤년)로 하는 순태음력이다.[12] 중국의 역법은 해와 달의 운동에 따른 계절과 삭망을 조절하면서 윤달을 배치하여 평년은 354일 또는 355일, 그리고 윤달이 든 윤년은 384일 또는 385일이 되나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정한 신성한 달 속에 다른 세속적인 달을 끼워 넣을 수 없다고 하여 윤달을 두지 않는다. 또한 어느 곳이든 초승달이 처음 보이는 날을 태음력의 초하루로 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초승달이 뜨는 날과 시간을 직접 관측하여 그 지방의 위치에 맞는 역법으로 만들어 사용한다.[13]

이러한 이슬람력은 모두 그리스의 『알마게스트』에 기초하는데 『알마게스트』에는 일월오성의 위치 추보를 위해 각각의 기하 모델에 맞춰 미리 계산해 놓은 수표(數表), 곧 천문 입성(天文立成, astronomical tables)이 빠짐없이 들어있다.[14] 이슬람 세계에서는 천문 추보의 지침서를 아예 입성 위주로 작성하면서 이런 입성집(立成集)을 가리켜 지즈(zij)라 하였다.[15] 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등으로 편찬된 ‘지즈’는 그 종류만 해도 대략 200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16] 중국에서 편찬된 『회회력법』 또한 이러한 지즈 중의 하나였으며 중국어로 편찬된 이슬람 역법서였다.[17]

한편 중국에 전해진 이슬람력은 원나라 초 찰마노정(札馬魯丁, Jamal al- din)[18]이 조정에 만들어 바친 『만년력(萬年曆)』으로부터 시작하여[19] 그 후 원나라 회회사천감에 전해오던 서역의 회회력법 서적[20]과 명나라 초 마사역흑 일가와 회회흠천감의 관원들이 서역의 본국으로부터 새로 가져와 사용하였다는 토반(土盤)의 산법에 따른 역법서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21] 사서(史書)에 전하는 기록들과 그 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명초의 『회회력법』은 원나라 도성에 남아있던 페르시아 어로 된 회회력법 뿐만 아니라 서역으로부터 새로 들어온 토반의 산법을 참고하고 또한 남경의 위치에 맞도록 편찬한 역법이라고 할 수 있다.[22]

다음은 13세기와 15세기 사이에 제작된 ‘지즈’ 가운데 중국의 회회력법과 관련된 이슬람력 서적들을 모아 편찬 시기 순으로 정리한 표이다.[23]

표 1. 13세기-15세기 사이에 제작된 이슬람력

제작자

역법

제작지

제작연대

알 투시(al-Tusi)

찰마노정(札馬魯丁)

산주피니(Sanjufini)

마사역흑(馬沙亦黑)

우르베그(Ulugh Beg)

이순지, 김담

패림(貝琳)

일카니 지즈(Ilkhani Zij)

만년력(萬年曆)

산주피니지즈(Sanjufini Zij)

회회력법(回回曆法)

술타니 지즈(Sultani Zij)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칠정추보(七政推步)

마라가

상도(?)

티벳

남경

사마르칸드

서울

북경

670/1272

665/1267

767/1366

787/1385

843/1440

847/1444

881/1477

 

위의 표에 따르면 명에서 마사역흑의 『회회력법』(1385)과 패림(貝琳)의 『칠정추보(七政推步)』(1477)가 편찬되었고, 이들 사이에 사마르칸트와 서울에서 각각 우르베그(Ulugh Beg)의 『술타니 지즈(Sultani Zij)』(1440)[24]와 이순지, 김담의 『칠정산외편』(1444)이 편찬되었다. 그리고 원나라 말이자 명의 건국 직전에 몽골의 식민지였던 티벳(Tibet)에서 『산주피니 지즈(Sanjufini Zij)』(1366)[25]가 편찬되었는데 이 지즈는 회회력과 동일한 내용의 행성 계산표가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6] 또한 이들보다 앞서 이란의 마라가 천문대에서 『일카니 지즈(Ilkhani Zij 또는 Zij-Il-Khan)』[27]가 알 투시(Nasir al-Din Tusi, 1201-1274)[28]의 지휘 아래 제작되었고, 원나라 초에 찰마노정이 제작한 『만년력』이 세조 쿠빌라이에게 바쳐지기도 하였다.[29] 『만년력』은 유실되어 지금은 그 전모를 알 수 없으나 『원명사류초(元明事類鈔)』에 인용된 『송렴집(宋濂集)』의 “12궁을 사용하고 360도로 나눈다”[30]라는 말로 볼 때 『회회력법』과 동일한 계통의 이슬람력으로 판단된다.

3. 『회회력법』의 도입과 『칠정산외편』의 편찬            

중국의 『회회력법』은 조선의 역법 편찬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세종 때, 명에서 새로 편찬된 이슬람 역산서들과 함께 조선에 수입되었다. 그러나 『회회력법』이 도입되어 『칠정산외편』으로 편찬되기까지의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회회력법』의 도입 과정을 상세히 전하는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록 속에 보이는 단편적인 기사들과 현존하는 『회회력법』 관련 서적들로부터, 『회회력법』이 도입되어 교정을 거치고 편찬에 이르기까지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우선 『회회력법』의 도입 시기를 추측해 볼 수 있는 가장 근접한 기사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전하는 다음의 기록이다.

세종 계축년(1433)에 임금께서 교식과 오성만이 입성(立成)이 없다 하여 정인지(鄭麟趾), 정초(鄭招), 정흠지(鄭欽之) 등에게 명하여 명나라의 대통통궤에 약간의 교정을 가하여 내편을 만들게 하시고 또 회회력법을 얻어서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 등에게 명하여 그것을 검토 교정하여 외편을 만들게 하셨다.[31]

위 내용에는 “세종 계축년(1433)에 임금께서 명나라의 『대통통궤(大統通軌)』에 교정을 가하여 『내편』을 만들게 하고 또 『회회력법』을 얻어 이순지(1406- 1465)와 김담(1416-1464)에게 명하여 외편을 만들게 하였다”라고 전한다. 이 기사로부터 이제까지 『칠성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의 편찬을 명한 해가 모두 세종 계축년(1433)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위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일단 『내편』의 편찬을 명한 해는 세종 계축년이 맞지만, 앞 뒤 문맥상 『외편』의 편찬을 명한 해 또한 과연 계축년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한 이유는 『내편』의 편찬을 명한 후 이순지와 김담에게 『외편』을 만들게 하였다고 하나 김담이 문과(文科)에 급제한 것은 세종 17년(1435)이고 간의대(簡儀臺) 일을 보게 된 것은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하게 된 세종 18년(1436) 12월 이후이기 때문이다.[32] 이때 김담은 겨우 20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지 1년 밖에 안 되는 해였다. 그러므로 “이순지와 김담에게 『외편』의 편찬을 명한” 해는 세종 18년 이후 김담이 역법과 산법에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33]

그런데 이순지의 『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 “발문(跋文)”에는 중국에서 역산서들이 도입되고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이 편찬되는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전하고 있다.

또 근년에 얻은 중국의 통궤법(通軌法)은 본시 수시력을 기본으로 하나 혹 증손함이 있다. 서역(西域)의 회회력(回回曆)은 또 다른 별개의 역법인데 절목이 미비하다. 임술년(壬戌年, 1442)에 다시 봉상시윤(奉常寺尹) 이순지와 봉상시주부(奉常寺注簿) 김담에게 명하여 수시력과 통궤법에 의거하여 같고 다른 점을 비교하여 그 정밀함을 취하고 중간에 몇 조항을 첨가하여 한 책을 만들게 하고 칠정산내편이라 하였다. 또 회회력경(回回曆經), 통경(通經), 가령(假令)의 책(冊)을 가지고 그 계산법을 연구하여 약간의 손익을 가하고 누락되거나 생략된 것을 보충하여 온전한 역법서를 만들게 하고 칠정산외편이라 하였다. …
그 수시력경(授時曆經), 역일통궤(曆日通軌), 태양통궤(太陽通軌), 태음통궤(太陰通軌), 교식통궤(交食通軌), 오성통궤(五星通軌), 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 및 회회력경(回回曆經), 서역역서(西域曆書), 일월식가령(日月食假令), 월오성능범(月五星凌犯), 태양통경(太陽通經) 그리고 중수대명력(重修大明曆), 경오원력(庚午元曆), 수시력의(授時曆議) 등 모든 책에 교정을 가하였다.[34]

