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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35권 제3호 (2013), 521-542

[기획논문] 연속 개념에 대한 불연속적인 교육 방식의 문제: 수학교육과 수학사 융합의 현황과 사례연구

by 정원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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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Combining history of mathematics with mathematical education is one of broadly discussed topics of mathematical education. Since the stages of development of students’ mathematical notion resemble the historical introduction of new mathematical ideas, the potential effectiveness of integrating history with classroom education is very large. This article surveys some efforts to apply history of mathematics to education and suggests one possible topic which can be adapted in university mathematics class. Many students who major in natural science or engineering in Korea have a difficulty in understanding university mathematics. One of the reasons which causes such a difficulty is the introducing whole new method never used in high school mathematics class. That method is so called ε-δ method. This article shows that ε-δ method came to be used through long and hard efforts of the 17th, 18th and 19th century mathematicians who wanted to establish rigor in calculus and the main figures were Euler, d’Alembert, and Cauchy. Also this article asserts that explaining historical development of ε-δ method will help students overcoming difficulties due to discontinuous method of mathematical teaching.
주요어 mathematical teaching, history of mathematics, ε-δ method, Cauchy

1. 머리말 


본 연구는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현황을 분석하고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실제로 수학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수학사의 사례를 발굴,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학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학문이라는 점 때문에 예로부터 다른 학문의 모델로 여겨져 왔으며 완벽한 증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학문적 엄격함, 그리고 주어진 문제를 분석적으로 탐구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력 등에 있어서도 인간의 사고 능력을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학문으로 평가받아 왔다.1) 또한 수학은 다른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 이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본적인 도구적 지식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에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그 학문적 중요성과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구조와 원리를 다루는 학문인 수학에서 도출된 일반화된 결과들은 다양한 조건에 맞게 변형되어 응용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산수를 포함한 수학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학의 논리적 탁월성과 응용 가능성에 입각한 수학 교육의 중요성이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고 체계적인 수학 교육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수학을 여전히 어려운 과목으로 생각하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수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들조차도 논리적인 사고 능력 배양과 추상적인 개념의 이해보다는 시험에서 답안을 고르기 위한 빠른 문제 풀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 풀이를 중시하는 경향은 중·고등학교 수학 교육에서 강한데, 이러한 경향은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을 단순히 공식을 암기하여 응용문제에 적용하는 수준의 학문으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이 결과로 학생들은 대학교에 진학하여 증명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학을 접했을 때 매우 큰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수학을 빠른 문제 풀이를 위한 도구적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고, 흥미를 가지지 못하며,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수학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두 가지 정도로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육에서는 논리적 사고나 증명을 무시한 채 해답 구하기에 치중된 교육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성격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수학이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학 등의 다른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로 진학할 계획이 없는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재미없는 과목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2) 둘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수학,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수학의 내용과 그 설명 방식이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중학교까지의 수학 교과서에서는 기하학이나 산수와 관련된 기초적인 개념들이 제시되다가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함수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여 수학 교과서의 주요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에서는 함수의 여러 특징들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에 바탕해 설명이 제시되던 것이 대학교 미적분학 교과서에서는 이른바 ε-δ법이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갑자기 대체된다. 이러한 수학 교과서의 전반적인 체제의 급격한 변화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마저도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느끼며 원래 가지고 있던 흥미를 잃게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유발하고 있다.

앞서 제기한 두 가지 문제 중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사실 풀이법 위주의 교육이냐 증명 위주의 교육이냐와 관련된 첫 번째 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터이지만 이 문제는 전반적인 교육 체계의 변화와 우리나라의 입시 체계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고, 본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본 연구에서는 현실적인 차원에서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는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 주된 논의가 진행될 것이며, 그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로 과학사 및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과학사 및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해외의 사례와 비교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구체적인 수학사의 사례에서 수학 교육과 관련된 어떠한 함의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실제적으로 수학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사례로 연속 개념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설명을 제시할 때 참조할 만한 모델을 제안할 것이다.


2.  수학교육의 쟁점들과 대안으로서의 수학사의 접목


수학과 수학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Plato, B.C. 424-348)은 수학이 “영혼의 눈을 뜨게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아의 입구에 쓰여 있었다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라는 어구에 대한 일화는 플라톤이 윤리학, 정치학, 철학의 기본 출발점으로서 수학을 중요시했음을 보여준다.3) 18세기의 수학자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는 수학이 다른 학문의 기본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력과 사고력 도야의 수단임을 강조했다. 그는 수학을 학습하는 것이 “정신 체조”라고 주장했다. 이는 맨손 체조가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식인 것과 마찬가지로 수학을 배우는 과정이 건강한 정신의 유지 및 발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방안임을 강조했던 셈이다. 그는 “세는 일, 계산하는 일은 두뇌의 모든 질서의 근원이다”, “기초적으로 다루어지는 수 및 도형의 교육은 정신적 기술력의 수련이다” 등의 언급을 통해 단순한 문제 풀이 능력이 아닌 사고 능력 및 지적 능력의 배양이 수학의 가장 탁월한 측면임을 강조했던 것이다.4)

