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한국과학사학회지, 제35권 제3호 (2013), 543-558

[비평논문] 대중과학 ‘실험실’: 20세기 중국의 과학과 대중

by 문지호 (서울대학교)
Atachment
첨부파일 '1'
Extra Form

Sigrid Schmalzer, The Peopleʼs Peking Man: Popular Science and Human Identity in Twentieth-Century Chin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Tong Lam, A Passion for Facts: Social Surveys and the Construction of the Chinese Nation-State, 1900-1949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1)



1. 대중과학(popular science): 국가 정체성 형성의 장


대중과학은 과학과 대중의 상호작용을 드러냄으로써 과학과 사회의 관계의 일면을 보여줄 수 있는 대상으로 과학사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대중’은 과학지식의 생산과 수용에서 오직 부수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이라는 암묵적 가정으로 인해 대중과학은 과학사의 주변부에 머물던 주제였다.1) 주류 과학사 연구에서 대중과학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선은 이른바 ‘확산모델’ 혹은 ‘결핍모델’이라고 불리는 방식이었다. 이 모델들에서 전문적 과학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지식생산 활동으로, 대중과학은 과학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단순화되고 때로 왜곡된 형태로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것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런 구별에 따르면 과학의 전파 과정은 전문적 과학이 실행되는 방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과학적 지식은 프론티어의 전문가들로부터 말단의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흘러 내려간다(trickle down)’는 것이다.2)

그러나 구성주의적 과학사의 부상과 더불어 무엇이 정당한 과학이고 누가 그 정당한 생산자인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결손 모델에서 대중의 적극적 위상이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대중과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등장했다.3) ‘과학’과 ‘대중과학’, 또는 ‘과학자’, ‘과학중재자’, ‘대중’을 명확히 구분되는 비역사적 범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더 나아가 과학자와 대중의 소통 속에서 과학적 지식이 재구성되고 공동생산 된다는 상호작용 모형이 제안되기도 했다.4) 요컨대 이런 연구들은 대중들이 과학지식의 소박한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무엇이 정당한 과학지식인지, 정당한 과학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당한 ‘지식 생산자’로 자리매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의 연구들을 통해 대중과학은 과학의 사회·문화적 역할을 보여주는 좋은 창구가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일례로 역사학자들은 대중과학을 둘러싸고 상이한 정체성을 지닌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문화적 이해관계를 가진 채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을 조망했다. 가령 과학자들의 과학 대중화란 과학자들이 전문가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하고 과학의 사회적 유용성을 옹호하는 중요한 영역이지만, 대중들에게 대중과학이란 장은 대중들이 과학적 지식을 전유하고 활용함은 물론 때로는 전문가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그들보다 우월한 지식 생산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영역이었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이 글에서 다룰 지그리드 슈말저(Sigrid Schmalzer, 이하 슈말저)와 통 램(Tong Lam, 이하 램)의 저서들은 과학과 대중이라는 범주를 국가와 국민 정체성의 형성사와 교차시켜 새로운 통찰을 도출해낸 좋은 사례이다. 슈말저와 램은 중국사회가 근대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후 공산국가가 확림됨에 따라 그 주체로서 근대적 시민 또는 혁명적 대중이 어떤 방식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서구의 과학적 지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새로운 역사적 정체성 형성의 문제는 청나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게 절박한 과업이었다. 두 책은 이러한 국가건설의 핵심 주체들이 그들 스스로 과학을 보급하고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진지한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통해 ‘대중과학’이라는 범주를 비서구적 시각에서 성찰적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2. 슈말저의 ≪인민의 북경원인≫과 램의 ≪사실을 향한 열정≫: 간략한 개요

   

