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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18), 1-27

[연구논문] 함포(艦砲)의 배치를 중심으로 본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 연구 (A Study on the Yi Sunsin Turtle Ship Structure Focusing on the Deployment of Naval Guns)

by 채연석 (CHAE Yeon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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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This study aims to reveal the structure of the Yi Sunsin turtle ship by considering the ways how a total of 19 naval guns were arranged in the turtle ship.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is study, two largest guns (cheonja chongtong) were placed at the front of the ship on the second floor; two second-largest guns (jija chongtong) at the front on the third floor; one third-largest gun (hyeonja chongtong) at the front on the third floor; two third-largest guns at the rear end on the third floor; twelve fourth-largest guns (hwangja chongtong) along the side on the third floor. The findings on the deployment of naval guns support the hypothesis that the Yi Sunsin turtle ship had a three-story structure.
주요어 Yi Sunsin turtle ship, naval guns, cheonja chongtong, jija chongtong, hyeonja chongtong, hwangja chongtong

투고: 2017년 11월 2일, 심사 완료: 2018년 4월 10일, 게재 확정: 2018년 4월 10일.

이 논문은 “제5회 세계과학관 심포지엄(ISSM 2015)”(대전, 2015. 10. 22)에서 발표된 바 있다.

 

함포(艦砲)의 배치를 중심으로 본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 연구

 

채연석(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gogospace@naver.com)

 

 

1. 서론

임진왜란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 이순신의 거북선은 많은 함포를 탑재한 16세기 세계 최강의 공격용 군함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동안 거북선에 관한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되고 실물 모형도 몇 대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처럼 노를 저어 빨리 움직이며 함포를 발사할 정도로 그 기능까지 완벽하게 복원된 거북선은 없다. 그 이유는 구조에 관한 상세한 도면과 사료가 남아 있지 않을 뿐더러 거북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함포의 종류와 배치 및 발사에 관한 상세한 연구가 이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거북선 관련 연구에서 거북선에 탑재된 화포에 관해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것은 조성도의 연구이다. 1963년 조성도는 2층 구조설을 주장하며 “1592년 거북선은 2층(노 젓는 층) 선두에 1개, 양쪽 측면에 12개, 선미에 1개 등 모두 14개의 포를 설치하였는데 포의 종류는 천자, 지자, 현자(용두), 황자총통 등 4종류”라고 주장하였다.[1] 그러나 각 포의 배치 방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거북선의 3층(하층, 1층, 2층) 구조설을 처음 제기했던 남천우는 1987년 “하층에 현자총통 2개 그리고 2층에 26개 등 모두 28개의 포가 설치되었다”고 주장하였다.[2] 1996년 최두환은 거북선의 구조는 3층(1층, 2층, 3층) 구조이며 용두에 현자총통, 그리고 거북꼬리 아래 총구멍 1개, 좌우 현에 총구멍 각각 6개씩 모두 14문의 포를 장착했다고 주장하였다.[3] 2012년 정진술도 3층설을 주장하며 2층에는 포, 3층에는 사부가 위치했을 것으로 주장했다.[4] 2014년 홍순구는 거북선의 구조는 3층으로서, 2층에는 천자포, 지자포 등 대형 화포가 배치되고 3층에는 현자, 황자포 등 원거리, 중거리용 소형포가 설치되었다고 주장하였다.[5] 이와 같이 그 동안 발표된 거북선 관련 연구에서 이순신 거북선에 사용된 포의 종류와 배치 방법, 그리고 배치한 포의 수와 발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는 아직까지 없다.

본 연구의 목적은 그동안 수십 종류의 조선 시대 총포를 연구ㆍ복원하여 실제로 발사해 본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순신 거북선에 장착한 함포 및 발사물의 종류와 제원, 함포의 수, 그리고 배치 방법과 발사 방법 등을 연구하여 거북선의 구조를 밝히려는 것이다.[6]

2. 이순신 거북선 관련 사료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의 구조와 특징을 알 수 있는 사료는 1) 선조 임금에게 올린 이순신의 장계, 2) 이분(李芬)의 이순신 장군 행록, 3) 선조25년(1592) 5월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의 거북선 설명, 4) 이충무공 종가에 소장된 2장의 거북선 그림[그림 1, 2], 5)  『이충무공전서』의 “권수도설(卷首圖說)”에 있는 ‘귀선도(龜船圖)’[그림 3] 및 설명과 “전라좌수영귀선도(全羅左水營龜船圖)” [그림 4]와 설명 등 다섯 종류이다. 각각의 사료를 아래에 제시해 보겠다.

사료 1.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1592년 6월 14일의 장계.

“신이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을 만들었사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 송곳을 심었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되어, 비록 적선 수백 척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속으로 돌입하여 대포를 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번 싸움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이 귀선을 타고 적선 속으로 먼저 달려 들어가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등의 각종 총통을 쏘게 한즉 … 먼저 거북선으로 층루선 밑으로 돌격한 후 용의 입으로 현자 철환을 위쪽으로 쏘고, 또 천자, 지자포와 대장군전을 쏘고 나서 들이 받아 그 배를 깨뜨리고 … [7]

사료 2.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기록한 이순신의 행록.

‘전선(戰船)을 창작하니 크기는 판옥선 만하며, 위에는 판자로 덮고, 판자위에 십자 모양의 좁은 길을 내어 사람들이 올라가 다닐 수 있게 하고 그 나머지는 온통 칼과 송곳을 꽂아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했으며, 앞에는 용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입은 총구멍이 되고, 뒤는 거북의 꽁지처럼 되었는데 그 꽁지 밑에도 총구멍이 있고, 좌우에는 각각 여섯 개씩 총구멍이 있는데 대개 그 모양이 거북의 형상과 같기 때문에 이름을 거북선이라 하였다. …  또 적선이 포위하려 하면 좌우 앞뒤에서 일제히 총을 쏘아[8]

사료 3. 『선조수정실록』 25년(1592) 5월 1일의 기사.

… 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ㆍ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9]

사료 4. 이충무공 종가의 ‘거북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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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 이충무공 종가의 귀선도 1, 2 [출처: 현충사 소장]

<그림1, 2>의 ‘귀선도’는 이충무공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던 그림으로 현재는 아산 현충사에서 전시중이다.[10] 그림을 그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림 1>에는 이분(李芬)의 거북선 설명(사료 2)과 선조 25년 실록의 기록(사료 3)처럼 거북선에 꼬리가 그려져 있고 포를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용머리가 위치해 있다. 특히 현존하는 거북선 관련 설명 그림 중 거북선에 꼬리가 그려져 있는 것은 <그림 1>뿐이다. 그리고 <그림 1>과 <그림 2>에 있는 거북선은 한쪽에 노가 8개씩 있는 등 같은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림 2>의 윗부분에는 거북선의 크기 및 역할과 관련된 한시가 적혀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람되이 매영(좌수영)을 맡고 감히 거북선을 장식하니 길이가 열발(十把)이고 너비는 거의 다섯발(五把)이다. 몸체 길이가 13길이고 끌채 위의 문은 12개이며 …[11]

이에 대해 이원식은 “전라좌수영에서 거북배를 꾸몄으니, 배밑 길이는 50자요, 배의 너비는 25자가 된다. 뱃몸 길이는 65자요, 방패문은 좌우로 26 …”라고 해석하여 이순신 거북선의 크기로 보았다.[12] 이처럼 <그림 1>과  <그림 2>는 이순신 거북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림으로 추정된다.