한편 20세기의 저명한 수학교육자 폴리아(George Pólya, 1887-1985)는 평생에 걸친 수학 교육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며 93세의 나이에 국제수학교육회의에서 “수학은 지력을 증진시킨다. 단 적절하게 가르치고 배운다면 말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폴리아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위의 언급을 통해 수학이 인간의 사고 능력 배양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교육이 적절한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던 것이다.5)

그렇다면 폴리아가 우회적으로 언급했던 적절하지 않은 방식의 수학 교육이란 어떠한 방식의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었을까? 그는 수학 교육에 있어서 비판적 의식성을 동반한 수학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 수학 교육의 본질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중등 교육은 물론이고 고등 수학교육에서도 계산법과 알고리즘, 혹은 증명법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는 초중등 수학교육에서는 설명과 예제를 통한 계산법과 알고리즘의 적용훈련만을 강조하고 고등 수학교육에서는 특정한 형식의 증명법을 터득해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정리들을 증명하는 데 적용하는 훈련을 강조하면서 수학적 사고의 특징인 유연성과 발전적 적용 가능성을 오히려 저해했고, 결과적으로 수학적 사고의 발달과 지적 발달을 해치고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앞서 소개한 폴리아의 현재 수학 교육에 대한 비판은 주로 초․중등학교에서의 수학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 비판은 대학에서의 고등 수학교육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에서의 수학 교육은 알고리즘과 계산법의 적용을 탈피하여 증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다는 점에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수학 교육 내용과 너무나 동떨어진 증명 위주의 내용이 제시되면서 학생들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새롭게 소개되는 개념 및 수학적 정리들에 대한 정의 및 증명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을 암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은 아주 크다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주로 대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이공계 학생들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발단은 대학교 수학에서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을 거쳐 수정, 보완된 개념들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의 지식으로, 그것도 고등학교 때까지 학습했던 형태의 지식과는 사뭇 다른 개념과 방식을 사용해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 수학 교육학자 우정호는 의미심장한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우정호는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사고하도록 인간을 이끄는 것을 의미하지만 결코 처음부터 완벽하게 손질된 지식 체계로 사고하도록 이끌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6) 그는 하나의 지식 체계에 내재된 수학적 사고 방법은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며, 이를 활용했을 때 보다 자연스럽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수학 교수학적 원리를 들어 수학사가 수학교육에 적절하게 이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수학 교육에 있어서 수학사의 활용을 강조했던 것은 비단 현대의 수학교육 전문가들뿐만이 아니다.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유명한 대수학자이자 괴팅겐 대학을 세계적인 수학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시켰던 훌륭한 교육자였던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은 과거 수학의 역사적인 발전 단계를 교육에 접목시켜 학생들의 이해를 도모한다는 ‘재현의 원리’를 제안하면서 “그러한 자연스러우면서도 참으로 과학적인 지도 방식을 보급하는 데 있어서의 본질적인 장애는 역사적 지식의 결핍이며 이는 종종 통감되는 바이다”고 토로하며 수학사가 수학 교육에 있어서 활용되어야 함을 지적했다.7) 이러한 클라인의 주장은 20세기 중반 근현대 수학적 성과에 입각해 수학 교육 방식과 내용을 현대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함을 주장하며 수학 교육계를 풍미했던 이른바 ‘새 수학’운동에 대한 비판의 논거로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적인 토대 위에서 재구성된 수학교육을 주장했던 ‘새 수학’의 주창자들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옛 수학부터 교육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 고급 수학에서 사용되는 선형대수나 해석학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며 매우 급진적인 주장을 제시했는데, 비판자들은 그 방식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 클라인의 역사 발생적 원리를 중시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8)

그렇다면 수학사를 실제 수학 교육에 적용할 경우 기대되는 이점은 무엇이 있을까? 파우벨(John Fauvel), 프로이덴탈(Hans Freudenthal) 등의 학자들은 기대되는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시한다.9)

1) 알고리즘적인 계산 수학을 반성하며 개념적 사고를 달성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2) 교육 과정 구성에서 내용 배열의 자연스러운 준거가 되며, 학습지도에서도 수학적 아이디어의 발달 과정을 따름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3) 수학의 역사적 발달 과정을 추적해 봄으로써 수학적 사고의 인간적인 모습을 접해보게 하여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수학 학습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4) 현대 기술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의 수학의 중심적인 역할과 수학의 문화적인 역할, 그리고 특히 인간관과 세계관 형성에 미친 수학의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은 초중등교육 과정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에서도 공히 적용되는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수학을 연구하기 위해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에 있어서도 경청할 만한 지적이다.