위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근년에 얻은 중국의 통궤법은…”으로 시작하는 첫 부분이다. 뒤이어 임술년(1442)이 언급되고 있고 발문을 쓴 해가 갑자년(1444)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궤법이 들어온 해가 임술년 이전의 머지않은 과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서운관지』에는 대통 통궤에 교정을 가하여 『칠정산내편』을 만들게 한 해를 계축년으로 언급하고 있어 과연 통궤법이 들어온 근년이 어느 해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이순지와 김담에게 『칠정산외편』을 편찬하도록 명한 해는 임술년으로부터 멀지 않으면서도 김담이 간의대 일을 시작한지 적어도 2-3년은 지난 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위 발문에는 『회회력경(回回曆經)』, 『서역역서(西域曆書)』, 『일월식가령(日月食假令)』, 『월오성능범(月五星凌犯)』, 『태양통경(太陽通經)』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 중 『일월식가령』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세종 때 수입된 명나라의 이슬람력 역산서이다. 이들은 모두 교정을 거쳐 『칠정산내ㆍ외편』이 편찬되던 세종 갑자년(1444)에 갑인자(甲寅字)로 다시 간행되었는데 이들 중 『회회력경』과 『서역역서』를 제외한 나머지 문헌들은 모두 규장각 본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규장각에 남아있는 문헌들을 조사해 보면 위 발문에 언급되는 『태양통경』은 명나라 원통의 『위도태양통경』을 뜻하고, 『월오성능범』은 선덕(宣德) 10년(1435) 달이 오성을 가리는 날짜와 횟수를 기록한 『선덕십년월오성능범(宣德十年月五星凌犯)』을, 그리고 『일월식가령(日月食假令)』[35]은 이순지와 김담이 계산한 『칠정산외편』에 따른 일식과 월식의 가령(假令)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기록에는 보이되 현재 전하지 않는 『회회력경』은 1385년에 마사역흑 등이 편찬한 『회회력법』의 초본(初本) 또는 그 후에 진행된 중서 역법의 회통 방법을 함께 실어 편찬하였을 명초의 『회회력법』으로도 짐작되며, 『서역역서』는 유신(劉信)의 『서역역법통경(西域曆法通經)』 또는 문자 그대로 회회력에 따른 서역의 역서로도 추정된다. 만약 『서역역서』가 회회력에 따른 역서를 뜻하는 것이라면 현재 실물은 전하지 않으나 “전주사고포쇄형지안(全州史庫曝曬形止案)”에 전하는 서적 중 “회회력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36]

그러나 중국에는 유신의 『서역역법통경』의 잔본(殘本)을 제외하고는 위 발문에 보이는 문헌들이 모두 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명나라 초기의 『회회력법』 관련 연구는 『칠정산외편』과 함께 위와 같은 조선의 기록들과 현재 규장각에 전하는 이슬람력 관련 문헌들이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 전래된 『회회력법』이 조선에서 사용될 수 있는 역법이 되기까지에는 여러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는데 『칠정산내편』의 서문에 전하는 다음의 내용은 『칠정산외편』의 편찬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 『회회력법』을 구하여 이순지와 김담에게 비교해 보도록 하였는데, 중국의 역관(曆官)들에게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다시 윤문하고 바로잡아 『외편(外篇)』을 만들었다….[37]

위의 서문에는 중국 역관들에게 오류가 있어 이를 바로잡아 『외편』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오류는 『회회력법』의 역원(曆元)과 관계된 아주 중대한 오류였다.[38] 한역된 『회회력법』은 회력(回曆)의 역원(曆元)과 명(明)의 홍무 갑자년(1384) 사이의 적년(積年, 786년)을 회력의 태음년(太陰年)이 아닌 태양년(太陽年)으로 계산함에 따라 역원을 잘못 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39] 즉 역원을 히즈라 원년인 당(唐)의 무덕(武德) 임오년(622)이 아닌 수(隋)의 개황(開皇) 기미년(599)으로 취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칠정산외편』과 『회회력법』에서 정한 개황 19년(599)의 역원에 대해 『회회력법』 “회회력법석례(回回曆法釋例)”와 『칠정추보(七政推步)』의 “회회력법 적년풀이[釋回回曆法積年]” 조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볼 수 있다.

서역 아라비아년(개황 기미년)이 역원이다. 홍무 갑자년(1384)까지 계산한 적년(積年)이 786년이다.

위 기록은 아라비아년인 개황 기미년(599)부터 홍무 갑자년(1384)까지의 적년이 786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개황 기미년과 홍무 갑자년 사이의 적년(積年)을 태양년으로 계산했을 때의 결과이다. 그러나 ‘서역 아라비아년’의 원뜻은 아라비아력이 시작되는 해, 즉 히즈라 사건이 일어난 해를 말한다. ‘아라비아년’은 히즈라 원년인 622년을 말하는 것으로 히즈라력으로 786태음년인 해, 즉 A.H. 786년(1384)이 홍무 갑자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 역관들이 이해한 786년은 786태음년이 아닌 786태양년이며 이를 홍무 갑자로부터 소급해 회회력의 역원을 정한 것이다. 이 일은 중국 역관들이 이슬람력에서 적년 산정에 사용하는 1년의 길이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이로부터 『회회력법』의 역원이 히즈라년에서 개황 기미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역원이 히즈라년에서 개황 기미년으로 바뀌게 된 배경은 1396년에 편찬된 『위도태양통경』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다.[40] 원통(元統)의 서문에 따르면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은 중국과 이슬람의 역법을 합하여 하나로 만듦으로써 당대의 역법 제도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에 홍무 을축년(1385) 겨울 11월에 춘관정(春官正) 장보(張輔), 추관정(秋官正) 성저(成著), 동관정(冬官正) 후정(侯政)을 뽑아 회회 역관(回回曆官)에게 가서 배우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로부터 3년 후에 돌아와 그동안 배우고 터득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여 바쳤다. 원통이 살펴보니 회회 태양력은 춘분날이 계산의 기점이 되어 중국력과 그 출발점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회회력의 방법으로 모두 계산하되, 구하고자 하는 해의 직전 동지일[歲前天正冬至日]을 기산점으로 삼아 중국의 역법과 같게 하였다.[41]

하지만 앞서 설명하였듯이 중국의 역관들은 회회 역관이 알려 준 대통력과 히즈라력 역원 사이의 적년(積年) 786년을 회회 태음년이 아닌 회회 태양년으로 계산함에 따라 개황 기미년을 회회 태양력의 역원으로 삼는 실수를 범하였다. 역원이 히즈라년에서 개황 기미년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중국력의 연월일시를 히즈라력의 연월일시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위도태양통경』에 제시된 날짜 환산 방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한영호는 『위도태양통경』의 날짜 환산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회회 태양년의 기점인 천정동지와 회회 태음년의 기점인 회회력의 연시 사이에 계산한 동준(冬准)[42]의 값이 잘못 되었고, 둘째는 구하고자 하는 해의 천정동지일을 서역의 역일로 환산하고 이로부터 춘분의 날을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위도태양통경』에 제시된 환산식으로는 중국력과 서역력 간의 날짜 환산이 불가능하였으며 이러한 일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43]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역관들이 춘분으로부터 시작하는 『회회력법』의 태양년을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중국의 『대통력법』과 일치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역법은 구하고자 하는 해의 천정동지(天正冬至), 즉 전년(前年) 동지가 계산의 기점이 된다. 다시 말하면 개황 기미년의 천정동지는 599년이 아닌 598년의 동지(즉 598년 12월 20일)가 되고 이로부터 786태양년이 되는 해가 홍무 갑자년인 1384년이 되므로, 개황 기미부터 홍무 갑자까지를 786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역관들은 이슬람 역산서들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위도태양통경』에 실린 날짜 환산 방법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회회력법』의 날짜 환산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위도태양통경』에는 “추위도태양정식(推緯度太陽程式)”이라는 입성이 실려 있는데, 이 안에는 홍무 병자년(1396)의 대통력과 서역력의 날짜 및 해당일의 태양 행도 값들이 실려 있다.[44] 그런데 이 입성에 실린 값들과 내용을 비교해 보면 대통력에 대응되는 서역력의 날짜 및 해당일의 태양 행도 값들은 정확한 것으로 확인되나 『위도태양통경』의 방법으로는 입성 안에 제시된 서역력의 날짜가 계산되지 않는다. 즉 계산식은 틀린데 결과는 맞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입성에 실린 태양 행도 값들은 회회 역관의 도움을 받아 계산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표 2. 회회력법의 태양력과 태음력의 역원 및 세수와 월수