슈말저는 ≪인민의 북경원인(The People's Peking Man)≫에서 19세기 말부터 2005년에 이르는 중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인간 정체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대중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주의 중국의 국가 정체성 형성에서 인간의 기원과 인류문명의 진화를 다루는 진화론과 고인류학이 가진 함의와 그 변화양상을 시기별로 다루었다. 저자가 검토한 100여 년의 시기는 크게 처음 진화론이 중국에 유입되고 그에 대한 담론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 공산당 집권을 계기로 과학지식 보급 운동과 군중과학(Mass Science)이 구상되고 실행되는 마오쩌둥 집권 시기, 마지막으로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마오쩌둥 집권기에 힘을 얻었던 과학적 지식의 위상이 쇠락하고 그에 따라 전통적 자연담론이 복원되는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로 구분된다. 한 권의 책에서 광범위한 시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일관된 관심은 인간 기원과 관련한 과학적 지식과 공산국가의 건설, 그리고 대중의 관계이다.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는 청나라 이후 공산당 집권 이전 시기를 다루는 1단계에서 진화론이 사회주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중국 사회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진화론을 경쟁이나 적자생존 등의 개념들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옹호했는데, 이는 중국 인민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지하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또한 북경원인(北京猿人)은 노동을 중시하는 엥겔스의 이론과 접목되었고, “노동을 통해 인간이 진화하고 인간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 이념을 퍼뜨리려 한 공산당 정부에 의해 노동하는 인간의 원형으로 선전되었다.5) 이렇게 북경원인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되 통일된 국가로서의 굳건한 안정을 필요로 했던 당시 중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노동’을 핵심적인 가치로 삼는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정당화하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슈말저는 마오쩌둥 시대의 과학이 사회주의 사상과 얽혀있었고, 따라서 과학을 특정한 사회,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램의 저서 ≪사실을 향한 열정(A Passion for Facts)≫ 역시 ≪인민의 북경원인≫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란 사회는 무엇인가?’, ‘중국의 사회구성원들은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한 20세기 전반의 중국에서 등장한 일련의 시도들을 고찰한다. 이 책에서는 1900-1949년에 이루어진 사회조사(social survey)에 집중해서, 당시의 사회 조사활동이 어떻게 상상되고 기획되고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구성된 사회적 사실들(social facts)이 새로운 ‘중국’이라는 근대국가를 상상하고 표상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20세기 전반 중국의 근대화 과정의 바탕이 된 ‘사회적 사실’이 이미 존재하는 사회현상을 중립적이고 투명하게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개개의 인민을 국가건설의 핵심 구성인자로 호명하고 통합하려는 기획을 위해 구성된 사실임을 보이고 있다. 즉 사회적 사실은 새로운 국가와 신민(新民)을 현실화하려는 강력한 자원이었다는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에 따르면, 청나라 이후 근대화한 중국이 자리 잡고 이를 넘어 공산국가로 나아가는 변혁의 시기에 ‘과학적 사실’은 새로운 중국 대중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의 생산과 활용은 대중을 중심으로 대중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학 대중화 구도에서 생겨난 본질적 긴장 중 하나는 ‘국가의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대중과 ‘수동적인 계몽의 대상’으로서 (현실 속) 대중의 대립이었다. 예를 들어, 민국시기(民國時期)의 대중은 기본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로 여겨져 계몽해야 할 수동적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반 ‘인구조사’ 활동이 미신에 빠진 열등한 집단의 사람들을 범주화하는 데 사용되는가 하면, 마오쩌둥 집권기에는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과학보급 운동이 조직되고 확산되었다. 이때 대중은 교육되어야 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다른 한편 ‘인민’에 의한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공산당의 사상에 의하면 대중은 공산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주체여야 했다. 공산주의 이념이 실현된 새로운 국가란 각성된 주체로서의 ‘대중’이 역사의 전면에서 사회주의의 혁명 임무를 지속하고 완수하여 성취해야 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대중은 그러한 역량이 부족한 무지한 대상, 즉 혁명 주체로서 거듭나게끔 교화되어야 할 존재들로 여겨졌다. 대중은 새로운 국가의 핵심 주체로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또한 교육되고 계몽되어야 할 이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긴장이 있었기에 북경원인이 엥겔스의 주장과 연결돼 선전되었는가 하면, 마오쩌둥 집권기에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려는 군중과학 운동이 생겨나는 등 상반된 움직임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두 책은 20세기 중국사의 격변기 동안 과학 지식이 국가 및 신민의 정체성 담론과 함께 활용되고 변해온 다면적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책 모두 주요한 행위 주체들이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대중’을 변혁의 대상으로 상정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을 계도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에서 과학 대 미신, 근대성 대 전통 등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점 등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는 공통점을 띤다. 한편 램의 ≪사실을 향한 열정≫이 20세기 전반을 다룬다면, 슈말저의 ≪인민의 북경원인≫은 20세기 후반을 주로 검토한다는 점, 전자가 미국식 사회과학에 토대를 둔 사회조사를 통해 구성된 사회적 사실 및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 정체성 형성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후자는 진화론이나 고인류학에서 정립된 자연과학적 사실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 정체성의 문제를 검토한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인 측면을 찾을 수도 있다. 이어질 논의에서는 두 책의 이러한 차이점들을 염두에 두면서도, 두 글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과학과 대중, 국가 정체성 간의 관계라는 화제를 중심으로 두 저자의 논의를 분석하고 비평할 것이다.