3. 수학교육과 수학사 융합의 시도들: 국내외의 현황


3.1. 국내의 현황


국내에서 수학사 및 과학사를 수학 교육에 접합시키려는 노력은 크게 두 집단을 위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는 수학사에 관심이 있는 대학의 수학 교수들의 집단이며, 둘째는 일선 현장에서 수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수학 교사들이다.10)

먼저 수학 교수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이들은 전문 학회 활동과 학회지를 통한 논문 발표를 통해 수학사와 수학 교육을 접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학술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학회는 한국수학사학회이다. 대학의 수학 교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수학사학회에서는 1년에 4회에 걸쳐 ≪한국수학사학회지(The Korean 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를 발간하고 있다. ≪한국수학사학회지≫에는 동서양 수학사뿐만 아니라 수학과 문화, 수리 철학 분야에 대한 논문을 게재하고 있으며, 수학 교육도 한 분과를 차지하고 있다. 수학사와 수학 교육에 대한 논문이 동시에 한 학회지에 출판된다는 사실은 두 분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한국수학사학회지≫에는 “역사 발생적 분석을 통한 대수 지도”, “수학사에 근거한 수학 영재의 창의적 산출물 평가 준거 개발” 등과 같은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활용 혹은 적용하는 연구가 다수 출판되고 있다.11)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집단은 수학 교사들이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자발적인 온, 오프라인 모임을 결성하여 수학교육에 역사적인 사례들을 적용해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교사들의 모임 중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단체로는 ‘수학 사랑’ 모임을 들 수 있다. 자발적인 모임의 성격을 가지고 활동했던 이 단체에서는 수학사에 관심이 있는 수학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실제 교육 현장에서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토론했으며, 잡지를 발간하여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모임은 현재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그 구성원들은 2008년 경기도 남양주에 수학 문화원이라는 ‘수학 문화의 확산’의 기치를 내건 시설을 개소하여 수학과 관련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12)

살펴 본 바와 같이 국내에서는 교수 집단과 수학 교사 집단이 제각기 다른 영역에서 수학사를 수학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 및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와 활동의 결과가 실제로 효과를 보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리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국내의 현황과 관련해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먼저 두 집단이 거의 상호 교류 없이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는 교수들은 실제 교육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론적인 연구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로 수학 교사들은 전문적인 수학사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몇몇 수학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차원에서만 수학사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수학사의 적용에 대한 논의가 초·중·고등학교에 대해서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학 이전의 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대학의 수학 교육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학사가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의 수학 교육과 관련된 많은 실제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3.2. 해외의 현황


국내의 상황과 대비되는 해외의 사례로서 소개할 만한 단체는 HPM(History and Pedagogy of Mathematics) 모임이다. 수학사학자들과 수학 교육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세계적인 단체인 HPM에서는 정기적으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수학사와 수학 교육학의 연구 성과를 발표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고, 이 학술회의는 수학사 학계에서 권위 있는 학회로 인정받고 있다. HPM 학회와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회의가 열릴 때마다 프로그램에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는 수학 교육 관련 워크숍이다. 학회에 참가한 세계적 수학사학자들은 연구논문 발표 이외에 수학 교육에 수학사를 적용하는 사례를 토론하는 워크숍에 참가하여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워크숍에서는 갈릴레오의 계산자의 사례를 응용하여 계산법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수학사학자와 수학교사, 대학생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청중들에게 그 방법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방식을 통해 보다 실질적으로 수학사와 수학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HPM 학회의 워크숍은 전문적인 수학사 연구와 수학 교육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13)


4. 수학 교육에 수학사를 적용하기: 연속 개념의 사례


4.1. 고등학교 수학과 대학 수학의 불연속성


앞서 2절에서 문제 제기한 상급학교로 진학 시 수학의 내용 및 전체적인 체계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서와 대학교 1년생의 수학 교과서인 미적분학 교재의 구성 차이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고등학교까지의 수학 교육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제 풀이 방법과 관련되어 교과서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으나 대학교 미적분학 교재의 경우 그 내용의 근간은 수학적인 증명에 바탕하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수학에서도 증명의 개념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할 때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으며, 반대로 대학교 교재에서도 실질적인 문제 풀이를 위한 예제들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반적인 체계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즉 교과서에 소개된 수학은 풀이를 위주로 하는 도구적 지식에서 증명을 위주로 하는 논리적 지식으로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를 겪는 셈이고, 이로 말미암아 고등학교 때까지의 수학에 익숙해 있던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수학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흥미를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연속 개념에 대한 정의 및 설명이다. 고등학교 수학에 있어서 연속의 개념은 미적분학과 관련해서 그 정의 자체와 증명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수학에서 사용되는 함수의 연속 개념에 대한 정의와 증명은 그 내용이 이후의 문제 풀이를 위주로 하는 미적분학의 논의와 큰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직관적인 정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함수 f(x)의 x=a에서의 연속 개념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f(a)의 함수 값이 존재한다.

2) f(x)의 x=a에서 우극한과 좌극한이 존재한다.