회회력법 원본

(페르시안 지즈)

중국의 회회력법

(명초 회회력법)

조선의 회회력법

(칠정산외편)

태양력 역원

       세수

       월수

A.D. 622.03.18

JD 1948320

(히즈라년 춘분)

춘분

각궁의 1일

A.D. 598.12.20

JD 19399831

(개황역원 전년 동지)

춘분 전 동지

각궁의 1일

A.D. 599.03.19

JD 1939920

(개황역원 춘분)

춘분

각궁의 1일

태음력 역원

       세수

       월수

A.D. 622.07.16

JD 1948440

매해 변동[45]

신월일

A.D. 598.04.13

JD 1939580

(태양력 역원 전 251일)

매해 변동

신월일

A.D. 598.04.11

JD 1939578

(태양력 역원 전 342일)

매해 변동

합삭일

이와 같이 중국력에 대응되는 회회력의 날짜를 계산할 수 없던 명나라의 경우와 달리 조선의 역관들은 『회회력법』의 동지 기점을 다시 춘분 기점으로 바꾸고, 구하고자 하는 해의 춘분일을 직접 회회 태음력의 날짜로 변환하는 식을 세운 후, 계산하고자 하는 날의 회회력 날짜를 구하였다.[46] 이로써 조선에서는 회회 태음력에 따라 작성된 입성을 사용하여 일월오성의 운동은 물론 일월식과 달의 오성능범까지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47] 즉 태양력의 역원은 그대로 개황 기미년(599)으로 두되 『회회력법』에서 정한 태양력과 태음력의 계산 기점을 바꾸고 히즈라력과 『칠정산외편』의 태음력 역원 차인 25태음년과 2일에 해당하는 칠정의 중심 행도를 보정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에서 정한 태양력과 태음력의 역원은 서로 차이가 나게 되었다. 히즈라력과 이 두 역법 간의 역원 차 및 각 역법의 세수(歲首)와 월수月首)는 다음과 같다.

위의 표에서 히즈라력과 달리 중국의 『회회력법』은 춘분이 아닌 동지가 태양력의 기점이다. 그리고 조선의 『칠정산외편』은 초생달이 처음 보이는 신월일(新月日)이 아닌 합삭일(合朔日)을 한 달의 시작일로 삼았다. 중국의 『회회력법』이 태양력의 기점을 동지로 정한 것은 중국력인 『대통력』의 체계로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칠정산외편』에서 합삭일을 한 달의 시작일로 정한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칠정산외편』의 편찬 목적이 역서 발행이 아닌 일월식의 예보였으므로 일식이 일어나는 합삭일을 한 달의 시작일로 정한 듯하다. 여기서 히즈라력과 『칠정산외편』 사이의 태음력 역원차가 25태음년과 2일이 되는 이유는 바로 두 역법의 월수 차인 합삭일과 신월일의 차가 2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정산외편』의 연구자들은 이제까지 두 역법의 역원차가 25태음년에 왜 2일을 더하는 값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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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히즈라력, 회회력법, 칠정산외편의 태양력과 태음력의 역원 관계[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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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위도태양통경』에 실린 추위도태양정식(推緯度太陽程式)[50]

4.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의 내용과 제작 연대

『칠정산외편』은 그 서두에 『칠정산내편』과 같은 체재에 따라 역원(曆元), 주세(周歲), 주월(周月), 월윤준(月閏准), 궁윤준(宮閏准), 주응(周應)[51] 등 계산에 필요한 천문 상수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태양(太陽), 태음(太陰), 교식(交食), 오성(五星), 태음오성능범(太陰五星凌犯)의 5개 부분으로 나누어 순서대로 그 추산 방법을 설명하고 아울러 계산에 필요한 입성(立成)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52]

그 동안 『칠정산외편』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었으나 발표된 논문의 수는 아직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칠정산외편』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입성에 대한 국내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53] 입성은 대부분 해, 달, 오행성의 위치 계산에 필요한 관측 수치와 이에 근거한 계산 결과 및 계산표, 그리고 별자리들의 위치를 기록한 성표 등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들을 조사해 보면 각 입성마다 그 제작 배경이나 시기 등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이 발견된다. 이 연구는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 중, “태양” 편에 제시된 “태양 최고 행도 및 일중 행도(太陽最高行度及日中行度)” 표와 “교식(交食)” 편에 제시된 “경위시 가감차(經緯時加減差)”와 “주야시 궁도분(晝夜時宮度分)” 표, 그리고 “태음오성능범” 편에 제시된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黃道南北各像內外星經緯度)” 표를 예로 하여 각 입성 안에 담긴 내용과 역사적 정보, 그리고 입성의 제작 시기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아보았다.

1) “태양의 최고 행도 및 일중 행도 입성”

『칠정산외편』의 “태양” 편에는 태양의 원지점(遠地点) 이동과 평균 운동에 관한 계산표로 “태양의 최고 행도 및 일중 행도 입성”이라는 표가 실려 있다.[54] 이 표들은 각각 총년(總年), 영년(寧年), 월분(月分), 일분(日分), 그리고 궁분(宮分) 입성으로 구성된다.[55] 다음은 이들 중 총년 입성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표 4. 태양의 최고행도와 일중행도의 총년 입성

총년(總年)

최고행도(最高行度)

일중행도(日中行度)

      1년[56]

600

630

660

690

720

1410

1440

0 10º 40' 28"

0 00º 58' 13"

0 00º 29' 07"

0 00º 00' 00"

0 00º 29' 07"

0 00º 58' 13"

0 12º 07' 49"

0 12º 36' 55"

 3 10º 40' 28"

 5 14º 25' 19"

 6 10º 40' 28"

 8 10º 40' 28"

 9 10º 40' 28"

10 18º 05' 21"

 4 10º 40' 33"

 5 10º 05' 33"

위의 총년 입성은 히즈라력의 역원(즉, 총년 1년)부터 회회 태음년으로 30년씩 경과한 해의 1월 1일 정오에 태양의 원지점과 평균 운행 위치가 어디인지를 추산해 놓은 표이다. 즉 회회력으로 30태음년 단위의 총년마다 태양의 원지점 위치를 나타내는 최고 행도와 평균 위치를 나타내는 중심 행도 값이 실려 있다.[57] 그런데 이 표에서 총년이 660년인 해의 최고 행도 값은 0 00° 00' 00"[58]으로 이 해를 기준으로 전후에 대칭되는 해의 최고행도 값이 같다. 이는 총년이 660년인 해, 다시 말하면 히즈라 원년으로부터 660태음년 되는 해를 기준으로 작성한 것을 나타낸다. 히즈라 원년의 첫 날(A.H. 1 Muharram 1)은 율리우스력으로 622년 7월 16일에 해당하므로 총년이 660년 되는 해의 첫날(A.H. 661 Muharram 1)은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59]

1태양년

= (365+31/128)일 = 365.2421875일

1태음년

= (354+11/30)일 = 354.3666667일 

660태음년

= 660(354.3666667/365.2421875)태양년

= 640.34837태양년

= 640태양년 + 127.2394일

위의 계산에서 660태음년은 640태양년과 127.2394일이 되므로 이를 히즈라 원년의 연시(年始)인 622년 7월 16일에 더하면 660태음년(A.H. 661) 1월 1일은 다음으로 계산된다.

622년 7월 16일+(640년+127.2394일) = 1262년 11월 15일

즉, 1262년 11월 15일(=JD 2182322)이 바로 총년 660년의 새해이자 원지점 계산의 기점일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칠정산외편』에 실린 태양 입성의 서두를 보면 “관측 당시 측정한 태양의 최고 행도는 2궁 29도 21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60] 1궁은 30°이므로 관측 당시의 최고행도 값은 89° 21'이 된다. 즉 기점일인 1262년 11월 15일에 태양의 원지점은 춘분점으로부터 89° 21'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므로 구하고자 하는 해의 태양의 원지점은 기점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89° 21'에서 해당 연월일의 원지점 위치 변화량만큼 감하고 그 이후는 더해서 얻는다.