사료 5.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두 종류의 거북선이 등장한다. 첫 번째 거북선은 ‘귀선(龜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있는 ‘귀선도’[그림 3]와 설명이다. 두 번째 거북선은 ‘전라좌수영귀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있는 ‘전라좌수영귀선도’[그림 4]와 설명이다.[13]

첫 번째 <그림 3>의 ‘귀선도’에는 측면의 총구가 한쪽에 12개이고 노는 10개이다. 두 번째 ‘전라좌수영귀선도’ <그림 4>는 측면의 총구가 6개, 노가 8개이다. 1751년 거북선의 크기를 확인한 박문수는 측면의 총구가 6개에서 8개로 늘어나면서 종래의 것보다 지나치게 커졌다고 보고하였다.[14] 박문수가 거북선을 본 44년 후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던 1795년의 거북선은 더 커져서 총구는 12개로 늘어났고 노도 8개에서 10개로 많아진 것이다. 이렇게 추정해 보면 <그림 3>의 거북선은 1795년 당시의 일반적인 거북선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그림 4>의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1592년)의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관련 있는 자료로 추정된다.[15] 따라서 <그림 4>의 설명, 즉 “거북머리 아래에 또 귀신머리를 새겼으며, 복판(覆板) 위에 거북 무늬를 그렸고, 좌우에 각각 두개의 문이 있으며, 거북머리 아래에 포 구멍이 2개, 현판(舷版) 좌우에 포 구멍이 각각 1개씩, 현란 좌우에 포 구멍이 각각 10개씩, 복판 좌우에 포 구멍이 각각 6개씩이고, 좌우에 노는 각각 8개씩”이라는 기록은 이순신 거북선에 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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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귀선도’ [출처: 『이충무공전서』 권수, 도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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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전라좌수영귀선도‘ [출처: 『이충무공전서』 권수, 도설 10]

위 설명 중 “현란 좌우에 포 구멍이 각각 10개씩”이라는 묘사는 <그림 4> 거북선의 2층 부분의 방패에 있는 포 구멍 10개를 말하는 것 인데, 지금까지 연구ㆍ복원한 여러 거북선이나 영화ㆍ드라마에서는 이곳에 대형포를 설치하고 발사한 것으로 표현되어 왔다.[17] 홍순구는 거북선의 2층 측면에서 노 젓기와 천자, 지자포 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8]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1층 측면에는 노를 젓는 격군만 40명(노 1개에 4명의 격군과 1명의 격군장 등 5명이 배치되었다)이 모여 있으므로[19] 포를 설치하고 발사 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다. 3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포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발사 충격을 흡수하고 발사를 준비하는 일정한 면적의 고정 설비와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림 4>의 1층 측면 포 구멍은 거북선에 많은 대형포를 장착하고 있다는 것을 적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장용 환기 구멍이며, 이 구멍을 통해서 승자총통 등 개인 화기의 발사는 가능했을 것이다.

3. 1592년 이순신 거북선의 특징

위의 다섯 가지 사료를 분석해 보면 사료 1과 2는 실제로 1592년에 거북선을 현장에서 본 당사자들의 기록이므로 신뢰성이 무척 높고, 사료 3은 1592년에 이순신 등이 보낸 보고 등을 종합한 왕조실록의 기록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다. 사료 4는 이순신 종가에서 보관해 왔을 뿐만 아니라 사료 2, 3에 있는 거북선 꼬리 부분의 내용이 포함된 그림으로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사료 5는 1795년 편찬 당시의 거북선에 관한 내용은 신뢰할 만하지만 203년 전인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에 관한 내용은 신뢰성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 위의 다섯 가지 사료들을 분석해 보면 이순신 거북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1) 용머리 뒤에 현자총통을 설치했으며 철환을 발사(사료 1, 2, 3).
2) 거북선에 장착된 포의 종류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의 4종류(사료 1).
3) 천자총통은 대장군전을, 지자총통은 장군전을 발사물로 사용(사료1).
4) 크기는 판옥선 만하며(사료 2),
5) 위는 판자로 덮었으며 그 위에 십(十)자로 길을 만들고 그 외에는 칼과 송곳 설치(사료 2, 3).
6) 거북선의 뒤에는 꼬리가 달려 있으며 아래에 총통을 설치(사료 2, 3).
7) 복판(覆板) 좌우에 각각 6개의 총통을 설치(사료 2, 3).
8) 적선에게 포위되면 4면으로 포를 발사(사료 2, 3).
9) 거북선의 크기는 바닥 길이 10파(把: 50자), 너비 5파(25자), 본체 길이 13파(65자) (사료 4).
10) 노는 한쪽에 8개(사료 4, 5).
11) 돛대 2개(사료 4, 5).
12) 복판 양쪽 옆에 각각 2개의 (창)문이 있음(사료 5).


4. 이순신 거북선에 설치한 포와 발사물 종류 그리고 발사 준비 구역

이순신 거북선에 설치한 함포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의 네 종류인데 각각의 크기와 구조 그리고 사용한 발사물 및 발사 준비 구역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자총통과 대장군전

① 천자총통

천자총통은 1555년 이후 제작해서 사용한 구경이 가장 큰 전통적인 구조의 포로서 조선의 군선과 거북선에 장착하여 일본 군선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갖춘 화약 무기이다.[20]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되었던 천자총통으로 추정되는 유물은 현재 두 점이 남아있는데 첫 번째 유물은 보물 647호 천자총통으로 명종 10년(1555) 10월에 제작된 것이다. 총통에는 “嘉靖乙卯十月 天 四百九十三斤十兩 匠梁了同”(가정 을묘 10월 즉 1555년 10월 제작한 천자총통으로 무게는 493근 10냥인데 장인 양요동이 제작)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전체 길이는 131cm, 부리(嘴)의 내경 12.8-13cm, 외경 22.5cm, 무게 296kg의 대형 청동 총통이며 강화도 무기 창고에 있었던 것으로 강화도 해안의 포대나 판옥선 혹은 거북선에 사용했던 포로 보인다.