3) 우극한과 좌극한의 값이 일치한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함수 f(x)는 위의 3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때 x=a에서 연속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함수의 정의역에 속하는 모든 a에 대하여 위의 조건을 만족시킬 때 그 함수는 연속함수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매우 직관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 정의는 함수 f(x)의 그래프를 그렸을 때 x=a에서 그 그래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음을 수학적인 언어로 대체하여 표현한 것이며, 연속 함수에 대한 정의 역시 기본적으로는 그래프가 끊어짐 없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인 사고에 기반을 둔 직관적인 정의가 고등학교 수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이 정의가 내용을 명확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번  제시되고 나면 그 이후의 문제 풀이 중심 내용에서 그리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교 이공계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여 배우게 되는 미적분학이나 해석학 교재에서 소개되고 있는 함수 f(x)의 x=a에서의 연속 정의는 앞서 살핀 것과 사뭇 다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의의 ε>0에 대하여 |x-a|<δ이면 |f(x)-f(a)|<ε를 만족시키는 δ>0가 존재하면 함수 f(x)는 x=a에서 연속이다.1)


이 정의는 고등학교 수학에서 제시된 내용과는 거의 무관하게 전혀 다른 개념을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생소함은 정의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ε-δ법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하기도 하고, 그 정의 내용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매우 논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학 미적분학에서 이러한 논리성을 강조한 정의가 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대학 수학에서 문제 풀이보다는 증명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연속 개념의 정의가 직관적으로 제시된 후 이후 내용에서는 다시 사용되지 않는데 비해 대학 미적분학에서는 연속 정의에서 사용된 논리적 구조와 그 수학적 언어가 이후에 반복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미분 가능성, 적분 가능성, 각종 급수의 수렴성 등 다양한 내용에 대한 논리적인 증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미적분학 교재에서는 그 전체적인 증명 체계를 관통하는 형식적인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이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성을 확보한 ε-δ법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채택하게 만든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사용되는 연속 개념의 정의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일 정도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앞서 지적한대로 그 교육 과정에서 추구하는 전체적인 목표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상이한 정의는 나름대로 그 목표에 부합하는 정당성과 유용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서로 다르게 보이는 정의를 접한 학생들이 그 내용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상당한 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과 많은 경우 그 경험은 수학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데에 있다. 학생들이 경험하는 인식과 이해의 어려움은 연속 개념 정의가 너무나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4.2. ε-δ법 출현의 수학사적 배경


위와 같은 연속의 정의 문제와 그 외의 전체적인 수학 교재의 내용과 체계의 불연속성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은 미적분학의 출현 이후 ε-δ법의 정착까지의 수학의 역사이다. 17세기 말 전통적인 기하학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공략하는 미적분학이 개발된 이후 약 150여 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은 연속이나 극한, 미분과 적분 가능성 등의 미적분학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개념들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노력의 최종 결과물로 제시된 기법이 바로 ε-δ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직관적 이해에서 논리적인 이해로 점진적으로 이행해갔던 과거 수학자들의 노력의 과정을 모델로 삼아 대학의 수학 교육에 적절히 적용한다면, 현재 학생들이 경험하는 동일한 개념에 대한 정의의 ‘불연속성’ 문제를 해소하고 고급 수학에 대한 이해를 높일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초반 기하학적인 대상인 곡선에 대수적 방법을 적용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 해석기하학은 여러 수학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17세기의 수학자들은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제시한 이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여 곡선의 접선 문제와 면적 구하기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창출해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이 뉴턴(Isaac Newton, 1642-1727)과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에 의해 종합되어 미분과 적분의 역연산 관계 규명을 중심으로 하는 미적분학이라는 분야가 17세기 말에 탄생했다. 전통적인 기하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학적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미적분은 그 계산상의 용이성과 넓은 적용 범위로 인해 크게 환영을 받았다.14)

하지만 이러한 환영의 이면에는 비판적인 시각도 동시에 존재했는데, 그것은 미적분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개념들이 모호하다는 점에 대한 비판과 그 기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었다. 논리성을 중시하던 전통적인 기하학자들은 미적분학에서 사용되는 극한, 수렴성, 연속 등의 개념에 대해 논리적 토대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미적분이 계산을 빨리 수행하는 도구로서는 유용할지 모르나 논리적인 사고의 발달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한 미적분학을 옹호하던 수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미적분의 유용성과 편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적분과 관련된 개념들의 논리적 엄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18세기의 수학의 큰 흐름을 형성했으며, 이 과정에는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 라그랑쥬(Joseph-Louis Lagrange, 1736-1813), 코시(Augustin-Louis Cauchy, 1789-1857) 등의 수학자들이 큰 기여를 하였다.