그런데 측정 당시로 계산된 1262년은 흥미롭게도 이란의 마라가(Maragha) 천문대가 완성된 다음 해로서 마라가에서 천문표 제작을 위한 각종 관측이 시작되던 때와 일치한다. 원나라 초에 찰마노정을 비롯한 회회 사천감의 관원들이 대부분 이란의 마라가에서 파견된 천문학자였던 것을 고려하면 회회력법의 원본으로 여겨지는 페르시안 지즈(Persian Zij)는 마라가에서 제작된 일카니 지즈와 관련이 있으며 입성의 기본 자료와 체재 또한 이와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반 달렌(van Dalen)은 회회력법 원본에 실린 대부분의 입성들은 원나라 세조(世祖) 때인 A.D. 1270년경 회회 사천감에서 찰마노정 등이 직접 측정한 값들로부터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61] 아마도 원나라 초에 제작된 페르시안 지즈는 최신의 이슬람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새로 관측한 자료에 따라 기존의 천문 상수들을 개정하고 또 이 상수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입성을 제작한 듯하다. 그의 이러한 추측은 중국의 『회회력법』과 그 밖의 이슬람 지즈들이 정한 “태양의 1일 평균행도”를 비교한 다음의 표로부터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표 5. 이슬람 지즈들의 태양의 1일 평균행도[62]

태양의 1일 평균행도

출처

0;59.08.19.48.43.18

현대 측정치

0;59.08.19.49.51.40.14

회회력법 원본(1270년 경)

0;59.08.19.44.10.39

알카시 Ghiyāth al-Din al-Kāshī(1420년)

0;59.08.19.44.10.30.32

유누스 Ibn Yūnus(1000년)

0;59.08.19.43.47

알투시 Nasīr al-Din al-Tūsī(1262년)

0;59.08.20.35.14.38

만수르 Yahyā ibn Abī Mansūr(830년)

표 5에서 태양의 1일 평균 행도가 현대 측정치와 가장 가까운 역법은 회회력법으로 나타난다. 이는 마라가의 알 투시가 관측한 값은 물론 이슬람권의 어느 지즈에 실렸던 값들보다 정밀한 값으로 확인된다. 회회력법에서 정한 1태양년의 길이가 원나라 초 회회 천문대에서 새로 관측된 값을 그대로 따른 것인지, 아니면 그 후에 관측한 결과들을 반영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과거 어느 역법보다 더 정밀한 관측 값이나 자료들에 근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 “경위시 가감차 입성”과 “주야시 궁도분 입성”

『칠정산외편』의 “교식” 편에는 달의 진합삭(眞合朔) 시각 계산에 사용되는 “주야 가감차 입성(晝夜加減差立成)”과 달의 시차(視差) 보정을 위한 “경위시 가감차 입성(經緯時加減差立成)” 그리고 일출입 시각 계산을 위한 “주야시 궁도분(晝夜時宮度分) 입성” 등이 실려 있다.[63] 이들 중, “경위시 가감차 입성”과 “주야시 궁도분 입성”은 관측 지점의 위도와 관계 되는 표로서 입성에 실린 값들을 통해 어느 위도에 해당하는 표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첸쥬진(Chen Jiujin)은 『회회력법』에 실린 이 두 입성을 이용하여 관측 지점의 위도가 32도에서 32도 4분에 이르며, 이는 남경의 위도와 일치하므로 계산에 사용된 자료는 마사역흑 등이 실제 남경에서 관측한 값이라고 주장하였다.[64]

그런데 최근 리량(李亮)은 1366년 티벳에서 편찬된 『산주피니 지즈』에 실린 시차 보정 입성(parallax correction table)이 1385년에 편찬된 『회회력법』의 “경위시 가감차 입성”과 그 형태(layout)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65]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에 실린 “경위시 가감차 입성”은 형태는 물론 그 안에 실린 내용까지 모두 동일하므로 이들이 『산주피니 지즈』에 실린 입성의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산주피니 지즈』에는 위도가 38.1°와 32°에 해당하는 두 가지 시차 보정 입성이 실려 있으며 이들 중 32°에 해당하는 입성이 『회회력법』에 실린 “시차보정 입성”과 형태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모두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66] 이는 두 입성이 동일한 기원에서 유래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산주피니 지즈』보다 후에 편찬된 『회회력법』이 『산주피니 지즈』 또는 산주피니가 참고한 원본 지즈의 입성을 그대로 따른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13세기와 15세기 사이에 제작된 지즈들의 입성을 조사하던 중, 1440년 우르베그 천문대에서 편찬한 『술타니 지즈』에도 이와 유사한 시차보정 입성이 실려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 입성은 『회회력법』에 실린 입성과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을 보였다. 우선 『산주피니 지즈』나 『회회력법』의 경우처럼 한 두 지점의 위도에 대한 입성을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도가 25°에서 50°까지 5° 간격의 계산표를 모두 싣고 있었다. 이들을 『회회력법』의 시차 보정 입성과 비교해 본 결과 『회회력법』의 입성은 위도가 30°와 35° 사이에 해당하는 표로 나타났다.[67] 이어서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에 실린 “주야시 궁도분 입성”과 관련하여 『술타니 지즈』에 실린 주야각 표를 조사하던 중, 위도가 0°에서 50°까지 1° 간격으로 계산된 주야각 표를 발견하였다.[68] 이 입성은 위도에 따른 일출입 시각을 계산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표인데 이 입성에서 32°에 해당하는 주야각 표가 『회회력법』의 “서역 주야시 입성”과 『칠정산외편』의 “주야시 궁도분 입성”과 서로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69] 이는 『회회력법』에 실린 주야각 표가 남경에서 관측된 자료에 따라 계산된 것이 아니라 모력(母曆)인 페르시안 지즈에 실린 주야각 표 중, 남경의 위도(32°)에 해당하는 부분을 옮겨 실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페르시안 지즈는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술타니 지즈』처럼 위도에 따른 주야각 표가 실려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마라가의 『일카니 지즈』를 새로운 관측에 기초하여 개정한 것이 『술타니 지즈』라는 점으로 볼 때, 마라가에서 파견된 학자들이 편찬한 페르시안 지즈 역시 위도에 따른 주야각 표를 갖추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훗날 조선과 북경의 역관들은 왜 남경의 위도에 맞는 주야각 표를 보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유를 가정해보면, 우선, 한역된 『회회력법』에는 “서역주야시 입성”이라는 표만 실려 있을 뿐 위도에 따른 주야각 표가 실려 있지 않다. 또한 입성의 서두에 언급되어야 할 위도와 관련된 설명이 없기 때문에 회회력에서 위도에 따라 주야각 입성을 달리 사용하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서역 주야시 입성”이 남경의 위도에 해당하는 표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한역된 『회회력법』에는 일월오성의 추보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그 안에 실린 입성들의 제작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기 때문에 회회력에 따른 주야각(day or night angle) 표를 만들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이슬람 역법에서는 주야각의 계산에 삼각함수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지식이 없던 중국과 조선의 역관들은 당연히 회회력에 따른 주야각 표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회력법』의 편찬에 직접 참여한 마사역흑과 회회흠천감의 관원들은 이슬람력의 입성 제작이나 사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명나라 수도가 남경이므로 위도에 대한 언급 없이 남경에 해당하는 표만 옮겨 실었을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남경이 수도였던 시절에는 회회력에 의한 주야각 계산에는 문제가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회회 역관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관들이 회회 역관들의 도움을 받아 편찬한 중국식 『회회력법』에는 날짜 환산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입성의 사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회회력의 날짜 계산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후대의 역관들은 한역된 『회회력법』으로는 입성을 제대로 사용할 수조차 없었으므로 입성 자체의 문제점이나 사용법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없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홍무 31년(1398) 주원장이 죽은 후 회회흠천감의 기능은 완전히 축소되었고, 수도가 북경으로 옮겨진 후 중국 역관과 회회 역관의 교류는 거의 없던 것으로 전하므로,[70] 『회회력법』에 실린 입성의 사용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주요 이유는 만약 후대에도 회회 역관과의 교류가 활발했다면 북경의 위도에 해당하는 입성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이 이미 북경에서 사용되던 페르시안 지즈에 실린 시차 보정과 주야각 입성을 한역하여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하고 각각의 방법으로 정묘년(1447) 8월의 일식과 월식의 가령을 제작하면서, 『칠정산외편』에 의한 일출입 시각을 『칠정산내편』의 방법과 비교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칠정산외편』은 『회회력법』의 오류를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입성의 사용에 필요한 회회력의 날짜 계산도 가능하였으므로 입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칠정산외편』 역시 『회회력법』에 실린 남경의 주야각 표를 그대로 사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연하게도 정묘년 8월의 일식이 위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추분 근처에서 일어나 두 역법으로 구한 일출입의 시각차를 인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71] 그렇지 않다면 이미 『칠정산내편』의 방법에 따라 제작된 한양의 주야각 표가 있으므로 굳이 『칠정산외편』의 방법으로 새로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칠정산내편』의 발문에는 “일출입은 곳에 따라 다르므로 여러 역법의 수치가 서로 다르다”고 언급하면서 “『칠정산외편』에서는 서역력의 옛 값을 어느 것도 건드리지 않고 실어 놓았으니,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기 위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72] 이 내용에 담긴 뜻은 서역력의 방법으로는 일출입 시각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니 아예 건드리지 않고 단지 참고용으로만 실어놓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3)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