3. 미신과 과학: 중국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과 근대 국민의 형성


1840년 아편전쟁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 계속되는 열강의 침략과 잇따른 패배 속에서 중국인들은 그들의 미약함과 서양의 강건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20세기 초반 중국은 계속되는 외침에 내부의 혼란까지 더해져 매우 약해져 있었다. 1912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가 무너지고 공화제를 주장하는 중화민국이 세워졌지만 전국을 통치할 만한 권위도 능력도 없던 중앙정권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더욱이 아편전쟁 이후 연이어 떠안은 유산인 불평등조약 체제는 중국에 큰 부담이었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중국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은 중국의 장래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갈 뿐이었다.6) 슈말저와 램의 책에 등장하는 당시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걱정했고, 중국의 생존을 위한 변화를 갈망하며 ‘약한 나라에서 강한 나라로’와 같은 슬로건을 외쳤다. 이는 청나라 이후 중국의 정치가나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적, 사상적 입장차를 뛰어넘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소망이었다.

광활한 국토에 수십억의 인구와 50여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분포한 중국은 각 지방마다 역사가 다르고 토속신앙이 달랐으며, 대중들은 각 지역 고유의 권위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앙정부를 통한 강력한 통치를 위해서는 우선 각각의 토속신앙과 문화에 속박된 파편화된 대중들을 중국이라는 한 국가 안에 통합시켜야 했고 국민당과 공산당 역시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에 강한 중국을 만들고자 했던 지식인들은 여러 개로 분할된 지방에 각기 퍼져있는 불균등한 역사·영웅 신화에서 탈피하여 균질적이고 중립적인 시공간 개념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식인들은 모든 지역이 똑같은 역사와 기원을 갖고 있음을 밝히고 나아가 모두가 협력하여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줄 뿐 아니라 흩어진 소수민족들을 하나로 규합해 강한 중국을 만들려고 했다.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대중은 지역적 고유성이나 특이성을 없애고 통합적인 주체로 변화시켜야 할 대상임과 동시에 애국적인 국민이자 정치적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런 지식인들이 생각하기에 중국 변화의 핵심은 ‘과학’이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과학은 새롭고, 근대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여겨졌고, 국가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미신은 과학의 반대편에 위치하여 중국의 발전을 위해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7) 이러한 인식은 램과 슈말저의 저술에서 일관되게 등장한다. 인구조사를 통해 정부 주도하의 대중 계몽활동이 이루어졌던 사실이나 20세기 중반 이후의 과학보급 운동과 대중 계몽도 이러한 인식 하에서 이루어진 활동이었다. 또한 램은 1915-1923년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 시기에 중국 지식인들이 ‘과학선생(Mr. Science, 赛先生)’을 제창하면서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피력했다는 점도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과학을 국가의 기틀로 삼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8)

램의 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당시 중국의 초식민지적(hyper-colonialism) 맥락에 대한 강조이다. 램에 따르면 톈진과 같은 조약항들에는 여러 열강 세력이 동시에 진출해 있었는데, 한 세력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다른 식민지들과 달리 중국에서는 여러 세력들이 각자의 비전을 제시하며 경쟁을 해야 하는 독특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인들은 상충하는 열강 세력들이 한 목소리로 내세우던 과학에 대해 문화적으로 저항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만약 중국을 한 국가가 완전히 점령하여 근대과학의 문화를 퍼뜨리려 했다면 중국 지식인들은 이에 저항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형식적으로는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세력에 제약된 ‘반식민지’였지만, 특이하게도 여러 열강이 동시에 주둔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초식민지’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중국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무력화한 열강들에게 굴욕을 느끼면서도, 모든 열강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근대과학’의 강한 모습에는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램은 여러 열강 세력들이 동시에 주둔해있던 톈진의 토착 지식인들에 의해 추동된 근대화가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무관하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었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무너지고 있는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론적 확실성을 과학이 보장할 수 있다는 서양의 과학사상에 오히려 쉽게 중독되어갔다. 그들은 과학의 힘이 적자생존의 게임 속에서 침략해오는 산업화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근대적 국가의 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과학은 근대성의 상징이자 힘의 원천이었고, 자신들의 무너진 사회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지식 체계였으며, 그들의 정치적 주장에 신뢰성과 힘을 더하는 무기였다.9)