4.2.1. 문제의 발단: 버클리의 비판


미적분학의 개념적인 토대와 그 엄밀성 및 논리에 대한 문제는 뉴턴과 라이프니츠 시대부터 줄곧 제기되어 오던 문제였다.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기하학에 비해 곡선에 관련된 문제를 훨씬 더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미적분학은 그 편리성에 있어서는 칭송받았지만 논리적 엄밀성에 있어서는 초창기부터 의문을 자아냈다. 미적분학의 개발자에 해당하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이 논리적 엄밀성에 대해 그다지 본격적인 해명을 추구하지 않았던 점 역시 비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뉴턴이나 라이프니츠는 대부분의 경우 그 유용성 측면에서 자신들의 창조물에 대해 가치를 강조했을 뿐이었는데, 이는 일면 적절한 해명이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았던 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들의 과학적 방법론 자체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때, 그들 자신도 이러한 비판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묵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뉴턴의 경우 이미 미적분학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1687년에 출판한 ≪프린키피아≫의 초판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미적분이 아닌 기하학을 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프니츠와의 우선권 논쟁을 통해 미적분학의 실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후에 출판된 ≪프린키피아≫의 개정판에서 역시 미적분학을 2부에서 부분적으로만 사용했다. 이는 그 자신이 미적분학의 논리적 엄밀성 결여를 염려하고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시대에 이미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미적분의 논리성 및 엄밀성에 대한 의심이 본격적으로 제시되면서 수학자들에게 이 문제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임을 분명하게 인식시켰던 인물은 영국의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주교였다. 버클리는 1734년에 ≪해석학자(The Analyst)≫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통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해석학자≫ 출판의 발단은 그의 종교적인 신념이었다. 그는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미적분학의 옹호자 중 한명이었던 핼리(Edmond Halley, 1656-1742)가 무신론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무신론이 영국에 매우 위험한 사상임을 피력하기 위해 이 글을 집필했는데, 이 글의 내용 중에서 핼리의 과학관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가 신봉하고 있던 미적분에 대한 비판이 같이 제시되었던 것이다.15)

버클리는 일단 뉴턴이 제안했던 미적분법이었던 유율법(fluxion)의 유용성과 그 방법을 사용해서 얻어진 계산 결과에 대해서는 타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미적분학 혹은 유율법에 대하여 불확실하게 생각한 부분은 그 개념들의 모호함이었다. 버클리는 수학자들이 뉴턴식의 미적분에서 유율을 구하거나 라이프니츠식의 미적분에서 미분 비를 구하는 과정에서 “변수의 증가를 가정하면서 나중에는 그 증가분을 0으로 두고 그 증가분을 제외한다”고 비판했다.16) 또한 그는 이러한 미적분학의 계산 방식에 대해 “과학적인 논의가 아니며 이중의 착오로부터 우연히 진실에 도달한다”고 그 논리성을 비판했다.17) 특히 그는 뉴턴의 유율법에서 거리와 시간의 증가분이 사라져서 의미를 가지지 않는 듯이 보이는 양, 다시 말해 0/0과 같은 값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절대적으로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미적분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유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유율은 증가분이 무한히 작아지는 속도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무한히 작아지는 증가분이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유한한 양도 아니고, 무한히 작은 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0도 아니라고 한다. 이러하다면 이것들을 없어진 양의 망령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18)

   

버클리가 비판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질문은 바로 미적분학의 기초적인 개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는 미적분학이 제시되고 막 사용되었을 당시 그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어려웠으며, 특히 무한히 작은 값에 대한 정의가 어려웠고 이로부터 혼란이 초래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사실 현대 수학 교육에서 극한 개념을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혼란과 정확히 동일하다. 극한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가장 큰 개념상의 혼란은 바로 무한소가 0이라는 것인지 0이 아니라는 것인지에 대한 불명확성이기 때문이다.

수학사적으로 버클리의 비판은 미적분이 처음 제시되었을 무렵의 혼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비판이 여러 수학자들에게 자극을 가하게 되면서 18세기의 여러 수학자들이 미적분의 기본 개념에 대한 엄밀화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버클리의 비판에 대한 가장 첫 대응은 영국의 수학자 맥클로린(Colin Maclaurin, 1698-1746)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맥클로린은 버클리의 이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미분, 즉 유율 계산과 일반식의 관계를 무한 합을 통해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유율론≫이라는 저서를 1742년에 출판했다. 유명한 모든 식을 다항식의 무한합으로 표현하려 했던 맥클로린 급수가 이 결과물 중 하나였는데, 무한급수를 통해 미적분의 기초를 설명하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이 되는 무한소 혹은 유율의 개념과 수학적인 특징이 그에 의해서도 명확히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맥클로린의 시도는 이 문제를 수학적인 방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에 라그랑쥬에 의해 차용되며 미적분학 기본 개념의 엄밀화 과정에서 큰 기여를 할 수학적 기법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출발점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19)


4.2.2. 오일러와 함수의 도입


18세기에 미적분 개념의 엄밀화 과정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던 수학자 중 한 명은 오일러였다. 오일러는 미적분학과 관련된 세 권의 해설서 ≪무한소 해석 입문≫(1748), ≪미분 계산법≫(1755), ≪적분 계산법≫(1768-1770)을 통해 미적분의 적용 가능성을 확대시킴과 동시에 미적분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고 있었던 엄밀한 개념의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미적분의 엄밀화 과정과 관련해서 중요한 저서는 ≪무한소 해석 입문≫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미적분과 관련된 수학적 대상을 ‘함수’라는 용어를 통해 재정립하며, 미적분을 함수에 대한 수학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변하는 양의 함수”를 “변량과 수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된 해석적 식”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정의했다. 오일러의 정의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오일러가 일반적인 다항식뿐만 아니라 지수함수, 삼각함수, 로그함수, 적분함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가지는 수학적 대상을 포괄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였다. 일단 미적분의 대상을 함수로 재정립한 후 오일러는 “모든 함수는 특이점을 제외하고는 무한급수로 표현 가능하다”라는 전제 하에 무한급수를 사용해 함수를 공략하는 방식을 택했다.20)