『칠정산외편』의 마지막 장인 “태음오성능범” 편에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黃道南北各像內外星經緯度立成)”이라는 표가 실려 있다. 이는 총 277개의 별들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성표(星表)로서 황도 남북의 10도 범위 안에 있는 15개 별자리 별들의 황경과 황위의 좌표가 실려 있다.[73] 그런데 이 표의 서두를 잘 살펴보면 성표의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각 별자리의 황경은 매 5년마다 4분씩 늘어난다. 홍무(洪武) 병자년(1396)은 적년(積年)이 798년으로 이미 4분이 더해졌고, 신사년(1401)에 이르면 적년이 803년이 되므로 4분을 더한다. 이후 5년마다 4분을 누가(累加)하여 영구(永久)히 미래(未來)에 이른다.[74]

위 인용문에서 “각 별자리의 황경은 5년마다 4분이 늘어나며 홍무 병자년(1396)에 이미 4분이 더해졌다”는 내용이 주목된다. 이는 이 성표가 홍무 병자년에 완성되었으며 원본이 되는 성표의 기점은 이보다 5년 앞선 1391년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 성표는 1385년에 번역 편찬된 『회회력법』에는 실릴 수 없는 표가 된다. 그런데 중국과 서역의 역법을 서로 회통해서 쓰게 하는 과정에서 편찬된 『위도태양통경』 역시 홍무 병자년에 완성된 것을 주목하면, 명에서 『회회력법』이 번역, 편찬된 후에도 10년 넘게 『회회력법』과 관련된 새로운 관측과 연구가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시운리의 연구에 따르면 홍무(洪武)년간(1368-1398)에 제작된 의기로, 홍무 17년(1384)에 제작된 관성반(觀星盤)[75]과 홍무 24년(1391)에 제작된 혼천의(渾天儀), 그리고 홍무 29년(1396)에 제작된 또 다른 혼천의가 있었다.[76] 그런데 이 의기들이 제작된 시기와 목적 등을 비교해 보면 이들 모두 회회력법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회회력법이 편찬되기 1년 전에 제작된 “관성반”은 그 명칭부터가 중국의 전통 의기와 같지 않아 보이며, 그 후 혼천의가 제작된 홍무 24년은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에 실린 성표의 기점과 일치하는 해이다. 또한 그 다음으로 혼천의가 제작된 홍무 29년은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과 『위도태양통경』이 완성된 해와도 일치하는데 이러한 결과는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의 성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7]

표 6. 『칠정산외편』에 실린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 입성”

황도남북각상성

(黃道南北各象星)

각성경도

(各星經度)

각성위도

(各星緯度)

각성등제

(各星等第)

각성수차

(各星宿次)

쌍어상내 제10성

쌍어상내 제11성

백양상내 제 1성

백양상내 제 5성

백양상내 제 2성

사자상내 제 6성

사자상내 제 8성

사자상내 제 5성

쌍어상내 제 8성

쌍어상내 제 9성

001º09'

005º04'

024º24'

024º25'

025º06'

420º34'

420º52'

420º54''

1124º54'

1129º07'

N 3º40'

N 2º05'

N 7º50'

N 5º50'

N 8º46'

N 8º30'

N 0º10'

S 0º10'

N 5º47'

N 5º30'

제4등 중성

제4등 중성

제3등 중성

제4등 중성

제3등 중성

제2등 대성

제1등 대성

제5등 소성

제4등 중성

제6등 소성

벽수 동남 무명성

규수 남 무명성

루수 남 무명성

루수 남 무명성

루수 남 무명성

헌원 북 무명성

헌원 대성

어녀성

실수 동남 무명성

벽수 동남 무명성

위 성표에는 황도 12궁으로 표시되는 서양의 별자리 이름이 먼저 제시되고, 이어서 별들의 황도 남북에서의 위치와 등급 그리고 이에 대응되는 동양의 별자리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서양 별자리에 대응되는 동양 별자리의 이름이 없는 경우는 대부분 28수(宿)상에서 동서남북의 위치로만 표시된 채 무명성(無名星)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고, 별들의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은 1에서 6까지의 숫자와 대, 중, 소의 크기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성표 상에 기록된 별들의 위치와 순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특히 첫 번째 별로 나오는 ‘쌍어상내 제10성(雙魚像內第十星)’과 마지막 별로 기록된 ‘쌍어상내 제9성(雙魚像內第九星)’은 성표의 관측 년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별이다. 그러한 이유는 황경의 기점인 춘분점이 쌍어상내 제10성과 쌍어상내 제9성의 황경 사이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78] ‘쌍어상내’는 황도 12궁 중 쌍어궁(雙魚宮), 즉 물고기[Pisces] 자리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 춘분점이 속한 별자리가 이미 백양궁에서 물고기자리인 쌍어궁로 이동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춘분점이 들어 있는 궁을 보통 백양궁이라 부르는데 그 연유는 기원전 5세기 경, 옛 바빌로니아에서 황도대[zodiac]의 12 성좌(星座)를 12개의 균일한 궁[sign]으로 나누던 때로 올라간다. 당시의 춘분점은 양[白羊, Aries]자리 초입에 있었으므로 춘분점에서 시작하는 첫 궁을 백양궁이라고 하였고 이로부터 춘분점이 든 궁을 백양궁이라 칭하였다.[79] 하지만 춘분점은 세차(歲差)의 영향으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한 결과 오늘날의 춘분점은 물고기자리에 들어있어 이 별자리 주변이 12궁의 첫 궁인 백양궁이 된다. 현재 태양이 양자리에 드는 시기는 춘분보다 한 달 정도 뒤가 되는데 위 성표는 이미 14세기에 춘분점이 물고기자리에 들어선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아랍과 동양의 별자리를 한 성표 상에서 서로 비교해 볼 수 있게 된 것은 명나라 흠천감의 중국 역관과 회회 역관들의 공동 연구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아랍 성표의 제작에는 회회흠천감의 마합마(馬哈麻)와 그의 동료들의 참여가 있었을 것이고, 완성 단계에서 아랍과 중국의 별자리를 동정하는 과정에서는 회회 역관과 중국 역관들 사이의 공동 연구가 있었을 것이다. 좀 더 가정해 보면 관성반(觀星盤)으로 관측하거나 세차 보정이 이루어진 아랍의 별자리들은 1391년에 제작된 혼천의[360도법]로 검증하는 관측이 있었을 것이고, 그 후 1396년[홍무 병자년]에 새로 제작된 중국식 혼천의[365도법]를 통해서는 아랍의 별자리와 동양의 별자리를 서로 비교 동정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80]

4) 입성의 분석으로 보는 이슬람 역산법의 전래 과정

앞서 『칠정산외편』 제1장의 “태양”과 제3장의 “교식” 그리고 마지막 장의 “월오성능범” 편에 실린 입성들을 예로 하여 각 입성들이 담고 있는 내용 및 제작 경위와 시기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로부터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들은 1260년대부터 13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마라가 천문대와 원의 회회 사천감 그리고 명초 남경의 한족과 회족의 흠천감 등에서 제작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원나라 사천감에 전하던 회회력법의 페르시아어 원본은 기본적으로 북경 천문대의 관측 자료에 기초한 것이겠으나 그 안에 실린 태양 운동의 계산 기점은 마라가 천문대의 관측 자료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회회력법』에 앞서 티벳에서 편찬된 『산주피니 지즈』의 시차(視差) 보정과 주야각 입성 그리고 행성 운동에 관한 입성은 『회회력법』과 동일한 기원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명나라 흠천감에서 제작한 중국식 용어의 입성들과 오성능범의 계산에 사용된 아랍의 성표는 명나라의 중국 역관과 회회 역관 사이의 공동 연구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회회력법』의 날짜 환산 방법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끝내 깨닫지 못한 명나라의 역관들은 입성의 문제점은 물론 입성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회회력법』에 담긴 오류와 문제는 훗날 조선의 역관들에 의해 풀려 서울에서도 일월식 계산이 가능한 역법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나 조선의 역관들 역시 위도 보정이 필요한 입성들을 보정 없이 사용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일월식 예보의 정확성에 흠이 가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5. 맺음말