두 번째 천자총통 <그림 5>는 1555년 9월 제작된 것인데 아리마 세호(有馬成甫)의 『화포의 기원과 그 전파(火砲の起源とその傳流)』에 기록되어 있다.[21] 이 총통은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것을 왜군이 전리품으로 일본에 가지고 간 것이다.[22] 크기는 구경이 11.5cm, 길이가 125cm, 무게가 324근(194.4kg)인데 “가정(嘉靖) 34년(1555) 9월 서생포(西生浦)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명문이 있다. 아리마의 책에는 정유재란(15 97-1598) 전리품으로 일본에 가지고 간 뒤 야스쿠니 신사의 유취관(遊就館)에 소장되었던 조선의 대형 총통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1598년경 일본으로 건너간 천자총통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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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5. 일본 유취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천자총통의 제원 [출처: 有馬成甫, 『火砲の起源とその傳流』 (東京: 吉川弘文館, 1962), 276]

위의 두 사례를 통해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혹은 군선(판옥선)에서 사용한 천자총통의 구경 및 크기를 파악할 수 있는데, 문제는 두 천자총통의 규격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보물 647호 천자총통의 구경은 12.8-13cm인데 비하여 일본 유취관의 1555년 천자총통은 구경이 11.5cm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구경이 최대 1.5cm나 차이 나고, 무게도 보물 647호가 296kg으로 유취관의 천자총통(194.4kg)보다 101.7kg이나 더 무겁기 때문에 당시의 표준 규격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천자총통의 규격에 따라 발사물인 대장군전의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명 칭

구경 (cm)

외경 (cm)

길이 (cm)

무게

제작 년대

비 고

총통 완구 (약통)

11.78

22.4

-

-

1448

1555년 천자총통 개발에 활용[23]

천자 총통

12.8

23

131

493근 10냥 (296kg)

1555

보물 647호, 국립진주박물관

천자

11.5

-

125

324근 (194kg)

1555

유취관(일본)

천자

11.8

24

136.5

700근 (420kg)

1669

현충사(아산)

천자 총통

11.76 (5촌6분)

27.3 (1척3촌)

139.2 (6척6촌3분)

1,209근 (725.4kg)

1813

『융원필비』

표 1. 국내외 천자총통의 규모

임진왜란 때 사용한 천자총통의 표준 규격을 찾는데 참고할 유물은 4점, 사료는 2종류가 있다[표 1].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보물 647호를 제외하면 나머지 천자총통의 구경은 11.5-11.78cm로 비슷하다.[24] 즉, 일본 유취관에 있던 1673년 제작 천자총통의 내경은 11.7cm이고 국내에 있는 1669년 제작 추정 현충사 천자총통의 구경은 11.8cm, 『융원필비(戎垣必備)』에 기록된 천자총통의 내경은 5촌6푼(11.76cm)이며,[25]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의 격목통 입구 구경은 11.78cm이다.[26] 따라서 1555년 이후 사용된 천자총통의 평균 구경은 11.7cm로 추정된다. 그리고 천자총통의 길이는 정확한 내부 실측이 가능한 보물 647호의 재원을 따라 131cm로 하였고[그림 6], 무게는 295.8kg 정도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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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천자총통의 내부 구조와 규모 [출처: 필자]
② 대장군전

임진왜란 때에 천자총통에서 사용된 대장군전 관련 유물은 앞부분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철촉만 남아 있다.[28] 전체의 크기를 추정할 수 있는 사료는 임진왜란 43년 뒤에 편찬된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29]와 223년 뒤에 편찬된 『융원필비』에 남아있다. 『화포식언해』에는 “천자총통에서 발사한 대장군전의 무게가 56근 3냥(33.7kg)인데 화약 30냥으로 발사하여 900보를 날려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융원필비』에는 “대장군전의 무게가 50근(30kg)이고 전체 길이는 12척 6촌(264.6cm)”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포식언해』의 대장군전(무게 56근 3냥)을 임진왜란 때 사용한 대장군전으로 본다면 『융원필비』의 대장군전(무게 50근)보다 6근 3냥(3.7kg) 더 무겁다. 따라서 『융원필비』의 대장군전과 임진왜란 대장군전의 직경이 같다고 가정하면 임진왜란 대장군전의 길이는 297.2cm가 된다.[30] 임진왜란 대장군전을 천자총통에 삽입하였을 경우 총통 밖으로 나오는 길이는 215.7cm이고 전체 길이는 346.7cm이다[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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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대장군전의 규모와 천자총통에 장전한 모습 [출처: 필자]
③ 천자총통의 장전 준비 면적과 설치 위치

<그림 8>과 같이 대장군전을 천자총통의 부리에 장전하려면 천자총통의 길이(131cm), 대장군전의 길이(297cm), 동차 뒷부분(20cm)을 합한 448cm에 여유 공간을 더하여 460cm × 200cm의 면적이 필요하다[그림 8, 9]. 이 면적은 천자총통 1대에 10발의 대장군전을 준비한다고 보고,[31] 10발의 대장군전은 <그림 9>처럼 천자총통을 배치하는 곳 근처의 벽에 걸어두었던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발사할 때 필요한 각종 기구들[32] 즉 화약, 격목, 격목을 다지는 철추[33] 등을 놓는 상자가 있으며 3명이 발사 준비 작업을 하는 것으로 가정하였고, 발사 충격 흡수 및 동차 고정 장치도 고려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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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천자총통에 대장군전을 장착하여 동차에 실은 모습 [출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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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천자총통 발사 준비 구역의 크기와 배치도 [출처: 필자]

거북선의 안정성과 복원력을 고려할 때 천자총통(2대의 무게 592kg)과 같은 무거운 물체는 2층보다는 1층에 설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35] 적선의 하층이나 1층 부분에 대장군전을 발사 큰 구멍을 만들어 파괴하면서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거북선의 1층과 같이 낮은 곳에 천자총통을 설치하여 발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발사에 30냥의 화약을 사용하여 무게 56근 3냥(33.7kg)의 대장군전을 900보(1,080m)[36]까지 날려 보낼 때 발생하는 큰 충격량에 견딜 수 있도록 배치하는 방법도 거북선의 1층 전방 좌우에 1대씩 배치하는 방법뿐이다.

2) 지자총통과 장군전

① 지자총통

현존하는 지자총통은 임진왜란 전에 제작된 것이 국내에 2점, 일본의 유취관에 2점 있고, 그 외에 관련 기록이 있다[표 2]. 보물 863호인 동아대학교의 지자총통[그림 10]은 무게가 144근인데 이순신이 1593년 11월 17일 유황을 내려주기를 청하는 계본에 지자총통 한 자루의 무게가 150여근이라고 하였으므로,[37] 거북선에 사용한 지자총통과 보물 863호 지자총통은 크기가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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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보물 863호 지자총통의 구조와 규모 [출처: 필자]

보물 863호 ‘지자총통’과 세종의 ‘장군화통’은 구경과 전체 길이, 내부 구조가 같은 규모의 대형 총통이므로 지자총통은 장군화통을 더 두껍게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38]

       

표 2. 지자총통의 규모

명 칭

내경 (cm)

외경 (cm)

길이 (cm)

무게

제작 년대

비 고

장군화통

10

13

89.5

104근 10냥

1448년

『병기도설』 (1476)[39]

지자총통 (국1)

10.5

15.5

89.5

(73kg)

1557년 3월

보물 862, 육군박물관

지자총통 (국2)

10.5

17.2

89

144근 (92kg)

1557년 4월

보물 863, 동아대학교

지자총통 (일4)

9.5

 

91

146근

1557년 3월 (?)

유취관(일본), 김수산 제작 (정유재란 전리품)

지자총통 (일3)

10

17

91

166근

1557년 3월

유취관(일본), 김수산 제작 (정유재란 전리품)

지자총통 (일1, 2)

10.2

 

117

461근, 476근

1669년(?)