이 시기 ‘과학’이 중국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의심 없이 추동되었던 것과 반대로 중국의 ‘전통’과 각 지방들이 갖고 있던 ‘미신’은 배척해야 될 대상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민중들이 믿어왔던 토속신앙 성격을 띤 미신들을 하루아침에 쉽게 없앨 수는 없었다. 램은 사회조사가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주도한 미신 타파와 긍정적 과학수용을 동반한 거대한 ‘인식 전환’ 활동의 중심이었다고 주장한다. 램에 따르면 중국의 지식인들은 사회조사, 특히 인구조사를 통해 ‘중국이란 사회는 무엇인가?’, ‘중국의 사회구성원들은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중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안에 사는 인민들의 성격을 재구성하려 시도했다. 한 예로, 1928년 실시한 인구조사를 통해 국민당 정부와 지방 당국은 흩어진 개인들과 집단들을 하나의 사회적 존재(social body)로 통합하여 강한 동시성과 공동의 운명을 가진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이때 실시된 인구조사는 인구 통계적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을 넘어 다양한 설문조사와 교육까지 포함한 포괄적 활동이었다. 이런 광범하고 조작적인 인구조사는 특정한 개인과 집단을 역사에서 뒤쳐진 미개한 존재로 규정하였고, 설문조사의 대상이 되는 내용을 특정한 주제에 한정함으로써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램에 따르면 이 인구조사는 직접적인 인구의 수치화를 통해 인구를 관리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교육과 공공보건 심지어 중국 인민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우생학적 사상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램은 당시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지식인들이 행한 인구조사가 중국 인민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국가의 보편적 국민으로 묶은 후 그들을 선형적 문화 진보 단계의 상이한 지점에 배열하여, 국민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국민당에게 대중은 ‘우민(愚民)’으로서 ‘교육시키고 문명화시켜야 할’ 대상이었고, 그들을 ‘계몽’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인구조사 활동이 정당화해주었던 것이다. 조사에 필요한 인원 부족, 피조사자들의 부정확한 정보 등을 이유로 이 인구조사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지 못했음에도 저자가 국민당의 인구조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 인구조사 활동은 국민당 지식인들이 설정한 설문내용에 포섭되지 않는 ‘변칙’적 현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가능케 하고 국가 통제주의적 담론과 실행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10) 이로써 국민당 정부는 그들이 추구하는 국가건설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는 것이 램의 핵심 주장이다.

램이 ‘인구조사’로 대표되는 사회조사 활동을 중심으로 국민당이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만들고 훈육한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면, 슈말저의 연구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례로 공산당의 ‘과학보급(科學普及)’ 운동이 등장한다. 슈말저에 의하면 과학보급 운동은 국가 건설과 안정을 위해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을 보급하고자 사회주의자들이 정력적으로 추진한 핵심 사업이었다. 이 운동은 노동자들의 과학생산기술 습득, 자연과학지식의 확산을 통한 미신타파, 노동계층의 애국정신 고양, 대중건강을 위한 건강/위생 지식의 확산이라는 4가지 주요 목표를 설정하고 시행되었는데,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이 명확한 전형적인 하향식(top-down) 과학대중화 활동이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과학보급 활동에 중앙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들을 동원했다. 진화론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어 교과서에 등장한 것은 물론이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당에서 여는 교육 세미나나 각 지방에 퍼져있는 여러 기관들을 통한 교육이 제공됐다. 또한 지식인들은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의 내용을 보급하는 잡지를 출간하고, 박물관에 진화론과 관련한 전시관을 따로 마련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 이렇듯 당대의 과학보급에 있어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과학보급을 전담하는 행정기관을 설립하여 많은 권한을 주었을 뿐 아니라, ‘과학보급’이라는 용어는 물론 그 줄임말인 ‘과보(科普)’까지 만들어 유행시킬 만큼 과학 대중화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대중을 무지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교육하려고 했던 점은 20세기 초엽의 국민당의 인구조사 활동과 20세기 중엽의 공산당의 과학보급 운동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과학보급 운동은 대중을 정부의 이상에 맞게 계몽시키려는 노력 중 하나로 정부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당의 사회조사 활동과 같은 전형적인 하향식 과학대중화 활동이었다. 여기에는 과학자들의 자발성이 아닌 강한 중앙권력이 대중화를 조직적으로 시행했다는 점, 그리고 대중을 무지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계몽시키려 한 강한 근대국가 건설이었다는 점에서 중국의 독특한 맥락이 깔려있었다. 두 책에 등장하는 엘리트 지식인들은 대중을 향해 사회조사 활동과 과학보급 활동을 펼치고 이를 통해 과학과 계몽된 대중을 근대성과 진보의 주체로 내세우려 했지만, 그 이외의 미신이나 농민과 소수민족 같은 타자는 전근대적이고 문명화되지 않은 것으로 배제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국가 재건을 위해 필요한 근대적 성격을 지닌 공동체로서의 대중을 상정하고 이들의 형성을 도모했다.