그리스의 『알마게스트』에 기초한 아랍의 역법이 서역으로부터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전래되는 과정과,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회회력법』이 조선의 『칠정산외편』으로 편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역사적으로 원ㆍ명의 역법사를 특색지우는 한 요소는 회회력가(回回曆家)들의 등장이었다. 원의 판도는 멀리 서방으로 뻗쳐서 학술과 문화면에서 뛰어난 회회교도가 많이 원으로 초빙되어 왔다.[81] 이 과정에 이슬람 천문학이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명에 이르러 중서(中西) 역법의 회통(回通)을 명한 주원장의 뜻에 따라 이슬람 역법의 중국식 이해와 수용이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 역법에 대한 명나라 역관들의 이해 부족과 실수로 그 실제적인 완성과 활용은 예상치 않게 조선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조선의 역관들은 명에서 수입한 이슬람 역산서들을 교정하는 과정에 『위도태양통경』에 담긴 날짜 환산 방법과 추보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회회력법』의 문제점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회회력법』의 역원을 고치고 새로운 날짜 환산식을 만드는 한편, 이슬람력과 『칠정산외편』의 역원 차로 생기는 칠정의 중심 행도를 보정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아쉽게도 위도와 관련된 입성의 사용법에 미진한 점이 있었지만 한양에서 일어나는 일월식은 물론 달이 오성을 가리는 능범의 추보까지 가능한 역법으로 거듭났다.

이는 이슬람 역법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이해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결과였으며 세종대 당시 20여 년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진행된 천문 역법 사업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랍에서 출발한 이슬람 역법이 이란의 마라가 천문대와 원의 회회 사천감을 거치고, 명의 회회흠천감과 한족 흠천감의 공동 연구로 탄생한 것이 중국의 『회회력법』이었으나 그 진정한 완성과 활용은 조선의 『칠정산외편』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투고: 2017년 11월 30일, 심사 완료: 2018년 4월 19일, 게재 확정: 2018년 4월 19일)


[1] 지혜의 집(House of Wisdom): 828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설립한 번역 전문 기관을 말한다. 이때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박해를 피해 아랍 세계로 망명해 온 네스토리우스(Nestorius) 교도들로, ‘지혜의 집’ 책임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이며 아랍인인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Hunayn ibn Ishaq, 808-873)였다. 후나인의 초기 번역 작업은 주로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3개 국어에 능통해 그리스 어를 시리아 어(Siraic)로 옮긴 다음, 이를 다시 아랍어로 중역(重譯)했다. 임경순 『과학사의 이해』 (다산출판사, 2004), 43-44.

[2] 김영식⋅박성래⋅송상용, 『科學史』 (전파과학사, 1992), 41-44.

[3] 『疇人傳』 “吳伯宗”의 기록에 따르면, 홍무 15년에 명 태조가 대학사 吳伯宗과 翰林 李翀을 불러 서역 천문서를 번역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명사』에는 홍무 14년 가을에 태조가 “한림 이충과 오백종에게 명하여 회회 태사 마사역흑 등과 함께 그 책을 번역하도록 명하였다”고 전한다. 陳久金, 『回回天文學史硏究』 (廣西科學技術出版社, 1996), 122-126 참조.

[4] 魯密: 『職方外紀』에 실린 “萬國全圖”에는 사우디 반도의 남부 지방이 ‘노밀’로 표기되어 있다.

[5] 『天文書』: 명나라 회회흠천감의 曆官이던 馬哈麻가 태조 주원장의 명을 받고 페르시아 Kushyar ibn Labban(971-1029)의 Introduction to Astrology를 번역한 책이다. 훗날 청대의 학자들이 명에서 번역한 천문서라는 뜻으로 『明譯天文書』라 불렀다.

[6] 이러한 내용은 『明史』에 전하는 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후에 馬氏 집안에 내려오던 『聚進堂馬氏宗普』와 마덕노정의 후손이 소장하던 『大測堂馬挂軸』이 발견되면서 『명사』의 기록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陳久金, 『回回天文學史硏究』, 106-126.

[7] 一世一元: 한 임금의 재위 기간 동안에는 단일한 年號를 사용하여 오직 하나의 元年만을 준용한다는 규칙이다. 명대 이전에는 한 임금이 수차례 연호를 바꾸어 改元한 사례가 많았는데, 명 태조 주원장이 처음 이 규칙을 세워 청나라가 말기까지 지켜졌다.

[8] 石雲里․魏發, “元統『緯度太陽通經』的發見―兼論貝林『回回曆』的原刻本”, 『中國科技史雜誌』 30卷 1號 (北京: 科學出版社, 2009), 31-45.

[9] A.H.: 히즈라 이후라는 뜻으로 이슬람력은 마호메트가 성천한 날을 전후로 A.H.(After Hijra, or Anno Hijra)와 B.H.(Before Hijra)로 나뉜다.

[10] 히즈라력: 히즈라 기원의 역이라는 뜻이다. 아랍력 또는 이슬람력을 히즈라력이라 부른다.

[11] 히즈라력의 역원은 천문학적 역원(astronomical epoch)과 실제 관측에 의한 역원(civil epoch)의 두 가지가 고려된다. 태양의 평균 운동으로 계산된 천문학적 역원은 서력 622년 7월 15일이며, 실제 관측된 역원은 622년 7월 16일이다.

[12] 이슬람력은 30태음년에 11일의 윤일을 둔다. 따라서 1태음년의 평균 일수는 (354+11/30)일이 된다. 평년은 354일, 윤년은 355일로 19년의 평년과 11년의 윤년을 둔다.

[13] B. van Dalen, Islamic Astronomical Tables: Mathematical Analysis and Historical Investigation (Farnham, Surrey, England: Ashgate Publishing Limited, 2013), Ⅸ, 4-6.

[14] 입성이란 계산 결과를 數表로 제시하여 복잡하거나 번거로운 계산 과정을 생략하고 구하려는 값을 수표에서 읽는 것만으로 즉시[立, 立卽] 계산을 완성[成]할 수 있도록 한 표이다.

[15] ‘지즈(Zij)’: 역법(calendar), 천문표(almanac or astronomical table), 천문학 편람(astronomical handbook)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이 논문에서는 의미의 다양성을 그대로 살리고자 원어대로 ‘지즈’라 칭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만들어진 거의 모든 ‘지즈(Zij)’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설명된 이론에 기초한다. (B. van Dalen, “Islamic and Chinese Astronomy under the Mongols: a Little-Known Case of Transmission”, in Y. Dold-Samplonius, J. Dauben, M. Folkerts, and B. van Dalen, eds., From China to Paris: 2000 Years Transmission of Mathematical Ideas (Stuttgart: Steiner, 2002), 327-356 중 330.)

[16] E. S. Kennedy, A Survey of Islamic Astronomical Tables (Philadelphia: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956), preface.

[17] 현재 전해지는 『회회력법』으로는 중국 북경대학 도서관 소장 淸 抄本과 북경도서관 소장 명 內府刻本 및 일본 內閣文庫 소장 明 刊本 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모두 明初의 漢譯本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가 成化 13년(1477) 南京 欽天監副 貝琳이 重修한 본과 내용이 동일하다. 동일한 책이 『四庫全書』에는 『七政推步』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이는 『사고전서』 편찬 시에 제목만 바꾼 것이다.

[18] 札馬魯丁(Jamal al-din): 원래 부하라(Buhara) 출신의 천문학자이다.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를 위해 지원 4년(1267), 마라가 천문대로부터 7종류의 이슬람 의기들을 중국으로 가져왔으며 원나라 초에 세워진 회회사천감의 초대 감정을 지냈다.

[19] 『明史』 卷37, “回回曆法一”: “西域曆術見於史者 在唐有九執曆 元有札馬魯丁之萬年曆….”

[20] 貝琳, 『七政推步』 권1: “回回曆法 乃西域黙德訥國王馬唅穆特所作 元時入中國而未行 洪武初得其書于元都 十五年命翰林李翀吳伯宗 回回大師馬沙伊赫等譯其書….”

[21] 『明史』 卷37, “回回曆法一”: “但其書多脫誤 蓋其人之隸籍臺官者 類以土盤布算 仍用本國之書.”