강화도 무기고

지자총통

10.4

22.9

118

724근

1813년

『융원필비』

 

② 장군전의 규모

지자총통에서 사용한 목전은 장군전(將軍箭)인데 크기와 구조는 세종 때 장군화통에서 사용한 대전(大箭)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며 거북선의 지자총통에서도 길이 192cm의 장군전을 사용하도록 설계하였다[그림 12]. 대전과 『융원필비』의 장군전을 비교하면 <표 3>과 같다.

임진왜란 당시 지자총통에서 사용한 장군전은 길이 192cm로 보이는데 이유는 진주박물관의 ‘정유재란 1597’에 전시된 장군전[그림 11]의 화살나무의 길이가 181.5cm이고,[40] 『융원필비』의 장군전에 사용된 철촉의 길이 10.4cm을 합하면 전체 길이는 192cm가 되기 때문이다.[41]

표 3. 대전과 장군전 크기 비교 [출처: 진주박물관 ‘정유재란 1597’ 특별전]

명칭

길이 (cm)

철촉 길이 (cm)

날개 길이 (cm)

총통 삽입 부분길이

무 게

비고 (사정거리)

대전

191

11.2

44

52.6cm

촉무게 4근 8냥 (4.32kg)

『병기도설』

장군전

-

-

-

-

29근 8냥

『화포식언해』 (800보)

장군전

181.5 (촉 제외)

?

35.4

59cm

10.6kg, (촉 제외)

일본, 구키 요시타카

장군전

202.5

10.4

35.4

70.7cm

33근

『융원필비』 (2,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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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2017 특별전 ‘1597 정유재란’에 전시된 장군전 [출처: 『문화체육관광부(진주박물관) 보도자료』(2017.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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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지자총통에 장군전을 삽입한 모습 [출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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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장군전을 장착한 지자총통을 실은 동차의 모습. 발사 준비를 끝낸 모습이며 전체 길이는 232cm이다.[출처: 필자]

③ 지자총통의 설치 위치와 장전 준비 면적

<그림 13>과 같이 장군전을 장전한 지자총통을 탑재하려면 길이 84cm 크기의 동차가 필요하고, 장군전을 발사하려면 장군전 10발과 철추를 비롯한 9가지의 발사 준비 도구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림 14>와 같이 지자총통에 장군전을 장전하려면 최소한 장군전 길이(192) + 지자총통 길이(90) + 동차 뒷부분 및 여유 공간(48) = 330cm × 150cm의 발사 준비 작업 면적이 필요하며 최소한 3명이 준비 작업에 참여하여야 한다.

image14.png  
 그림 14. 지자총통 발사 준비 구역의 크기와 배치도 [출처: 필자]

이 정도의 준비 작업 면적이 있고, 20냥의 화약을 넣고 발사할 때 발생하는 큰 발사 충격량에 견딜 수 있도록 배치하는 방법은 2층 전방 좌우에 1대씩 배치하는 방법이다. 지자총통의 무게는 92kg 정도로 1층에서 2층으로 사다리를 통해서 운반이 가능하다.[42]

3) 현자총통(玄字銃筒)과 소연환(小鉛丸)-I

① 현자총통

현자총통은 세 번째로 큰 총통이다. 현재 남아있는 임진왜란 때 사용한 현자총통은 표 4에 보이는 세 가지 정도이다. 그런데 1593년 11월 17일 유황을 내려주기를 청하는 이순신의 계본에 “현자총통 한 자루에 50여 근”이라고 한 것을 보면,[43] 이순신의 거북선에 사용한 현자총통은 무게가 50여 근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위 표 4를 보면 1992년 여천시 백도 인근 해저에서 인양한 보물 1233호 현자총통(광주박물관, <그림 15>)과 평양성에서 출토된 현자총통(일1)은 그 무게가 46-49근으로서 임진왜란 전인 1555년에 제작되어 거북선에서 사용된 현자총통으로 볼 수 있다. 내부구조는 부리 부분의 크기가 내경 6.5cm, 길이 52.1cm이다.

표 4. 16세기 국내외의 현자총통, (일1)은 일본에 있는 현자총통의 자료임.

명칭

내경 (cm)

외경 (cm)

길이 (cm)

무게

제 작 년 대

비고

일총통

6.72

10.0

74.8

(41근 8냥)

1448

병기도설(1476)

현자총통

6.5

10.1

75.4

26.5kg (46근)

1555

광주박물관(보물1233호), 양내요동(梁內了同)

현자총통 (일1)

6.7

11

76

(49근)

1555

평양성 출토, 양내요동(梁內了同)

현자총통

7.5

13.5

79

(89근)

1596

진주박물관

image015.jpgimage16.png  
그림 15. 현자총통의 내부 구조와 규격
그림 16. 현자총통을 동차에 탑재한 모습 [출처: 필자]
  ② 소연환(小鉛丸)-I

소연환은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철환(鐵丸) 위에 납을 입혀 만든 탄환이다.[44]  『신기비결』에 “현자총은 화약 4냥, 중약선 5촌, 소연자 30개를 넣고 발사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소연환의 크기는 알 수 없다.[45] 보물 1233호 현자총통에 소연환을 채울 수 있는 부리통[嘴筒]의 크기는 내경 6.5cm, 길이 52.1cm인데, 이곳에 직경 3cm짜리 소연환-I 30개를 채운다면 길이가 42cm가 되어 충분히 채울 수 있다.[46] 따라서 당시 현자총통에서 사용한 소연환-I의 크기는 3cm 정도로 추정된다.

 

③ 현자총통의 탑재 위치와 발사 준비 면적

현자총통은 2층 전면 중앙 용머리 뒤와[47] 뒷면 좌우에 설치하여 한번에 4냥의 화약으로 직경 3cm짜리 소연환-I 30발을 발사하였다. 거북선이 적선을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으로 공격할 때 저항하는 적군을 살상하기 위해 사용하는 포이므로 일본군 전선과의 거리에 따라 발사 각도를 조절하며 공격하였을 것이다. 뒷면의 현자총통 2대는 거북선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뒤에서 공격하는 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포이다.[48] 출전할 때 몇 회 발사할 수 있는 양의 소연환-I과 화약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장전 준비 면적도 달라진다. 현자총통도 천자 · 지자총통처럼 10회 발사할 수 있는 소연환-I 300개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하면 현자총통에 소연환-I을 장전하고 발사 준비하는 데 필요한 공간은 1.6m × 1.5m 정도의 면적[그림17]이 필요하다.[49]

image017.gif
그림 17. 현자총통의 발사 준비 구역 [출처: 필자]

4) 황자총통과 소연환–II

① 황자총통
표 5. 16세기 제작된 황자총통의 규모

명칭

구경 (cm)

외경 (cm)

길이 (cm)

무  게

제 작 년 대

비  고

황자총통

4.2

8.5

51.4

19.5kg (31근 8냥)

1587

보물 886호

황자총통은 거북선에 탑재한 총통 중에서 4번째로 작은 총통인데 현재 남아있는 보물 886호 유물은 길이 51.4cm, 구경 4.2cm의 청동 황자총통이다. 이 총통에는 “萬曆丁亥四月 黃字 重三十一斤八兩 匠富貴”라는 명문이 있어 1587년 4월에 제작되어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황자총통이다.

