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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1권 제1호 (2019), 33-37

기획: 전쟁과 과학기술

by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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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전쟁과 과학 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고 있다. 1 세계 대전은 화학자들의 전쟁이었고 2 세계 대전은 물리학자들의 전쟁이었다. 1 세계 대전에서는 비행기와 독가스, 유보트가 전쟁을 이끈 새로운 군사 무기였고, 2 세계 대전에서는 원자폭탄과 레이더가 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1 세계 대전이 휩쓸어 구시대의 세계 속에서 고전 물리학의 세계는 함께 사라지고, 1 세계 대전 속에서 자란 신세대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양자역학과 상대론의 새로운 세계가 굳건히 펼쳐졌다. 전쟁은 과학의 국제 판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학 혁명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유럽의 주도권은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유럽 과학계에 퍼져 있던 국제주의의 쇠퇴, 이상 유럽 과학계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는 미국 과학계의 자각과 자신감, 독일 유태인 과학자들의 미국으로의 이주, 전쟁이 모든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 시대 과학 연구 방식의 변화, 정부의 과학 기술 정책의 변화, 거대 과학도 전쟁이 가져온 변화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전쟁과 과학 기술의 상호 영향 관계에는 관심이 있지만 전쟁 중에 과학 기술이 사용된 방식에 대해서는 그만큼 알지 못한다. 원자폭탄이나 레이더 같은 몇몇 최첨단 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알지만, 다른 전쟁 무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지하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놀라울 만큼 성실한 정보 축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전쟁 무기의 발전과 같은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첨단 기술에 주목하다 보니, 전쟁 수행에 필요한 수많은 다른 종류의 오래된 과학 기술들, 전쟁 물자의 유지 관리에 대한 과학 기술들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열대 지방에서의 효과적인 전투 수행을 위해 최첨단 살충제 DDT 가져온 데는 주목했지만, 열대의 모기나 벌레가 병사들을 괴롭히는 만큼이나 열대의 곰팡이가 망원경을, 전자 장비를 괴롭혔고 이를 방지ㆍ관리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는 점은 간과했다. 그뿐이랴.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를 생각할 우리는 특정한 몇몇의 전쟁, 그것도 20세기의 전쟁에 집중해 왔다. 전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들, 전쟁에서 사용된 과학 기술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그동안 과학사 학자들은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매우 좁은 시야에서 다루어 왔다. 전쟁에서 과학 기술이 담당하는 중요성은 이상 설명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서 전쟁과 과학 기술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폭넓게 다루지 않아 왔던 것은 과학사에서의 오래된 문제의식이 전쟁이 함축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 방향은 바로 과학과 민주주의의 상보적인 관계였다. 합리적인 토론, 건설적인 비판, 건강한 회의주의와 같은 과학자들의 문화와 민주주의, 시민사회를 연결 지으려는 시도들, 과학과 민주주의가 같은 토양에서 자랄 있다는 믿음들, 이런 것들은 계몽주의를 통해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뉴턴 주의 과학에 관심 갖게 했으며 뉴턴의 과학이 나온 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과학과 민주주의의 건설적 관계 속에 전쟁이 들어갈 자리는 마땅치 않아 보였다.

또한 전쟁이 내포하고 있는 강제성, 통제 등의 이미지는 건강한 과학의 조건으로 여겨지는 과학계의 자율성, 과학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연구 주제의 선택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과학 기술과 과학 기술자가 어떤 역할을 맡았으며 어떻게 연구를 진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그에 비해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전후의 과학 기술에 미친 영향, 특히 2 세계 대전이 전후의 과학 기술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는 전쟁과 냉전의 특수 상황이 과학계의 자율성과 과학자의 자유로운 연구를 침해하고 이를 통제해 나갔는가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번 호에 실린전쟁과 과학 기술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대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좁게 초점이 맞춰져 왔던 과학사의 시야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특히 이번 기획에서는 전쟁의 실제 현장에서 과학 기술의 모습을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목표에 따라 여기 실린 편의 논문들은 시대와 지역ㆍ분야를 달리하며 전쟁에서 과학 기술이 사용된 다양한 양상, 전쟁의 과학 기술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 그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방식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수학자 시몬 스테빈(Simon Stevin, 1548-1920) 전쟁 관련 저술들을 다룬 정원의 논문은 시대와 지역의 측면에서 전쟁과 과학 기술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전쟁과 과학 기술에 대한 연구들이 주로 12 세계 대전과 같은 20세기의 전쟁에 초점이 맞춰져 왔던 것에서 탈피하여 정원의 논문은 17세기 네덜란드로 전쟁터의 시간과 장소를 옮겨 놓는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전쟁 속에서 우리는 성채를 효과적으로 포위ㆍ공격하고 효율적으로 병영을 배치하는 일이 당시의 전쟁에서 차지했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정원의 논문은 그것이 다루는 과학 분야의 측면에서도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정원의 연구는 근대 수학자들이 그들의 수학적 지식을 어떻게 실전에 사용했는가를 스테빈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스테빈의 이상적인 성채의 모양새와 성채를 둘러싼 완벽한 포위망, 질서 잡힌 병영의 배치법, 대칭적인 성벽의 그림에서 우리는 수학적 대칭과 기하학적 구조를 읽어낼 있고 입체를 평면으로 투사하여 표현하는 수학적 기술을 찾아낼 있다. 이렇게 정원의 연구는 기하학이라는 분야가 어떻게 전쟁의 과학 기술로 적용될 있는가의 문제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면서, 크게는 동시대에 일어난 과학 혁명과 군사 혁명의 연결 지점을 스테빈을 통해 보여준다.