함수를 무한급수로 바꾸어 공략한다는 오일러의 시도는 미적분의 엄밀성에 대한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는 유율법이나 미분 비를 사용하는 과거의 방법에 모호한 계산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방법들이 비판을 받았다고 판단했으며, 그러한 비판에 대응해 무한 합으로 표현된 함수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사칙연산만을 사용함으로써 엄밀성을 확보하려 시도했던 것이다. 그는 수많은 무한급수에 대한 예를 제시하며 자신의 방식이 타당함을 보이려했다.

하지만 오일러의 방식 역시 두 가지 난점을 안고 있었는데, 먼저 오일러는 모든 함수가 무한급수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사례를 통해 설득하려 했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수학적 증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함수의 무한 합 변환이라는 전제 자체가 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든 계산을 수행하다 보면 무한히 작은 양의 연산과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있었다. 결국 오일러도 무한히 작은 양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라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명해야 했는데, 그는 무한소를 무한대의 역수로 생각해서 계산할 수밖에 없음을 시인했다. 무한히 작은 양인 무한소가 무한대의 역수, 즉 1/∞라는 말은 그 값을 실제 계산 과정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0으로 생각해야 함을 의미했다. 오일러는 “무한히 작은 양이란 실제로는 0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언급은 버클리로부터 제기되었던 무한히 작은 양의 모호성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오일러 역시 계산의 중간 부분에서는 무한소를 0으로 취급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0으로 생각하는 동일한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었다.21)


4.2.3. 달랑베르의 극한을 이용한 무한소 정의


무한급수를 사용한 오일러의 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던 수학자 중 한 명은 프랑스의 달랑베르였다. 그는 오일러가 논의 방식 중 모든 함수가 무한급수로 표현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 외에도 오일러가 발산하는 급수를 사용한 점이 비록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오일러가 무한소를 모호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대안으로서 극한을 사용해서 무한히 작은 양을 정의해야 함을 역설했다. 달랑베르는 자신이 편집한 ≪백과전서≫의 ‘미분’에 대한 항목에서 “방정식을 미분한다는 것은 이 방정식에 포함되어 있는 변수들의 변화 비율의 극한을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극한 개념을 사용해 미적분을 재정립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오일러의 모호한 무한소 개념에 대해 비판하며 “어떠한 양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는 없다.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문자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중간적인 태도가 있다는 가정(즉 0일수도 있고, 0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은 기괴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22)

달랑베르는 ≪백과전서≫에서 ‘극한’에 대해 “첫 번째 양에 대해 두 번째 양이 전혀 일치하는 일이 없이 주어진 어떠한 양보다도 가까이 갈 수 있을 때 첫 번째 양을 두 번째 양의의 극한이라 한다”고 정의했으며, 이에 기반을 두고 미적분의 개념들을 재정립하려고 시도했다.23) 하지만 그의 극한에 대한 정의 역시 당대의 수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었으며, 게다가 그가 이러한 내용에 입각해서 미적분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달랑베르의 주장은 당시에는 큰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두  양 사이에 거리 개념을 도입하여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달랑베르의 주장은 후에 코시에 의해 채택되어 미적분학의 엄밀화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4.2.4. 코시의 ε-δ법


오일러와 달랑베르, 그리고 라그랑쥬로 대표되는 18세기의 미적분학의 논리성과 엄밀성 확보 작업은 19세기 초까지도 이어진다. 18세기의 성과들은 특정한 기법이나 개념과 관련해서는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지만 미적분과 관련된 전체적인 논리적 구조를 제시하지는 못한 상태였고,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19세기 초의 수학자들은 미적분학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 체계를 개발하는 시도를 지속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830년대에 프랑스 수학자 코시는 수학적 논의에서 부분적으로 채택되어 사용되던 ε-δ법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극한, 연속 등에 대한 정의를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미적분의 전체적인 증명을 모두 ε-δ법을 사용해서 제시하는 새로운 전통의 문을 열었다.