4. 군중과학(Mass Science): 주체적 민중의 형성


그렇지만 20세기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대중’이 단순히 계몽해야 하고 교육해야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존립을 위해 ‘대중’은 반드시 적극적인 혁명의 주체로서 형성되어야 했고,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과학과 노동을 추앙”하는 당시 중국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적 엘리트’라는 개념이 타파해야 할 대상이었다. 슈말저가 잘 보여주듯이 마르크스주의와 친화적인 진화론 및 고인류학적 과학지식이 선별적으로 대중과학에 활용되었고, 마오쩌둥 집권 이후의 중국에서는 과학의 실행 현장에서도 과학자의 특권을 없애고 대중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지식의 계급정치학(class politics of knowledge)’을 추구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앞 절에서 언급하였듯이, 20세기 초반 중국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서양의 진화론 사상은  ‘적자생존’, ‘경쟁’, ‘진보’ 등 부국강병 담론의 핵심개념과 접목되며 중국 내에서 저항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이후에는 ‘북경원인’이 “노동이 진화의 주된 동력”이라는 엥겔스의 이론과 얽히며 노동 중심의 중국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경원인의 원시 공동체가 노동으로부터 면제된 집단이나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노동·생산 활동에 참여한 사회로 그려지면서 북경원인은 공산당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더불어 공산당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공산주의의 단초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얻었다. 슈말저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마오쩌둥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시작된 ‘군중과학’ 역시 공산당의 활동과 북경원인의 발견이 교차하는 중에 등장하였다. 당시 북경원인 논의에 따라 노동에 기반을 둔 인간 정체성에 대한 정의가 생겨난 이후 지적인 과학 활동과 일반 육체노동의 구별이 폐기되면서 군중과학이 등장했던 것이다. 즉, 마오쩌둥은 과학자를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며 과학자들이 상아탑에서만 연구해서는 안 되고 노동현장에 직접 투입되어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으로부터 배워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20세기 중엽 중국에서는 하향식 과학보급 운동과 더불어 군중과학이라 불리는 상향식(bottom-up) 대중과학이 등장했다. 슈말저는 군중과학이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하향식 대중과학이라 볼 수도 있지만, 군중과학이라 규정할 수 있는 공산당의 여러 프로젝트에서는 대중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됐다는 점에서 다른 하향식 대중과학과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정확히 말해 중국 사회주의시기에 공산당이 국가 정체성 확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군중과학은 상향식과 하향식의 조화를 추구하며 실행된 독특한 대중과학 활동 형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중과학의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군중과학 운동이 시행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자 과학자들 내부에서 불만이 생기고 과학자들과 대중들 간의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군중과학은 마오쩌둥에 의해 문화혁명의 한 주축으로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과학보급’ 운동과 비교하여 그 개념이나 목표가 확실하게 설정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덜 조직화돼 있었고 지속적인 정치적 뒷받침도 받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군중과학 운동이 마오쩌둥의 의지와는 달리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과학자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국민과 연구자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학자들의 고민은 군중과학이 실행되는 내내 불안하게 이어졌다. 