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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39권 제3호 (2017), 501-504

[서평] 브뤼노 라투르, 황희숙 옮김, 젊은 과학의 전선: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 (아카넷, 2016), 532쪽

by 성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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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브뤼노 라투르, 황희숙 옮김, 『젊은 과학의 전선: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 (아카넷, 2016), 532쪽

성한아 (서울대학교, ha.sung513@gmail.com)

과학기술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인 브뤼노 라투르의 Science in Action: How to Follow Scientists and Engineers Through Society(이하 Science in Action)의 한국어 번역본 『젊은 과학의 전선: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이하 『젊은 과학의 전선』)이 출간됐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 사회학자 스티브 울가와 함께 집필한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로 인류학적인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험실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1] 이후 그가 과학기술학 분야의 저명 학자인 존 로, 미셸 깔롱과 함께 제안한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과학기술학 분야를 넘어 인문사회학계 전반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의 수많은 저서들 중에서도 Science in Action은 그간 과학기술학 전공자들에게 일종의 교과서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책으로, 한국어 번역본 출간은 그 누구보다 과학기술학 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젊은 과학의 전선』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후 두 번째로 한국어로 번역된 라투르의 단독 저서로, 그간 몇몇 개론서들과 단편적인 논문들로만 라투르를 접해 온 독자들에게는 그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학의 연구 방법을 서문과 6개의 장에 걸쳐 소개하는 방식으로 꾸려져 있다. 라투르는 서문에서 이 책이 “‘과학기술과 사회(STS)’라는 일반적 라벨로 분류”되는 이들의 활동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방법들을 요약해서 “공통되는 토대”를 묘사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41). “How to follow scientists and engineers through society”라는 원서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현대 사회의 과학과 기술(라투르는 이를 ‘테크노사이언스’라고 부른다)을 과학기술학이 어떤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는지를 정리한 본격적인 방법론 교과서를 표방한다. 친절하게 이 책의 말미에는 전 장을 걸쳐 소개한 7개의 “방법의 규칙(rules of method)”과 6개의 “원칙(principles)”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규칙과 원칙들은 서문과 3부에 나뉘어 각각 2장씩 총 6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데, 1부의 논문(1장)과 실험실(2장)에서부터 과학자를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 in the making)’을 따라가다 보면 집합적 지식 활동으로서 지속적인 확장의 노력 끝에야 비로소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여타의 사회 활동들만큼이나 ‘사회적’인 과학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1부에서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따라 논문으로부터 실험실로 걸어 들어간 우리는 과학 활동이 꼭 인간만 관여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고, 2부에서는 ‘과학하는’ 이들이 과학자와 엔지니어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과학적 사실이 실험실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과학하는’ 행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Science in Action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독자들은 서문에서부터 6장에 이르는 동안 무척이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활동으로서의 과학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생생한 과학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한 7개의 방법의 규칙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첫 번째 규칙을 꼽을 수 있다. 라투르는 첫 번째 규칙을 “우리는 활성 상태의(만들어지고 있는, in action) 과학을 연구하며 기성 과학이나 기술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사실과 장치가 블랙박스로 닫히기 전에 도래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다시 개봉하는 논쟁들을 쫓는다(507).”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주로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놓인 과학을 연구 대상으로 했던 초창기 과학기술학의 연구 경향을 떠오르게 한다.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놓인 과학을 따라 연구를 시작하는 방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장 고전적인 연구 방법 중 하나이며, 이는 라투르가 서문에서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지적했던 “타이밍 감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13).

그러나 그간의 과학기술학 연구들이 꼭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선 과학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온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학 연구는 눈에 잘 띠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기술의 연결망들을 드러내 조명하고 이를 문제화해왔으며, 때로는 그 연구 자체로 새로운 논쟁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첫 번째 규칙에서 지칭했던 ‘활성 상태’의 과학이란 블랙박스화된 ‘기성 과학’ 조차도 언제든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과학기술학적 “감각”에 의해 비로소 연구 대상이 된 과학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달리 말해서, 라투르가 지적한 “타이밍 감각”이란 안정화되기 전(前) 상태에서 논쟁 중인 과학만을 찾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감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늙은 과학’ 혹은 ‘기성 과학(ready made science)’조차도 ‘젊은 과학’ 혹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 in the making)’으로 ‘활성화(in action)’시킨 상태로 연구할 수 있는, 즉 과학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의 지적 감각을 의미한다. 과학기술학적 방법론 교과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야누스의 왼쪽 얼굴을 한 과학을 맞닥뜨리더라도, 오른쪽의 젊은 얼굴로 바라보는 일종의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옮긴이가 이 책의 제목으로 “젊은 과학의 전선”이라는 번역을 선택한 점은 흥미롭다. 이 번역은 옮긴이가 해제에서 밝혔듯이 군사적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라투르의 의도를 반영했을 뿐 아니라, ‘늙은 과학(기성 과학)’을 언제든 논쟁적인 ‘젊은 과학’으로 연구할 수 있기를 제안하는 원저자의 의도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다만,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독자에게 “늙은” 과학으로 나아가는 어떤 전(前)단계로 오해될 경우, 과학이나 기술이라는 기존 용어로도 다 담을 수 없어 ‘테크노사이언스’라는 용어를 도입해 과학 활동을 완전히 새롭게 서술하려했던 원저자의 의도를 벗어날 수도 있다. 서문에서 라투르가 지적했던 과학과 기술 연구를 위한 “타이밍 감각”이란 과학 활동에 대해 일련의 라이프 사이클을 전제하고 그 중 초창기의 과학을 조명하는 데 있기보다는, 과학 활동을 언제나 (비인간을 포함한) 집합적인 힘겨루기에 따라 안정화되고, 다시 해체될 수 있는 역동성을 지닌 대상인 ‘테크노사이언스’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감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관한 옮긴이의 고심을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은 “한국 연구재단 총서 학술 명저 번역 시리즈”의 일환으로 번역됐다. 읽기에 어색하지 않고, 옮긴이 스스로도 지적했듯이 필요한 경우 원문의 단어를 함께 표기했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한편 행위자-연결망 이론이 이미 여러 해 전 국내 학계에 소개됐지만 이론의 핵심 용어들 대부분이 과학기술학 바깥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낯선 용어라는 점 때문에 이에 대한 통일된 번역어를 합의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center of calculation,” “obligatory passage point,” “immutable mobile”처럼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옮긴이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옮긴이 해제에서 핵심 용어마다 해당 번역어를 선택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짚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들 대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용어들을 활용하려는 연구자들에게 이 부분은 특히 큰 참고가 될 것이다.


[1] Bruno Latour and Steve Woolgar, Laboratory life: The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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