코시는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에콜 폴리테크닉의 해석학 강좌≫, ≪무한소 해석 강의 요강≫, ≪미분학 강의≫와 같은 수학 교재로 정리하면서 무한소를 ‘무한히 작은 수’로 인식하는 오일러의 방식을 탈피하였다. 대신 코시는 극한으로 정의하는 달랑베르의 방식을 채택하여 이에 대해 이론적인 엄밀성을 부여했다. 그는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극한을 “하나의 변수가 연속적으로 값을 취하면서 일정한 값에 한없이 가까이 가고 마지막에 일정한 값과 차이가 원하는 만큼 작게 될 때 그 변수의 마지막 값을 극한이라 한다”고 비교적 명징하게 정의했다. 이 정의에서 코시는 달랑베르가 사용했던 가까이 간다는 거리 개념을 채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극한 개념을 바탕으로 코시는 무한소를 “어떤 변량이 취하는 값이 극한값 0에 수렴하도록 한없이 작아질 때 그 변량은 무한히 작아진다고 한다”고 정의했다.24) 무한히 작은 양, 즉 무한소의 개념을 극한의 수렴성에 바탕해서 정의함으로써 그것이 0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셈이고, 코시는  이를 통해 약 150여 년에 걸쳐 논란이 되었던 개념의 명확한 이해에 한걸음 더 나아갔던 것이다.

한편 코시는 이러한 극한과 무한소에 대한 정의와 그것에 사용했던 거리의 개념을 바탕으로 연속과 미분 가능에 대한 정의도 재구성했다. 그는 연속함수에 대해 “주어진 범위 안에서 변수 x의 무한히 작은 증가분 i에 의해 언제나 함수 f(x)의 값에 무한히 작은 증가분 f(x+i)-f(x)의 변화가 생길 때 그 함수 f(x)는 연속이다”고 정의하며 변수와 함수 값에 모두 무한소 개념을 채용해 연속 개념을 제시했다.25) 이러한 코시의 정의는 말로 표현된 부분을 적절하게 문자로 바꾸게 되면 현재 대학교 교재에서 제시되고 있는 ε-δ법과 정확하게 동등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코시는 ε-δ법을 이용한 정의를 적분에까지 확장했다. 그는 적분 역시도 거리를 사용한 개념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당시까지 문제가 되고 있던 미적분에 있어서의 심각한 난제를 해결하고 적분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8세기까지 미분과 적분은 역연산 관계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고에 입각하면 적분과 미분은 동치성이 확보되어야 했다. 즉 미분이 가능하면 적분도 가능하고, 적분이 가능하면 미분도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대에 이미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함수가 불연속인 점에서 미분은 불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정적분은 가능했다. 코시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입각해서 더 이상 적분을 미분의 역연산으로 정의하지 않고 정적분을 적분합의 극한으로 정의함으로써 적분론을 미분과 관계는 있지만 독립적인 분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코시의 ε-δ법은 미분과 적분, 극한 등 함수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수학적으로 엄밀하면서도 적용가능성이 큰 방식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현재까지 미적분학 및 해석학의 기본적인 증명방법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5. 맺음말: ε-δ법의 사례를 통해 본 수학사 적용의 효과


ε-δ 법의 출현은 미적분 출현 이후 약 150년에 걸친 ‘연속적’인 수학적 사고의 변화와 발전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는 수학적 개념의 단계적 학습의 필요성을 시사해 주고 있으며, 실제 수학 교육에서 역시 이러한 단계적 사고의 변화 과정이 반영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 발생적 교육 방식이 적용될 경우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학생들이 겪게 되는 새로운 수학적 개념들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역사적 발생과정을 통한 교육은 미적분과 관련된 여러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는 점을 인식시킴으로써 자신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일면 당연한 것임을 자각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생소한 개념 및 그 개념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수학적 능력만을 탓하며 수학을 포기해 버리는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둘째로 함수, 극한 등의 개념이 ε-δ법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제안된 부수적인 개념임을 인식시킴으로써 ε-δ법의 수학적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ε-δ법을 증명을 위한 도구로만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해서 여러 중요한 수학적 개념 및 방법들이 개발되었음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ε-δ법 자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게 되는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ε-δ법과 같은 방식이 왜 현대 수학을 관통하는 증명의 패러다임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만듦으로써 현대 수학의 전체적인 조망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코시에 의해서 제안된 ε-δ법이 수학자들에게 가장 엄밀하고 절절한 증명방식으로 채택된 데에는 그것이 미분이나 연속, 극한을 넘어서서 적분론 등의 다른 분야의 발전까지 연관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ε-δ법이 제안된 후의 적분론의 독자적 발전 과정, 그리고 ε-δ법을 사용한 거리 공간론과 위상 수학의 발전, 마지막으로 집합론의 해석학적 재해석 등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이해는 학생들로 하여금 ε-δ법이 왜 현대 수학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현대 수학의 체계와 그 전체적인 흐름을 조감하는 능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The Problem of Discontinuous Method of Mathematical Teaching: A Case on Concept of Continuity


JUNG Won (Chonbuk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Combining history of mathematics with mathematical education is one of broadly discussed topics of mathematical education. Since the stages of development of students’ mathematical notion resemble the historical introduction of new mathematical ideas, the potential effectiveness of integrating history with classroom education is very large. This article surveys some efforts to apply history of mathematics to education and suggests one possible topic which can be adapted in university mathematics class. Many students who major in natural science or engineering in Korea have a difficulty in understanding university mathematics. One of the reasons which causes such a difficulty is the introducing whole new method never used in high school mathematics class. That method is so called ε-δ method. This article shows that ε-δ method came to be used through long and hard efforts of the 17th, 18th and 19th century mathematicians who wanted to establish rigor in calculus and the main figures were Euler, d’Alembert, and Cauchy. Also this article asserts that explaining historical development of ε-δ method will help students overcoming difficulties due to discontinuous method of mathematical teaching.