이는 대중계몽을 목표로 하는 과학보급에서 책임감을 느끼던 과학자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과학자와 대중의 협업은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으며, 과학자들은 대중들의 ‘지혜’와 대중들의 ‘가상’ 혹은 ‘미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실질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슈말저는 ‘군중과학’의 시기에 대중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큰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마오쩌둥의 이념에 따른 군중과학에서 대중은 ‘무조건적 믿음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따라서 대중이 과학적 담론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군중과학의 실패 이후 사람들, 특히 과학자들은 대중에 대한 인식이 모순되고 과장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대중을 믿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나 지식을 미개하거나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대중의 위상을 두고 혼란스러워 했다.11) 이러한 모순을 안고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가 시작되었고, 1980년대 후반이 되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대중을 동원한 과학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렇게 군중과학의 폐해에 대한 반작용이 부상하면서 과학을 다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한정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그러나 슈말저는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가 되어 대중과학이라는 수사가 점차 감소하기는 했어도, 대중의 과학 참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으며 대중은 과학자들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잠재력까지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전후해서 대중 속에서 변해가는 과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예는 ‘야인(Wild Man, 野人)’이다.12) 원래 야인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유인원으로, 이전에는 소설이나 연극의 소재로만 등장하던 미신적인 존재였다. 그렇지만 야인은 1950년대에 학문적인 관심거리로 부상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1956년, 마오(Mao Guangnian) 교수와 왕(Wang Zelin) 교수는 베이징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개관식에 참석했다. 그들은 북경원인의 복원상 앞에 서있었는데, 왕 교수는 별안간 “이건 야인이잖아요! 전에 본 적이 있어요!”라고 외쳤다. 마오 교수가 그에게 “북경원인은 50만 년 전의 인류의 조상이에요. 어떻게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라고 묻자 왕 교수는 자신이 1940년에 황하 수자원 관리 위원회(Yellow River Water Control Committee)에서 탐험을 떠났을 때 지역 주민이 쏴 죽인 반인반원(半人半猿)의 괴물을 본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증언은 마오 교수로 하여금 실제로 야인이 존재하며, 이것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유인원일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이후 마오 교수는 야인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촉구했고, 1950-60년대에 고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마오 교수는 각각 야인에 대한 소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중국 사회에서 야인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문화혁명이 끝나던 1976년경이었다. 이 시기에 야인 열풍이 불기 시작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미신 타파라는 정치적 캠페인의 강도가 약화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미신과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 새롭게 허용된 해외의 책들 중에 예티나 빅풋과 같은 반인반원에 대한 문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셋째, 출판의 자유와 상업화의 확대가 만나 통속과학과 공상과학의 확산을 이끌었고 야인은 여기에 적합한 주제였다. 무엇보다 1980년대 이후 야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원시적이고 순수한 과거의 상징으로 그려졌거니와 문화혁명 시기 동안 억눌렸던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환경파괴와 같은 문명의 폐해로부터 벗어난 자연인의 삶, 그리고 과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대중들의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야인을 발견한다면 엥겔스의 이론 또는 다른 마르크스 이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야인이 바로 진화론 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일 것이라는 기대 등도 이에 합세했다. 이 과정에서 야인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대중들의 목격담과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야인 연구에 참여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후 야인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는 대중들의 야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오히려 야인 연구에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모습도 보였다.