image019.jpgimage19.png  
그림 18. 황자총통의 내부 구조와 규모 [출처: 필자]
그림 19. 동차에 설치된 황자총통 모습 [출처:필자]
② 소연환-II

황자총통에 사용한 소연환-II의 크기와 관련해서는, 『융원필비』에 “소연환의 크기는 1촌 3푼(2.7cm), 무게는 13냥”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기비결』에는 “화약 3냥에 소연자 20개를 넣고 사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50]

image20.png  
그림 20. 황자총통의 발사 준비 구역 [출처: 필자]

임진왜란 때 황자총통에서 사용한 소연환-II의 크기를 추정해 보면, 1587년 황자총통에 소연환-II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은 내경 4.2cm, 길이 30cm의 원통형의 부리통이다. 이곳에 직경 2cm짜리 소연환-II를 넣으면 한 층에 2개씩 채울 수 있으므로 10층을 쌓을 경우 최대 20cm면 되어 충분한 크기이다. 따라서 황자총통에서는 직경 2cm짜리 소연환-II 20개를 넣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51] 황자총통을 발사할 때는 화약 3냥과 소연환-II 20개만 넣는 것이 아니고 그 위를 흙을 넣고 다져서 막아야 하기 때문에 채우는 길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52]

③ 설치 위치와 발사 준비 면적

황자총통은 한 번에 화약 3냥을 이용해서 직경 2cm 소연환-II 20개를 발사한다. 한번 발사에 화약을 3냥 사용하기 때문에 충격량은 4종류의 함포 중 가장 작아 2층의 양쪽 측면 12곳에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53] 거북선의 황자총통은 후에 불랑기 5호로 교체되는 듯한데,[54] 『신기비결』에 의하면 불랑기 1대에 자포 9개를 갖고 있었다.[55] 9개의 자포에 화약과 탄환을 미리 채운 뒤 불랑기를 발사할 때마다 새로운 자포를 사용함으로써 화약과 탄환의 충전 시간을 줄인 것이다. 이를 참고하여 황자총통 1대에는 9회 발사할 만큼의 소연환-II, 즉 180개를 갖고 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그림 20>과 같이 발사물과 발사 준비 도구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장전 준비 면적은 1.2m × 1.5m 정도가 필요하다.

5. 각종 총통을 배치한 거북선의 구조

1.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장착하여 사용한 대형총통(천자, 지자, 현자, 황자)과 발사물의 규격, 발사 준비 구역의 면적, 화약의 사용량과 성능은<표6>과 같다.

표 6. 거북선에 장착한 함포 및 발사물의 종류, 규격, 성능 (*는 추정치)

제원

발사 준비 구역 (m²)

총 통

발 사 물

길이 (cm)

구경 (cm)

무게

명칭 (발사갯수)

길이 (cm)

무게

화약 (냥)

사정 거리 (보)

천자

8.8*

131*

11.7*

295.8kg*

대장군전(1)

297.2*

56근 3냥 (33.7kg)

30

900

지자

4.65*

89

10.5

92kg (144근)

장군전 (1)

192*

29근 8냥 (17.7kg)

20

800

현자

2.4*

76

6.7

26.5kg (49근)

소연환-I, (30)

3.0* (직경)

-

 4

1,500

황자

1.8*

51.4

4.2

19.5kg (31근8냥)

소연환-II, (20)

2.0* (직경)

-

 3

1,100

 

2. 천자총통을 동차에 싣고 대장군전을 장착하여[그림 8] 발사하기 위해서는 충격 완화 및 동차 고정 장치를 바닥에 설치하여야 하기 때문에 길이 4.6m × 2m 정도의 발사 준비를 위한 면적이 필요하다[그림 9]. 이 면적에는 천자총통을 10회 발사할 수 있는 대장군전과 격목 10개, 화약 및 발사 준비 도구도 포함되어 있다. 총통의 무게가 296kg으로 무겁고, 무게 33.7kg의 대장군전을 발사할 때 화약 30냥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충격량도 무척 크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 천자총통은 <그림 21>의 (다), (마)처럼 거북선의 1층 출입구 근처인 앞부분 좌우에 2대를 설치하여 ① 큰 발사 충격에 견디며, ② 좌우의 무게 균형을 잡아주고, ③ 거북선 선체의 무게 중심을 낮추어 안정성을 키워주며, ④ 적선에 가능한 가깝게 접근(3.75-6m)한 후[56] 천자총통을 발사하도록 하여 명중률을 높여주고,  ⑤ 적선의 아랫부분에 대장군전을 발사, 구멍을 만들며 파괴하여 큰 타격을 입히도록 하였다.

3. 지자총통에 장군전을 <그림 13>처럼 장착하여 발사하려면 3.3m × 1.5m 정도의 발사 준비를 위한 면적이 필요하다[그림 14]. 이 면적에는 지자총통을 10회 발사할 수 있는 장군전 10개와 충격 완화 및 동차 고정 장치도 포함되어 있다. 지자총통의 무게는 92kg으로 천자총통보다 가볍지만 장군전을 발사할 때 20냥의 화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큰 충격량을 흡수하고 좌우의 무게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그림 21>의 (나), (마), (사)처럼 2층 앞부분 좌우에 2대를 설치한다. 장군전으로 적선의 선체나 선실에 구멍을 내며 파괴하는 데 사용하였다.

image21.png  
그림 21. 각종 대형 총통이 배치된 이순신 거북선(1592)의 설계도.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자총통 2대는 1층의 앞부분 좌우에, 지자총통 2대는 2층 앞부분 좌우에, 현자총통은 2층의 용두 뒤에 1대와 후면 좌우에 2대, 그리고 황자총통은 양 측면에 12대 등 모두 19대의 함포가 설치되었다. [출처: 필자] 

4. 현자총통은 2층 전면 가운데의 용두 뒤에 1대 그리고 후면 좌우에 2대를 설치하여([그림 21] (나), (마), (사), (자)) 적선을 공격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할 때와 적선에 포위되었을 때 4냥의 화약으로 직경 3cm짜리 소연환-I 30발을 발사, 적군을 살상하는 데 사용하였다. 발사 준비를 위해서는 <그림 17>과 같이 1.6m × 1.5m 크기의 면적이 필요하다. 이 면적에는 현자총통을 10회 발사할 수 있는 소연환-I 300개와 충격 완화 및 동차 고정 장치도 포함되어 있다.

 

5. 황자총통은 <그림 21>의 (나), (바)처럼 2층 좌우 측면에 각각 6개씩 모두 12개를 배치하였다. 한번 발사에 화약 3냥(천자총통의 1/10, 지자총통의 1/6.7)을 사용하여 직경 2cm의 소연환-II, 20개를 충전하고 발사하여 포위한 적선에 탑승한 적군을 공격, 사살하는 데 사용되었다. 발사 준비 구역은 <그림 20>과 같이 1.5m × 1.2m의 면적이 필요한데, 이 면적에는 황자총통을 9회 발사할 수 있는 소연환-II 180개와 충격 완화 및 동차 고정 장치도 포함되어 있다.