Key words. mathematical teaching, history of mathematics, ε-δ method, Cauchy




투고 2014년 2월 9일, 심사 2014년 2월 20일. 게재확정 2014년 2월 20일.

1) 수학의 논리적 명징성을 강조했던 인물 중 한 명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이 경험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 아님은 인정했지만, 반대로 수학을 가장 확실하고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칭송하며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과학혁명기에 수학의 지위가 상승되는 과정에 있어서 논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Peter Dear, Discipline and Experience: The Mathematical Way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chaps. 1-2.

2) 고지흡, 곽시종, ≪한국 수학 교육 및 연구의 문제점과 정책적 대응방안≫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00), 7-11쪽.

3) 우정호, ≪학교수학의 교육적 기초≫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1-2쪽.

4) 김정환, “페스탈로치의 수학교육원론 연구”, ≪벽계 이인기 박사 고희 기념 교육학 논집≫ (1976).

5) 우정호, ≪학교수학의 교육적 기초≫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1-13쪽.

6) 우정호, ≪학교수학의 교육적 기초≫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26-27쪽.

7) 칼 보이어, 유타 메르츠바흐 지음, 양영오, 조윤동 옮김, ≪수학의 역사≫ (경문사, 2000), 891-896쪽.

8) 김수환, “새수학 이후의 세계적인 교육과정 개혁의 흐름과 최근 동향”, ≪한국수학교육학회≫ 35-1 (1996), 25-32쪽.

9) John Fauvel, “Using History in Mathematics Education,” For the Learning of Mathematics 11-2 (1991), pp. 3-6; Hans Freudenthal, “Major Problems of Mathematics Education,” Educational Studies in Mathematics 12-2 (1981), pp. 133-150.

10) 세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집단은 수학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집단이다. 대한수학교육학회에서는 수학교육과 관련된 학술지 두 종을 발간하고 있으며, 그 명칭은 각각 ≪수학교육학연구≫와 ≪학교수학≫이다. 수학교육학자들의 집단에서는 학교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수학사를 학교 수학교육에 적용하려는 데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두 학술지 전체에서 수학사를 주제어로 담고 있는 논문은 단 5편에 불과하며, 그것도 2003년 이후에만 출판되었다.

11) 김선희, “수학사에 근거한 수학 영재의 창의적 산출물 평가 준거 개발”, ≪한국수학사학회지≫ 18-2 (2005), 75-94쪽; 김성준, “역사-발생적 분석을 통한 대수 지도”, ≪한국수학사학회지≫ 18-3 (2005), 91-106쪽.

12) “수학문화원소개”, http://www.mathculture.kr (2014. 2. 5 접속).

13) “The International Study Group on the Relations between the History and Pedagogy of Mathematics,” http://www.clab.edc.uoc.gr/hpm (2014. 2. 5 접속).

14) Ivor Grattan-Guinness, ed., From the Calculus to Set Theory, 1630-1910: An Introduction Hist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chap. 1.

15) G. N. Cantor, “Berkeley's The Analyst Revisited,” Isis 75-4 (1984), pp. 668-684.

16) George Berkeley, The Analyst, or a Discourse Addressed to an Infidel Mathematician (1754), p. 25.

17) Berkeley, The Analyst, p. 34.

18) 보이어, 메르츠바흐, ≪수학의 역사≫, 702쪽에서 재인용.

19) Judith V. Grabiner, “Was Newton’s Calculus a Dead End? The Continental Influence of Maclaurin’s Treatise of Fluxions”, Glen Van Brummelen and Michael Kinyon, eds., Mathematics and the Historian’s Craft (New York: Springer, 2005), chap. 4.

20) Victor J. Katz A History of Mathematics: An Introduction (New York: HarperCollins College Publishers, 1993), Chap. 13.2.

21) 보이어, 메르츠바흐, ≪수학의 역사≫, 728-729쪽.

22) 보이어, 메르츠바흐, ≪수학의 역사≫, 728-729쪽에서 재인용.

23) Israel Kleiner, “History of the Infinitely Small and the Infinitely Large in Calculus,”  Educational Studies in Mathematics 48 (2001), pp 137-174.

24) Judith V. Grabiner, "Who Gave You the Epsilon? Cauchy and the Origins of Rigorous Calculus", Marlow Anderson, Victor Katz, Robin Wilson, eds., Who Gave You the Epsilon?: And Other Tales of Mathematical History (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 2009), p. 5에서 재인용.

25) Katz, A History of Mathematics, Cha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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