램이 보여준 20세기 전반 국민당 주도의 인구조사와 슈말저가 보여준 20세기 중후반 공산당 주도의 과학보급 운동은 일단 대중을 무지하고 계몽해할 대상으로 상정한 후, 그들을 범주화하고 훈육하는 대중과학 활동이었다. 그렇지만 슈말저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군중과학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 대중의 다른 측면을 제시했다. 즉, 통치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혁명 주체인 대중의 이중성을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공산당의 사회주의 이념 속에서 탄생한 독특한 대중과학이 바로 군중과학이라는 것이다. 슈말저는 대중과 과학에 대한 기존의 하향식 관점에 상향식을 추가하여 쌍방향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군중과학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슈말저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사례를 통해 대중과학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관점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군중과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시도의 역동적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중국의 대중과 과학의 복잡한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5. 마무리하며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대중과학을 다룰 때 전문가들이 생산한 과학지식이 대중에게 전파되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택했다. 반면 슈말저와 램의 책에서 대중과학은 특정한 정치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한 국가 및 신민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각축전의 ‘장’이라는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슈말저는 ≪인민의 북경원인≫에서 북경원인을 사회주의 이론과 연관 지어 그들의 이념을 실현하려 한 중국 공산당 정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램 역시 20세기 전반에 국민당의 주도로 시행된 사회조사, 특히 인구조사가 근대국가로 쇄신하기 위하여 지방의 우민들을 일깨우고 모든 인민들을 근대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 통합하려는 작업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두 권의 책에서 우리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국가와 대중의 조화로운 관계를 정립하려던 중국 정부의 노력과, 새롭고 강한 미래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이용되는 과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가건설의 핵심 주체들은 과학을 보급하고 대중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진지한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중과학의 확산모델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슈말저가 과학보급과 군중과학을 통해 보여주듯 당시 중국의 과학과 대중의 관계는 역설적 면모도 띠고 있었는데 이는 대중을 이중적으로 주통치의 대상이자 혁명적 주체로 봐야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이념상 불가피한 긴장이었다. 이러한 맥락 하에 중국에서는 자연스레 하향식 대중과학과 상향식 대중과학이 함께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은 교육받아야 하는 객체로 ‘대중’을 바라보는 대중과학 확산 모델로서의 과학보급 활동과 대중이 주체가 되는 참여모델로서의 군중과학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실행하였다. 군중과학은 내용적으로는 대중지식을 과학지식으로 편입하고, 형식적으로는 대중의 평등한 참여공간을 확보하고자 고민한 결과였다. 그러나 슈말저가 주목하는 중국에서의 상향식 군중과학 마저도 결국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춰 구상되고 시행되었음을 고려할 때 과연 ‘상향식’이라는 평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대중이 주체라고는 하지만 진정 대중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과학자들과 상호작용 하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야인의 사례가 대중의 주체적인 행위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야인이 대중들 속에서 인기를 얻으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음에도 과학자들이 개입하여 연구를 시작한 이후에는 대중과 과학이 더 분리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결국 슈말저가 군중과학을 상향식 대중과학으로 분류하였지만, 군중과학의 실질적 실패는 군중과학 역시 상향식 대중과학의 외피를 쓴 또 다른 형태의 하향식 대중과학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이 두 권의 책은 청나라 이후 지금의 중국이라는 국가가 형성되는 데에 ‘과학적 지식’이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슈말저의 책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대중과학의 실천과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지배적인 대중과학 모델은 대중의 ‘무지’를 상정하는 결핍모델 및 확산모델이었지만, 중국의 대중과학은 ‘미신’을 과학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서양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더구나 흔히 ‘과학자’ 집단과 ‘대중’의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대중과학이 중국에서는 국가건설을 위한 ‘지식인·지도자’들의 절실한 사명감 속에서 급박하게 실행되었다. 이 와중에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에 대한 대중의 참여 확대, 과학교육의 확대 등의 중요한 현안들이 이미 치열하게 고민되고 있었다. 이 속에서 당대의 과학자들은 오히려 대중과학 실행의 주체가 아닌 수동적 객체라 느끼기도 했고, 국민으로서의 애국심과 과학자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군중과학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 노력과 실천에서 과학과 대중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다”라는 슈말저의 말이 ‘비서구’의 독자들에게 더 깊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이 대중과학을 다루는 전통적 역사서술의 한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책 모두 하향식 대중과학을 실행한 행위자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실제 대중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는 여전히 부족함이 크다. 슈말저의 책에서는 군중과학을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대중 반응이 일부 거론됐고, 램의 책에서는 인구조사 과정의 피험자로서 대중의 반응만이 일부 언급될 뿐이다. 만약 시선을 정부나 정치가에서 대중이나 현장 과학자로 옮겨본다면 대중과학의 실행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풍부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오늘날 과학 대중화를 고민하는 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 정체성 형성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진화론, 고인류학’ 지식이 아닌 다른 성격의 과학들이 동시대에 대중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도 살펴 볼 수 있다면 중국과학기술정책의 현황 및 방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더 포괄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의 초고를 읽고 논평을 해주신 이두갑, 홍성욱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1) Jonathan R. Topham, “Introduction (Focus section: Popular science),” Isis 100 (2009), pp. 310-318.