 

6. 이순신 거북선의 전면에는 1층 좌우에 천자총통 2대, 2층 좌우에 지자총통 2대, 그리고 2층 중앙에 현자총통 1대 등 5대의 대형총통을 배치하였다. 이것은 『이충무공전서』의 ‘전라좌수영귀선’의 설명에서 “거북머리 아래에 포 구멍이 2개, 현판(舷版) 좌우에 포 구멍이 각각 1개씩…”[57]이라 하여 <그림 3>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에서도 용두 뒤를 제외하고 앞부분 만에 모두 4대의 함포를 설치했다는 내용[58] 그리고 16세기 유럽의 겔리 전투함의 앞부분에만 대형포를 설치한 것[그림 22]과 잘 일치한다.[59] 이순신 거북선은 2층 좌우 측면에 황자총통 12대 그리고 2층 후면 좌우에 현자총통 2대 등 모두 19대의 함포를 배치하였다([그림 21] (나), (다)).

image22.png
그림 22. 16세기 유럽의 전투함과 함포의 위치, (c)는 베네치아 군선, (d)는 스페인 군선 [출처: 전재율・서상규, 『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 (군사연구, 2009), 105].

7. 1층의 갑판의 구조

1층의 앞부분 중앙에는 출입구가 있고 좌우에는 천자총통을 설치하였다. 중앙 부분에는 창고와 병사들이 휴식할 수 있는 방이 설치되고 좌우에 각각 8개씩 16개의 노가 설치되어 있어 1층에만 80명의 격군(格軍)이 있었다. 따라서 한쪽 측면에 40명의 격군이 노역을 하므로 이 부분에는 어떤 종류의 포도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다.[60] 뒷부분에는 키가 설치되어 있다([그림 21]의 (마)).

 

8. 2층 갑판의 구조와 전체의 모습

(1) 지붕의 형태

2층의 양쪽 측면의 방패는 거북선 전면에서부터 후미까지 직선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직사각형 형태의 지붕을 설치한다. <그림 21>의 (가)처럼 중앙의 십(十)자 부분을 제외한 직사각형 부분만 나무로 씌워 지붕을 만든다. 2층 전체에 지붕을 씌우지 않고 중앙의 직사각형 부분만 씌운 것은 좌우 측면에 황자총통 12대를 설치하고 발사하는 데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2층 지붕의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거북선의 원형인 판옥선은 2층에 지붕이 없었는데 2층 전체에 지붕을 씌우면 지붕의 무게 증가 때문에 거북선의 안전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61] 둘째는 둥근 형태의 지붕보다는 직사각형 형태로 지붕을 만들면 작업도 편리하고 빨리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십(十)자 길의 역할과 칼과 송곳을 설치한 장소

지붕의 중앙에 만들어진 십자 길 중 앞뒤로 만들어진 직선 길은 2개의 돛대와 돛을 접어서 누이는 곳이다. 그리고 적선에 가까이 접근하면 좁은 십자 길에 서서 활로 화살이나 화전을 쏘고 승자총통을 쏘는 곳이다.[62] 적선에 포위되어 위험할 때는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신기전을 발사하는 장소이다([그림 21] (가)). 그리고 적군이 거북선의 2층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칼과 송곳을 설치하는 장소는 십자 길을 제외한 지붕 위와 2층 바닥(갑판)의 양쪽 끝부분이다([그림 21] (가)). 헌 칼이나 송곳을 대장간에서 6각 철편에 고정 시킨 후 외부로 노출된 2층 갑판과 지붕에 서로 이어서 못으로 고정하였다.[63]

 

(3) 전체의 모습

각종 함포의 발사 준비를 마치고 적선을 공격하기 위해 돌격하는 이순신 거북선의 전체 모습은 <그림 22>와 같다. 거북선 1층 전면에 대장군전 2발과 2층 전면에 장군전 2발이 장전되어 앞으로 돌출되었고 지붕 위와 2층 바닥에 칼과 송곳이 설치되어있다. <그림 21>의 이순신 거북선의 크기는 이원식의 연구 결과를 참고로 하였다.[64]

image23.png
그림 23. 공격 준비를 마친 이순신 거북선의 모습. 대장군전 2발(아래)과 장군전 2발(위)이 거북선 전면에 돌출되어있다. [출처: 필자]

6. 결론

1592년 이순신 거북선의 특유한 전투 기능, 즉 노를 저어 적선에 가까이 접근한 후 천자, 지자총통으로 공격하여 적선을 파괴하는 것과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의 성능에 맞게 이상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은 1층 전면 좌우에 천자총통 2대, 2층 전면 좌우에 지자총통 2대, 2층 전면 중앙에 현자총통 1대, 2층 좌우 측면에 황자총통 12대 그리고 2층 후면 좌우에 현자총통 2대 등 모두 19대의 함포를 <그림 21>과 같이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포를 배치하려면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는 3층이어야 한다.

제한된 문헌 자료와 필자 자신의 화포 발사 경험을 통하여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를 추정하여 보았지만 관련 문헌과 유물이 제한적이고 실제로 전통 선박에서 화포를 발사해 본 경험이 없는 것은 연구의 한계이다. 따라서 실제로 제 기능 갖춘 이순신 거북선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거북선에서 대형 함포를 발사할 때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는 함포 시스템과 큰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거북선 선체에 대한 복원 및 발사 시험 등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1] 조성도, “귀선고”, 『해군사관학교 연구보고』 2 (1963), 30-34.

[2] 남천우, 『유물의 재발견』 (정음사, 1987), 55.

[3] 최두환, “임란시의 원형 거북선에 관한 연구”, 『해양연구논총』 22 (1996), 125-126.

[4] 정진술, “거북선 구조, 철갑문제”, 『이순신연구논총』 17 (2012), 164.

[5] 홍순구, “임진왜란 거북선의 선형과 내부 구조”, 『조형미디어학』 17:3 (2014), 83-91. 

[6] 채연석, “走火와 神機箭 硏究”, 『역사학보』 70 (1976), 15-88; “朝鮮初期의 火器硏究”, 『한국사론』 9 (1980), 139-241; “임란 때 총포 다시 쏘았다”, 『동아일보』, 1981. 1. 19, 7면;  “국내 최고 총통 발사 성공”, 『조선일보』, 2006. 3. 31, 사회A11면.

[7]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성문각, 1989), 144. 강조는 필자. 이하 같음.

[8]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하)』 (성문각, 1989), 21.

[9] 『선조수정실록』 26권, 25년 (1592) 5월 1일 경신, 20번째 기사.

[10]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2011), 86-87.

[11] “귀선도 글 원문 및 국역문”,『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2011), 239. 순천향대 노승석 교수가 국역하였다.

[12] 이원식, 『한국의 배』 (대원사, 1990), 52; 이원식, “이순신 창제 귀선(거북배)의 설계구조와 복원에 대한 고찰”, 대한 조선학회지』40:1 (2003), 52쪽의 표 4.

[13]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각주 7), 89-90.