[22]  Chen Jiujin, “The Comparative Research Between Huihui Calendar, Qizhensuan Wai and Qizhentuibu,” Oriental Astronomy from Guo Shoujing to King Sejng (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1997), 105-111 중 105-106. 이 논문에서 진구금은 회회력의 立成表(계산표) 중 經緯時加減立成表와 西域晝夜時立成表를 이용하여 이 표를 작성한 관측 지점의 위도가 남경의 위도와 일치한다는 사실로부터 이 표의 데이터가 마사역흑 등이 남경에서 실제 관측한 값이라고 주장하였다.

[23] 13세기-15세기 사이에 편찬된 이슬람력 지즈 중, 회회력과 연관되는 것들을 정리한 표이다. 표 안의 제작 연대는 '히즈라년(AH)/서력(AD)'으로 표시하였다. B. Van Dalen, Islamic Astronomical Tables (cit. n. 13), Ⅸ 2쪽에 제시된 표 “Calendars described detail in some important Ziies”에서 일부 인용하였다.

[24] 『술타니 지즈(Sultani Zij)』: 사마르칸트의 우르베그 천문대 학자들이 우르베그의 후원을 받아 편찬한 이슬람 지즈이다. 『술타니 지즈』에 실린 성표(star catalogue)는 당시까지 편찬된 성표 중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졌다.

[25] 『산주피니 지즈(Sanjufini Zij)』: 1366년 12월, 사마르칸트 지방 출신의 산주피니(al- Sanjufini)가 칭기즈 칸의 7대 직계 손으로 티벳의 총독이던 라드나(Radna) 왕자의 후원을 받아 편찬한 이슬람 지즈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Arabic 6040’으로 전한다. B. Van Dalen, Islamic Astronomical Tables (cit. n. 13), 98.

[26] B. van Dalen, “Islamic and Chinese Astronomy under the Mongols” (cit. n. 15), 338-339.

[27] 『일카니 지즈(Ilkhani Zij 또는 Zij-Il-Khan)』: 여기서 일 칸은 일한국(이란)의 훌라구(Hulagu)를 말한다. 이 지즈는 알 투시(al-tusi)가 훌라구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1261) 마라가 천문대의 관측 자료에 기초하여 1272년에 완성하였다.

[28] 알 투시 (Nasir al-Din Tusi, 1201-1274): 페르시아 출신의 무슬림 학자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신학자이다. 150권에 달하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된 저작들을 남겼다.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일한국(一汗國, Iran)을 세운 훌라구의 수행 점성술사이자 장관이었다.

[29] 『元史』 卷52, “曆志1”: “至元四年 西域札馬魯丁撰進萬年曆 世祖稍頒行之.”

[30] 陳美東, 『中國科學技術史 天文學卷』 (北京: 科學出版社, 2000), 522-523에서 재인용. “其測候之法 但用十二宮 而分三百六十度.” 송렴(宋濂, 1310-1381)은 『元史』의 편찬을 주관한 인물이다.

[31] 성주덕 편저, 이면우 등 역주, 『서운관지』 (소명출판사, 2003), 94-95.

[32] 『世宗實錄』 卷75: 25b, 18年 12月 16日.

[33] 이은희, “이순지⋅김담과 『칠정산』”, 『천문학자 김담 탄생 600주년 기념학술회의 자료집』 (2015).

[34] 이순지, 『四餘纏度通軌』 “跋文” (1444).

[35] 『日月食假令』: 『칠정산외편』의 방법에 따라 1447년에 있을 일식과 월식을 예로 하여 그 계산 과정과 결과를 실은 책으로, “칠정산외편 정묘년 일식가령”과 “칠정산외편 정묘년 월식가령”을 합하여 칭한 것이다. 세종 갑자년인 1444년에 간행되었다.

[36] “全州史庫曝曬形止案”: 사고에 보관되던 실록을 3년에 한 번씩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曝曬라고 하는데 이때 실록과 함께 보관되던 서적들의 목록이 형지안에 기록되어 있다. 전주 사고에 있던 자료들을 포쇄하면서 작성한 서적의 목록이 “전주사고포쇄형지안”이다. 임진왜란 발발 전 해인 선조 24년(1591)에 각 사고의 서적 목록이 기록된 포쇄형지안이 규장각에 전한다.

[37] 『世宗實錄』 卷 156:1, “又得回回曆法 命李純之金淡考校之 乃知中原曆官有差謬者 而更加潤正爲外篇”: 유경로⋅이은성⋅현정준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별책 26책, 칠정산내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3), 13.

[38] Yunli Shi, “The Korean Adaptation of the Chinese-Islamic Astronomical Tables,” Arch. Hist. Exact Sci. 57(2003), 25-60.

[39] 回回曆은 回回太陰曆과 回回太陰曆으로 나뉘며, 각각 회회 태음년[(354+11/30)일]과 회회 태양년[(365+31/128일)]을 1년의 단위로 한다. 회회 태음력은 윤달을 두지 않는 순 태음력으로 12삭망월이 1태음년이고, 회회 태양력은 춘분일을 歲首로 하여 춘분에서 다음 해 춘분까지를 1태양년으로 한다.

[40] 『緯度太陽通經』: 홍무 병자년(1396)에 명나라 흠천감의 감정이던 元統이 편찬하였다. 세종 때 조선으로 전해져 1444년에 갑인자로 다시 간행되었으며 현재 규장각 본으로 전한다. 내용은 이슬람 역법의 태양 계산 부분에서 춘분을 연초로 삼던 것을, 어떻게 동지를 연초로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元統은 명나라 때 이슬람 역법을 받아들이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서역의 날짜를 중국의 날짜로 환산하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슬람 역법사 연구에 새롭고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41] 元統, 『緯度太陽通經』 (甲寅字本) “序” (1444): “洪武乙丑冬十一月 欽蒙聖意念玆 欲合而爲一 以成一代之曆制 受命 選春官正張輔 秋官正成著 冬官正侯政 就學于回回曆官 越三年 有成 旣得其傳 備書來歸….”

[42] 冬准: 『회회력법』의 태양력 기점(동지)과 태음력 기점 사이의 날수를 말한다. 동준은 『칠정산외편』의 周應에 대응되는 개념이라 하겠으나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은 역원뿐만 아니라 태양력의 기점 또한 동지와 춘분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준(=251일)과 주응(=342일)의 값은 같지 않다. 『위도태양통경』은 회회 태양력의 기점(599년 前年 동지)인 598년 12월 20일과 회회 태음력의 기점(回回年始日)인 598년 4월 13일 사이를 251일이 아닌 241일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칠정산외편』과 『회회력법』의 역원 비교 및 날짜환산 알고리즘에 대한 분석은 다음의 논문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E. H. Lee, “A Comparative Study of the Chinese Huihui-lifa and the Korean Chiljeongsan Oepyeon Calendars: Focusing on the Date-Conversion Algorithm,” History of World Calendars and Calendar-making,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in Commemoration of the 6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Kim Dam (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2017), 79-85.

[43] 한영호, “조선의 回回曆法 도입과 『칠정산외편』”, 『민족문화』 45 (2015), 138-144.

[44] 이 입성에는 중국력과 서역력에 의한 날짜 및 구하고자 하는 날 태양의 위치를 계산할 때 필요한 값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입성에서 회회력은 서역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45] 『회회력법』에서 회회 태양력의 달은 ‘변동하지 않는 달[不動的月; 不動之月]’, 회회 태음력의 달은 ‘변동하는 달[動的月; 動之月]’이라 칭한다. 회회 태양력은 한 해가 고정적으로 춘분일에 시작하나, 윤월을 두지 않는 회회 태음력은 한 해의 시작이 매해 변하므로 “동적월”이라 칭한 것이다.

[46] 유경로 등, 『칠정산내편』 (각주 37), 31-37.

[47] E. H. Lee, “Comparative Study,” 80-84에는 『회회력법』과 『칠정산외편』 간의 날짜 변환식 차이점과 역원 차에 해당하는 천문 상수의 보정(즉, 경도 보정)에 대한 설명이 있다.

[48] 『칠정산외편』의 태음력의 역원인 AD 598년 4월 11일은 리우(Bao-Lin Liu)와 피알라(Alan D. Fiala)의 자료와 비교해 볼 때 신월일이 아닌 합삭일로 확인된다. Bao-Lin Liu and Alan D. Fiala, Canon of Lunar Eclipses, 1500 B.C.-A.D. 3000 (Richmond: Willmann-Bell, 1992), 100.