2) Andreas W. Daum, “Varieties of Popular Science and the Transformation of Public Knowledge: Some Historical Reflections,” Isis 100 (2009), p. 320.

3) 다음의 연구들이 대중과학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한 대표적 연구들이다. Stephen Hilgartner, “The Dominant View of Popularization: Conceptual Problems, Political Uses,” Social Studies of Science 20 (1990), pp. 519-539; Roger Cooter and Stephen Pumfrey, “Separate Spheres and Public Place: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Science Popularization and Science in Popular Culture,” History of Science 32 (1994), pp. 237-267; James A. Secord, Victorian Sensation: The Extraordinary Publication, Reception, and Secret Authorship of 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Bernard Lightman, Victorian Popularizers of Science: Designing Nature for New Audience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4) Bernadette Bensaude-Vincen, “A Historical Perspective on Science and Its "Others",” Isis 100 (2009), p. 360; James A. Secord, “Knowledge in Transit,” Isis 95 (2004), pp. 654-672.

5) ‘북경원인(北京猿人)’은 1923년 중국 북경의 주구점(周口店)에서 발견된 인류화석으로 초기에는 현생인류의 조상 또는 아시아계의 조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직접적 연관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북경원인은 발견 당시 석기와 화로 등의 도구가 함께 출토되어,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공동체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특히 마오쩌둥 집권기에는 북경원인을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보고 북경원인의 생활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원시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 집중됐다. 슈말저에 따르면 공산당 지식인들은 ‘북경원인’의 존재를 ‘노동’의 필연성과 연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육체노동이 진화의 주된 동력’임을 강조한 엥겔스(Frederick Engels)의 주장(“The Part Played by Labor in the Transition from Ape to Human”(1876))을 ‘노동이 인류를 창조하였다'라는 표어로 변형시켰다. 이처럼 ‘북경원인’은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에서 레닌으로 이어지는 사상을 따르는 공산당 지식인들이 그들의 사회주의 이념을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퍼뜨리는 데 매우 유용한 과학적 지식이었다.

6) 이시카와 요시히로, 손승희 역, ≪중국근현대사3≫ (삼천리, 2013).

7) Schmalzer, The People's Peking Man, pp. 27-28.

8) ‘과학선생(Mr. Science, 赛先生)’ 개념은 1919년 중국의 ‘신문화운동’ 시기에 제시된 중요한 구호 중 하나로 자연과학법칙 및 과학정신을 모두 내포하는 ‘과학’ 개념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 구호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있던 ‘과학구국(科學救國)’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9) Lam, A Passion for Facts, p. 14.

10) Lam, A Passion for Facts, pp. 117-141.

11) Schmalzer, The People's Peking Man, p. 231.

12) Schmalzer, The People's Peking Man, pp. 201-212.


Category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제42권 제1호 갈릴레오의 흑점 연구와 태양 자전 논증 file
조장현
2020 1-27
제42권 제1호 『삼국사기』 천문 기록의 재검토: 중국 사서(史書) 의존성 기록을 중심으로 file
전용훈
2020 29-64
제42권 제1호 18세기 중반 조선 일월식 계산의 새로운 기준으로서 청나라 일월식 자문 file
김슬기
2020 65-95
제42권 제1호 이익(李瀷)의 새로운 재이(災異) 분류와 재이에 대한 책임 소재의 확대 file
이정림
2020 97-123
제42권 제1호 조선 후기 기술 지식의 실용성: 제지(製紙) 관련 지식을 통해 본 실학(實學) file
이정
2020 125-161
제42권 제1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군사적 기원 file
유상운
2020 163-185
제42권 제1호 민족의 생명력: 미즈시마 하루오의 인구통계학 연구와 우생학 file
박지영
2020 187-218
제42권 제1호 (기획) 서문: 기초과학연구진흥 원년 30주년 기념, 한국 기초 과학 정책의 역사 file
신향숙
2020 219-221
제42권 제1호 (기획) "목적 있는 기초 연구": 한국과학재단 설립 이후 기초 연구 외연의 확장, 1977-1989 file
강기천
2020 223-246
제42권 제1호 (기획) 기초 과학과 기초 연구의 사이에서: 기초 과학 육성 정책과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의 등장 file
신향숙, 문만용
2020 247-273
제42권 제1호 (기획) 과학 제도의 수입:기초과학연구원 설립에서 벤치마킹의 정치성 file
신유정, 우태민, 박범순
2020 275-302
제42권 제1호 (비평 논문) 영웅 없는 『콜레라 시대』 file
박범순
2020 303-311
제42권 제1호 (서평) 로이 포터 지음, 최파일 옮김, 『근대 세계의 창조: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 (교유서가, 2020), 1120쪽. [원서: Roy Porter, The Creation of the Modern World: The Untold Story of the British Enlightenment.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00. 727 pp.] file
정원
2020 313-317
제42권 제1호 (서평) John Gascoigne, Science and the St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250 pp. file
황교련
2020 319-324
제42권 제1호 (서평) 구만옥, 『조선후기 의상개수론과 의상 정책』 (혜안, 2019), 432쪽. file
김상혁
2020 325-328
Board Pagination ‹ Prev 1 Next ›
/ 1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Phone +82-2-880-6511 / Fax +82-2-878-6544 / Email khssociety@gmail.com
© The Korean History of Science Society 201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