[14]『영조실록』73권, 영조 27년(1751) 2월 21일 기축, 4번째 기사: “신이 忠武公 李舜臣이 기록한 바를 보았더니, 귀선의 좌우에 각각 여섯 개의 銃 쏘는 구멍을 내었는데 지금은 각각 여덟 개의 구멍을 내었으니, 거북선이 종전에 비해 지나치게 커진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으므로 개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5] 이원식은 <그림 3>을 1795년의 ‘통제영 거북배’로 <그림 4>를 1592년의 ‘전라좌수영 거북배’로 보았다[이원식, 『한국의 배』 (각주 12), 46-51]. 조성도는 <그림 3>을 1795년 통제영거북선으로 <그림 4>를 1795년 좌수영거북선으로 보았다[조성도, “귀선고” (각주 1), 32]. 최두환도 조성도와 같은 견해이다[최두환, “임란시의 원형 거북선에 관한 연구” (각주 3), 81-101], 남천우도 조성도, 최두환과 같은 견해임[남천우, 『유물의 재발견』 (각주 2), 12]. 

[16]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90.

[17] 1층 방패에 있는 10개의 총 구멍에 대해서는 실제로 거북선을 본 이순신 자신의 기록, 李芬의 이순신 장군 행록(사료 2), 선조 25년 5월의 실록 기사(사료 3), 영조 27년 2월의 실록 기사, 이순신 거북선에 대한 박문수의 설명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대형 포가 아니라 개인 화기(승자총통)의 발사 구멍으로 추정 된다. 남천우, 『유물의 재발견』 (각주 2), 55쪽에는 “1층의 포 구멍은 오히려 창구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하여 노군이 작업하는 1층의 포구를 환기용 창구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았다. 복원한 거북선(진해 해군사관학교, 통영, 여수)의 1층에는 노와 함께 함포를 전시하고 있다.

[18] 홍순구, “임진왜란 거북선의 선형과 내부 구조” (각주 5), 90; “임진왜란 거북선의 전, 후진, 노 젓기와 화포사용을 위한 방패의 구조”, 『조형미디어학』19:3 (2016), 343-350 중 348-349.

[19] 김재근, 『조선왕조군선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76), 128. 노 1개에 격군 4명, 장 1명 등 모두 5명이 한 조였다. 이순신 거북선의 1층에 노가 16개이므로 격군이 모두 80명이었다. 『선조실록』 206권, 39년(1606) 12월 24일의 기사에서 거북선 제조에 참여하였던 나대용이 “거북선[龜船]은 전쟁에 쓰기는 좋지만 射手와 格軍의 숫자가 板屋船의 1백 25명보다 적게 수용되지 않고” 라고 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거북선의 정원은 125명 정도였다.

[20]『명종실록』21권, 11년(1556) 12월 21일: “賊船을 깨뜨리는 데는 銃筒보다 나은 게 없기 때문에 … 天字·地字 총통이라야 되겠지만...”; 14년(1559) 6월 6일: “전선의 전후좌우에 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 이러한 기록에서 볼 때 적선을 깨뜨리는데 천자, 지자총통이 가장 중요한 화기로 간주되었다.

[21] 有馬成甫, 『火砲の起源とその傳流』 (東京: 吉川弘文館, 1962), 276쪽에 천자총통 사진은 없고 간략한 도면만 있다.

[22] 같은 책, 277.

[23] 채연석,『한국초기화기연구』(일지사, 1981), 97.

[24] 천자총통은 당대에 가장 큰 총통으로 시대에 따라 구경이 커지지만, 1555년 이후로는 길이는 커지지만 구경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25] 朴宗慶,『戎垣必備』(1815), 1.

[26] 총통완구는 발사물로 무게가 74근인 석환을 발사할 수 있는 성능이기 때문에 1555년 석환보다 가벼운 무게 56근 3냥짜리 대장군전을 발사하는 천자총통을 개발할 때 총통완구의 약통 부분 설계를 재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새로운 총통을 개발할 때 화약이 폭발하는 약통 부분의 개발이 가장 위험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1555년에 대형포인 천자총통을 개발할 때 총통완구의 약통 설계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7] 1635년 『화포식언해』의 대장군전 무게가 1813년 『융원필비』의 무게보다 무겁기 때문에 전의 길이도 길어야하므로 1555년에 제작된 천자총통 중 긴 길이를 사용했다. 이어지는 대장군전에 관한 논의 참조. 내경과 외경도 같이 줄어들지만, 천자총통의 단면적이 286.65cm²에서 286.43cm²로 조금만(0.22cm²) 줄기 때문에 무게는 큰 차이가 없다.

[28] 육군박물관에는 직경 10.4cm, 길이 12.5cm, 무게 4.6kg의 철촉이 있다,『육군박물관도록』, (육군사관학교, 1992), 53.

[29] 李曙,『화포식언해』(1635).

[30] 『융원필비』의 대장군전을 무게의 비율로 환산하면 임진왜란 대장군전의 길이는 297.2cm (264.6 × 33.7 / 30)로 계산된다.

[31] 韓孝純,『神器秘訣』(1603), 1. 대포(천자, 지자, 호준포) 자료는 육지에서 사용법의 설명인데 거북선에서의 천자총통 사용법도 같은 것으로 보았다. 특히 대정군전의 경우 적선을 파괴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므로 천자총통 1대에 10발의 대장군전을 준비한 것으로 보았다.

[32] 같은 책, 1.  대장군전, 격목, 약선 이외에도 1개씩 필요한 준비물은 鐵鑊, 鐵錘, 剪子, 송곳, 藥升, 送子, 木榔頭, 가죽 주머니 등 이다.

[33] 서울 군기시터 유적, 『유적조사보고』 제17책 (한강문화재연구원, 2011), 337. 표면에 음각으로 ‘군상’, ‘가정 25년(1546) 17근 9냥’이라는 명문이 있는 철추로 추정되는 길이 90cm, 직경 4.5-7.5cm, 무게 22.2kg의 철봉이 발굴되었다.

[34] 한효순, 『신기비결』, 8.

[35] 선박의 무게 중심이 아래 부분에 있는 것이 복원력과 안정성의 면에서 유리하다.

[36] 박흥수, “이조 척도에 관한 연구”, 『대동문화연구』 4 (1967), 199-228. 1보는 6척(주척 = 21.85cm), 1.31m이다.

[37]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각주 7), 208.

[38] 같은 규모의 대형 총통이 104근 10냥에서 144근으로 39근(23.4kg) 더 무거워졌다는 것은 튼튼하게 제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총포 제작 기술이 세종 때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39] 『國朝五禮序例』, “兵器圖說” (1474).

[40]『문화체육관광부(진주박물관) 보도자료』(2017. 7. 23). 진주박물관에서 개최한 2017 특별전 ‘정유재란 1597’ 에 전시된 장군전은 ‘대장군전’으로 소개되었으나 『융원필비』의 장군전 길이가 202cm인데 임진왜란 때의 장군전은 무게가 29근 8냥인 점 등을 종합해볼 때 장군전이다. 이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수군 장수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1542-1600)의 후손이 보관해 온 유물로 일본 사가 현 가라쓰 시에 기탁되어 있다. 장군전에는 “加里浦 上 金等 造”라고 음각되어 있어 “가리포 첨절제사진 소속의 장인 김씨가 제조”한 것으로 보인다.