정세권은 1 세계 대전 질병이 창궐하는 유럽의 전쟁터로 우리를 초대하여 전쟁 과학 기술 수행의 주체들, 그들의 참여 방식, 연구 양상의 다양성을 드러내 준다. 정세권은 하버드 대학의 열대 의학 학과장이었던 리처드 피어슨 스트롱(Richard Pearson Strong, 1872-1948) 중심으로 1 세계 대전 시기 미국이 유럽에서 펼쳤던 공중 보건 활동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스트롱이라는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음에도 활동은 미국의 참전 여부에 따라, 참여한 단체의 성격에 따라, 구호 활동의 목적에 따라, 그리고 대상이 되는 질병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민간인까지 퍼진 세르비아의 발진티 푸스, 군인들이 타깃이 프랑스의 참호열, 이런 차이가 공중 보건에서 구호와 의학 연구의 차이로 나타났으며, 미국의 정치적 위치의 차이가 적십자사와 록펠러 재단 같은 민간 단체와 군대식으로 조직된 참호열 연구 위원회의 상이한 활동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정세권은 전쟁 중에 이루어지는 과학 기술 활동의 성격이 균일하지 않으며 다양한 주체와 실행들이 얽혀서 일어나는 활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세권의 논문은 이미 과학적으로 규명되어 있는 전염병의 대대적 확산을 막기 위해 다중 이용 시설 소독과 위생 환경을 개선하는 구호 활동부터, 인체 실험을 통해 참호열의 원인과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과학적 연구까지, 이질적인 과학기술 활동이 모두 전쟁 중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 활동의 주체나 주요 목적은 조금씩 상이했지만, 지난 수십 동안 대외적으로 팽창을 꾀했던 미국이 1 세계 대전을 통해 암묵적으로 추구했던 전략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전쟁 이후에도 이런 성격의 공중보건 활동은 지속되었다. 정세권의 논문은 전쟁 미국의 공중 보건 활동이 단일한 성격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쟁을 전후한 미국의 대외 팽창과 공중 보건 활동의 관계를 이해할 있는 단초도 제공해준다.

박민아의 논문은 2 세계 대전 당시 미국 과학 연구 개발국(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OSRD, 1941-1947) 산하의 국방 연구 위원회(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 NDRC)에서 이루어진 광학 연구를 통해 전시 연구 개발 활동에서 산업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박민아의 논문은 2 세계 대전 전시 연구에서 기초 과학의 역할이 강조되어 왔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체의 역할에 대한 조망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민아는 NDRC 16, 17분과에서 이루어진 광학 연구 주제의 성격과 산업체와 대학 사이의 역할 분담 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시 연구에서의 혁신 연구에 대한 강조 연구 개발의 선형 모델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박민아의 연구는 산업체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전시 연구와 평화시 연구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산업체에서 평화시에 이루어지던 연구가 전시 연구 개발에 유입되는 모습을 통해 연구는 기초 과학을 중심으로 전시 연구를 보았을 가려져 있던 전시 연구의 다른 면모를 드러내 준다.

여기 실린 편의 논문들은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대해 단일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은 시대와 장소, 다루는 과학 분야, 과학 실행의 주체, 실행의 방식 등에서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논문들 간에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들을 보임으로써 과학사에서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논문의 가장 기획 의도라고 있다. 연구들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 전쟁과 과학 기술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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