[49] 『회회력법』의 冬准 251일과 『칠정산외편』의 周應 342일 및 히즈라력과 『칠정산외편』의 태음력 역원차가 25태음년과 2일이 되는 관계를 보여준다. 회회태음년의 길이는 평년이 354일, 윤년이 355일이다. 『칠정산외편』에 제시된 윤년법에 따르면 B.H. 25년(A.D. 598. 4. 13-599. 4. 3)은 윤년이 되므로 이 해는 1태음년의 길이가 354일이 아닌 355일이다.

[50] 推緯度太陽程式: 『위도태양통경』에 실린 홍무 29년(1396) 병자년의 태양행도 입성이다. 훗날 계산하는 모든 태양의 추보는 이 정식을 규례로 삼도록 하였다. 이 입성은 대통력에 대응하는 서역 월일을 같이 비교해 놓았는데 여기서 서역 월일은 회회 태음력의 월일, 즉 히즈라력의 월일을 말한다. 이 입성으로부터 『위도태양통경』의 태양행도 계산 기점은 히즈라력의 춘분[戌宮 1일]이 아닌 중국력의 동지[丑宮 1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51] 周歲: 태양년의 정수일수, 365일. 周月: 태음년의 정수일수, 354일. 月閏准: 30태음년의 소수일분, 11일. 宮閏准: 128태양년의 소수일분, 31일. 周應: 『칠정산외편』의 태음력 기점부터 599년 춘분일까지 일수, 342일.

[52] 유경로ㆍ이은성ㆍ현정준 역주,『칠정산외편』(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1-513

[53] 『칠정산외편』에 실린 입성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아랍의 성표라 할 수 있는 “황도남북 각상내외성 경위도(黃道南北各像內外星經緯度)” 입성에 대한 전준혁 등의 연구가 유일하다: Jeon, et al., “Study of the Star Catalogue (Epoch AD 1396.0) Recorded in Ancient Korean Astronomical Almanac,”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454:1 (2015), 1086-1104.

[54] 태양의 最高 行度와 日中 行度: 태양의 최고 행도는 태양의 원지점이 위치한 곳의 황경 값을 나타내고, 일중 행도는 태양이 평균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위치, 즉 평균 위치의 황경 값을 나타낸다. 유경로 등 역주,『칠정산외편, 18-22.

[55] 회회 태음력으로 총 1,440년 동안 30년, 1년, 1월, 1宮, 1일 간격으로 태양의 최고 행도 변화를 기입하였다.

[56] 위의 표에서 총년 1년의 기점은 히즈라 역원인 622년 7월 16일이 된다. 그러나 이 기점은 총년 1년이 아닌 0년의 시작점이라고 해야 옳다.

[57] 총년 입성이 총년 단위를 30태음년으로 취한 것은 회회력법이 30태음년마다 11일의 윤일을 두어 30년 주기로 태음년의 길이가 같아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58] 0 00º 00' 00" : 여기서 0은 0궁을 뜻한다. 1궁이 30º이므로 1 = 30º를 나타낸다.

[59] 회회력에서 정한 1태양년의 길이는 (365+31/128)일이고, 1태음년의 길이는 (354+11/30)일이다. 이러한 관계로 128태양년 동안에는 31일의 윤일을 두고, 30태음년 동안에는 11일의 윤일을 두어 회회 태양년과 회회 태음년의 실제 길이와 맞추는 방법을 사용한다.

[60] 『世宗實錄』 卷159, “太陽 第1”: “當時測定最高行度 二宮二十九度二十一分”.

[61] B. van Dalen, “Islamic and Chinese Astronomy under the Mongols” (cit. n. 15) 327-356.

[62] 태양의 1일 평균 행도: 태양이 하루 동안 움직이는 평균 행도를 말한다. 周天 360도를 1태양년의 날짜로 나누어 얻는다. 표 5에서 “0;59.08.19.48” 등으로 표시되는 1일의 행도 값은 0도 59분 08초 19미 48섬을 뜻한다. <표 5>에 제시된 태양의 1일 평균행도 값들은 B. van Dalen, “Islamic and Chinese Astronomy under the Mongols” (cit. n. 15), 348에 실린 표에서 일부 발췌하였다.

[63] “주야 가감차 입성”은 현대 천문학의 균시차에 해당하는 값들을 나타내는 표이고, “경위시 가감차 입성”은 합삭 때 바라본 달의 위치가 지표면의 관측자 위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視差, 즉 달의 경도와 위도 그리고 합삭 시각에 대한 시차인 經差, 緯差, 時差에 대한 보정 값들을 싣고 있는 표이다. “주야시 궁도분 입성”은 관측자의 위도에 해당하는 주야각을 태양의 황경에 따라 계산해 놓은 표로서, 이 표를 사용하면 구하고자 하는 날의 일출입 시각을 계산할 수 있다.

[64] Chen Jiujin, “Comparative Research” (cit. n. 22), 105-106.

[65] Li Liang  “Arabic Astronomical Tables in China: Tabular Layout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Transmission and Use of the Huihui lifa,” EASTM 44 (2016), 21-68.

[66] B. van Dalen, Islamic Astronomical Tables (cit. n. 13), 98-106.

[67] A. A. Akhmedova (tr.), Ulugh Beg Muhhamad Taragay (1394-1449): Zij New Huragan Astronomical Tables (Tashkent: Tashkent publishing house “Fau” of the Uzbekistan Academy of Sciences, 1994), 181-183.

[68] 술타니 지즈에는 태양이 1궁(0°)에서 12궁(360°)까지 운행하는 동안 각 궁의 매 황경에 대한 주야각 표가 0°에서 50°까지 각 위도마다 계산되어져 있다. 같은 책, 103-136.

[69] 회회력법의 입성에는 분 단위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술타니 지즈에는 섬 단위까지 기록된 것이 다르다. 그러나 술타니 지즈의 입성 값들을 반올림하면 회회력법의 입성 값과 거의 일치한다.

[70] 石雲里․魏發, “元統『緯度太陽通經』的發見” (각주 8), 41-42.

[71] 정묘년 8월의 일식은 율리우스력으로 1447년 9월 10일, 그리고 그레고리력으로는 9월 19일에 일어났다. 그레고리력으로 9월 21일이 이 해의 추분이었는데 춘ㆍ추분 근처에서는 일출입 시각이 위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칠정산외편』의 방법으로 계산한 이 날의 일출입 시각은 『칠정산내편』으로 구한 결과와 2분의 차가 난다. 그러나 한양에서 남경의 위도에 해당하는 “주야시 궁도분 입성”을 그대로 사용하였을 경우, 동지와 하지에서는 일출입 시각의 오차가 약 15분까지 이르므로 춘추분점 근처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식이 일어났을 경우 대식의 진행 유무와 진행 시각 계산에 오차가 커질 수 있다.

[72] 『七政算內篇』 “跋文” (1444).

[73] 陳久金, 『回回天文學史硏究』 (각주 3), 138.

[74] 『世宗實錄』 卷163, “太陰五星凌犯 第5”: “各像經度每五年加四分 洪武丙子積七百九十八算巳加四分 至辛巳年八百三算又當加四分 累五年加之至永久.”

[75] 觀星盤: 별을 관측하는 판(plate)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의기는 서양의 astrolabe로 여겨진다.

[76] Yunli Shi, “Korean Adaptation” (cit. n. 38), 49.

[77] 유경로 등 역주,『칠정산외편, 494-507.

[78] 성표에 기록된 첫 번째 별인 쌍어상내 제10성의 황경은 001°09' (λ=1°09')이고, 마지막 별인 쌍어상내 제9성의 황경은 1129°07' (λ=359°07')이다. 춘분점이 황경의 기점(=000º00')이 되므로 성표 제작 당시 춘분점은 쌍어상내 제10성과 9성 사이에 있었다.

[79] Nick Kanas, Star Maps: History, Artistry, and Cartography (Chichester: Praxis Publishing Ltd, 2007), 49-65; Michael Hoskin, ed., 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Astronom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28-29.

[80] 성표 제작의 순서와 단계로 보았을 때, 1391년에 제작된 혼천의는 360°환으로 된 아랍 계통이고, 1396년에 제작된 혼천의는 중국식의 365도 또는 365와 1/4도 환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81] 藪內淸ㆍ劉景老 譯編, 『中國의 天文學』 (전파과학사, 1985),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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