[41] 육군박물관에는 직경 9.1cm, 길이 10.5cm, 무게 3.2kg의 철촉이 있다. 육군박물관 도록 (1992), 53.

[42]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각주 7), 90. 거북선이나 전함에 배치된 함포는 사용 후에는 1층의 창고에 보관하였다. 따라서 2층에서 사용하는 함포는 들어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무게여야 한다.

[43]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273.

[44] 육군박물관에는 직경 3cm짜리 쇠 탄알에 납을 입힌 소연환이 있다. 『육군박물관 도록』(1992), 53.

[45] 한효순, 『신기비결』, 3.

[46] 내경 6.5cm, 길이 52cm의 원통을 만들고 이 속에 직경 3cm짜리 소연환을 넣으면 높이는 42cm가 된다.

[47]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각주 7), 144.

[48] 거북선의 뒷부분에는 꼬리 아래에 포를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사료 2, 3에 남아있는데 뒷부분의 중앙에는 돛대를 뉘어야 하기 때문에 포를 설치할 수 없게 되므로 균형을 맞추어 꼬리 좌우에 1개씩 2대를 설치하였다.『명종실록』25권, 14년(1559) 6월 6일 병오 기사에, “전선의 전후 좌우에 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라고 한 것을 보면, 전선 판옥선에는 천자, 지자, 현자총통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북선으로 개조하면서 뒷면의 총통은 현자총통으로 계속 사용하고 측면의 현자총통을 충격량이 작은 황자총통으로 바꾼 듯하다. 포위되었을 때 뒤쪽의 적선을 공격할 때도 한 번에 소연환-II 20개를 발사하는 황자총통보다는 소연환-I 30개를 발사할 수 있는 현자총통이 더 유리하다.

[49] 2명이 서로 마주보며 발사 준비 작업을 하고, 10회 정도 발사할 소연환-I 300개를 쌓아둘 상자, 격목이나 흙을 다지는 막대, 발사 후 포신 속을 청소하는 솔, 화약, 그리고 발사 충격 흡수를 위한 도구를 설치하기 위한 면적이다.

[50] 한효순, 『신기비결』, 3; 『융원필비』, 16.

[51] 『융원필비』, 5. 황자총통의 내경 대 소연환 직경의 비율이 58%이어서 이 비율로 환산한 1587년 황자총통 소연환-II의 직경은 2.4cm인데 20개를 채우면 높이가 32.6cm가 되어 황자총통 부리의 길이 30cm보다 길어서 사용할 수 없다.

[52] 한효순, 『신기비결』, 3쪽에 의하면 화약을 넣고 종이로 덮은 후 살짝 다진다. 그리고 소연환을 20개 넣고 그 위에 흙을 넣고 다진 뒤 발사하였다.

[53] 각주 50 참조.

[54]『선조실록』68권, 28년(1595) 10월 27일 기사에 “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 불랑기, 화전 등을 많이 싣고 바닷길을 막아…”라고 하여 1595년 10월 실록에 이미 거북선에 불랑기 포를 사용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1605년 편찬된 『신기비결』에는 화약 2냥을 사용하는 불랑기만 소개되어 있는데, 이것은 불랑기 중 가장 작은 불랑기 5호 급에 해당한다.

[55] 한효순, 『신기비결』, 4.

[56] 外岡甚左衛門, “高麗船戰記” (1592): “대선 중의 3척은 맹선(장님배: 盲船, 거북선)이며, 鐵로 要害하여 石火矢, 棒火矢, 오가리마타(大狩鉢) 등을 쏘면서 酉時(오후 6시경)까지 번갈아 달려들어 쏘아대어 다락에서 복도, 테두리 밑의 방패에 이르기까지 모두 격파되고 말았다. 석화시라고 하는 것은 길이가 5척 6촌(약 117.6cm)의 堅木이며, … 또 봉화시의 끝은 철로 둥글게 든든히 붙인 것이다. 이와 같은 큰 화살(大箭)로 다섯 칸(6.25m, 1칸은 약 1.25m), 또는 세 칸(3.75m) 이내까지 다가와 쏘아대는 것이다.” 이 자료는 현충사 관리소 홈페이지(http://hcs. cha.go.kr/cha/idx/SubIndex.do?mn=HCS)의 충무공 자료실, 학술 자료 항목에서 제공하는 “거북선 등 조선 시대 선박 관련 자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57] 이은상 옮김, 『완역 이충무공전서 (상)』 (각주 7), 90.

[58] 용두의 목이 길어 뒤에 함포를 설치할 수 없는 형태로 보여서 개량된 이순신 거북선으로 보인다.

[59] 전재율ㆍ서상규, 『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 (군사연구, 2009), 105; John Francis Guilmartin, Gunpowder and Galleys: Changing Technology and Mediterranean Warfare at Sea in the Sixteenth Centur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4), 322.  임진왜란과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사용한 갤리(Galley) 전투함의 함포 배치를 보면 중간 부분에는 노군들이 자리를 잡고 <그림 24>와 같이 전투함의 앞부분에만 대형 함포를 여러 대 설치하였다. 전투함의 앞부분 중앙에 대형포를 설치한 이유는 (1) 대형 함포의 발사 때에 생기는 충격을 배가 흡수할 수 있고 (2) 격군들이 노를 젓는 데 방해받지 않은 상태에서 함포를 발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16세기 유럽의 전투함이 대형 함포 5, 6대를 전면에 설치한 것을 보아도 거북선의 전면에 대형 함포 5대를 설치한 것은 당시로는 가장 이상적인 함포의 배치 방법으로 보인다. <그림 22>(c)는 1571년의 베네치아 군선인데 중앙에 무게 2,500kg (탄환 무게 25kg)의 함포 1대를, 그리고 옆에 무게 545kg(탄환 무게 5.4kg) 포를 1대씩 설치하였다, (d)는 1571년의 스페인 군선인데 중앙에 무게 2,724kg(탄환 무게 22.7kg)의 함포 1대를 설치하였다.

[60] 홍순구, “임진왜란 거북선의 선형과 내부 구조” (각주 5). 측면의 노 젓는 사이에 천자총통을 설치했는데 이곳에는 포를 발사할 준비 면적 4.6m × 2m을 만들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포인 황자총통을 발사 준비 할 면적(1.2m × 1.5m)도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1층 측면에는 포를 설치할 수 없다.

[61]『영조실록』40권 11년(1735) 1월 20일 기사에 “전선(판옥선)과 거북선을 개조하였는데, 전선의 2층 위에 장식이 너무 무거워서 바람을 만나면 제어하기가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는 점을 보면, 당시에도 2층에 큰 장식을 하여 무거우면 전선(판옥선)이나 거북선의 안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62]『선조실록』206권, 39년(1606) 12월 24일. 나대용은 “거북선은 활을 쏘기 불편했다”고 하였는데 지붕의 十자 길이 좁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63] 6각 철편을 이용한 것은 거북선을 장갑하기 위한 것보다는 송곳을 지붕에 튼튼하고 쉽게 설치하기 위한 방편이다.

[64] 이원식, “이순신 창제 귀선(거북배)의 설계구조와 복원에 대한 고찰”, 『대한조선학회지』 40:1 (2003), 45-52 중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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