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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39권 제3호 (2017), 493-499

[비평논문] 과학사의 사회적 이용과 유전학의 사회적 이용 사이에서

by 이두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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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의 사회적 이용과 유전학의 사회적 이용 사이에서

이두갑 (서울대학교, doogab@snu.ac.kr)

싯다르타 무케르지, 이한음 옮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까치, 2017), 685쪽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의 저자 싯다르타 무케르지(Siddhartha Mukherjee)는 이미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라는 책으로 2011년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대중 의학서 출판계의 일약 스타로 떠오른 의사이다. 이 전작은 암 전문의로서의 그의 개인적 임상 경험과 암에 대한 과학사적․의학사적 연구를 드라마틱하게 엮어내어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는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이야기와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학자․의학자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로 포장되어 TV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의 책은 암이라는 질병의 실체뿐만이 아니라, 이를 정복하기 위해 현대 생의학의 이론들과 임상 실행들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병원과 의료 체계, 의학자의 정체성들이 어떻게 현대화되었는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며, 현대 의학사와 생물학사의 중요한 변화들을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은 무케르지의 이 책이 기존의 과학사․의학사 연구들을 선별적으로, 그리고 정확한 인용도 없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감동적인 의학 드라마 만들기에 초점을 두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1] 

본 저서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유전병으로 고통받아온 저자의 내밀한(intimate) 가족사를 그 한 축으로 하고, 유전학, 특히 의료 유전학(medical genetics)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을 다른 한 축으로 엮어내며 유전자 탐구의 역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조현병이라는 정신 질환에 걸린 삼촌과 사촌형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19세기 이래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어떻게 유전자를 통해 질병의 발병과 전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살펴본다. 우선 무케르지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유전자를 통해 생명과 유전, 그리고 발달과 질병을 이해하기 시작했는지, 즉 유전학의 기원에 대해 탐구한다. 이는 쉽지 않은 역사적 시도이다. 무엇보다 유전자란 무엇이고,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등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과학자들의 답변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는 것이다.

무케르지는 이러한 질문이 가지는 역사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유전자에 대한 질문은 생물학적 정보에 대한 규명이라는 과학적인 탐구에 관한 것이었다고 정의한다. 무엇보다 유전학이 우리 몸 안의 어떠한 근본적인 존재가 생명의 탄생과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다시 말하면 유전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는 시도들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는 부모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아 이들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는가?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질서정연한 발달 과정을 거쳐 한 명의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가? 인간의 생물학적 탄생과 유전, 발전에 관여하는 근본적인 물질, 즉 우리의 생명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란 무엇인가?

유전학이라는 학문이 유전자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다시 말하면 “유전 단위”의 정립과 그 전달의 패턴 찾기라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그의 시각에 따르면, 19세기 수도사이자 생물학자였던 멘델은 생물 정보의 전달에 과학적 패턴이 있을 것이라는 유전학적 사고를 통계적으로 입증하려던 인물이었으며, 동시대 생물학자 다윈 역시 우리 몸 안에 있는 제뮬(gemule)이라는 특정한 “유전 단위” 물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생명종의 다양성과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라 주장한 유전학자의 시조 격 인물이다. 20세기 초에는 유전자라는 존재의 생물학적 실체가 점차 과학화되면서, 유전자(gene)라는 단어와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는 생명 정보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조작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우수한 인종에 관한 학문”인 우생학(eugenics)의 등장과 그 실패가, 유전학의 힘과 그 오용에 관한 초기 경고이자 교훈을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한다.   

무케르지는 20세기 유전학의 역사 또한 환원적이고 실험적인 차원에서 유전자의 존재를 정립하고, 이를 조작하고자 했던 성공적인 시도들의 역사로 서술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유전자라는 것이 염색체에 존재하는 구체적 화합물이라는 것을 밝히며 그 물질적 존재를 정립했던 모건(Thomas Morgan), 유전 물질 DNA의 화학적 구조를 밝힌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의 성취를 논의하고 있다. 그는 또한 어떻게 현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를 그 근본 축으로 놓고 분자적인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생명 현상을 이해해 왔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분자적 수준에서 유전 정보의 조절과 개체 발달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지닌 생물학적 정보를 조작하고 새로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기술적 성취를 이룩한다. 그는 유전 공학(genetic engineering)과 유전체학(genomics)이라는 20세기의 새로운 유전학은 생명 공학이라는 거대 생의학 산업의 탄생을 낳았으며, 이것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미래의 의학을 변화시킬 것인지 서술하고 있다. 보다 중요하게 그는 유전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생명 공학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함의를 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논의가 보다 폭넓고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촉구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이렇듯 무케르지의 책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생물학적 질문과 이의 탐구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생명과 인간을 이해하고, 그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생물학적 미래를 조작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중 과학사 책으로서 이 책을 평가하자면, 이 책은 19-20세기 유전학의 다양한 변화들을 역사적으로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에 수반되는 방대한 과학적 개념들과 그 변화 또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학의 역사를 대중에게 간결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설명해 주려는 무케르지의 시도로 인해 이 책에서 논의되는 유전학의 역사는 종종 현대 유전학의 성과와 혁신들의 기원을 보여주려는 목적론적 서사의 근거로 사용된다는 문제점들이 보인다. 이에 과거의 실험들은 현재 과학적 이해를 위한 도구로만 제시될 뿐이며, 과거의 개념들은 현재 과학적 이해에 올바른 방식으로 기여하거나, 그렇지 못했다면 잘못된 과학으로 치부될 뿐이다. 유전학의 진보 과정에서 개념적 혼란과 오류들은 다음 세대에 극복되어야 할 무엇으로만 제시된다.

과학사 학자들은 유전학의 역사에 대한 무케르지의 서술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박민아는 과학사 학자들과 대중 과학사 저술가들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근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종 그들의 저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로 인해 나타나는 역사적 증거와 설명, 서술 방식에 대한 다른 이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2] 우선 과학사 학자인 평자의 입장에서 무르케지의 서술은 무엇보다 응용된 역사학의 여러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책의 논의들은 실제 과학적 발전의 과정을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대한 여러 발견의 과정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른 차원의 질문과 탐구에서 기원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일례로 무케르지가 멘델을 고립된 유전학의 기원자로 서술하는 것은 멘델이 당시 유럽 전역의 육종과 농업 문제를 유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네트워크 하에서 작업했다는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한 것과 같은 유전에 대한 멘델의 ‘단절적’ 이해가 당시 일반 생물학자들의 이해 방식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를 드러내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다윈이 동시대 멘델의 논문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과학사적 손실이었는지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19세기 말 유전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미 그 접근과 개념이 상이해 아마 다윈이 멘델의 논문을 읽었더라도 유전학의 발전에는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멘델에 대한 무케르지의 이러한 서술은 멘델 이후 유전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이를 밝혀낸 실험의 고안들이 뜻하지 않은 좌절과 개념적 전환, 발견들을 겪은 후에야 가능했음을 간과한다는 더 큰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후반 생명 과학의 발전을 유전자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그의 서술은, 과학적 발견과 그 함의에 대한 그의 야심찬 논의가 현대 유전학의 발견과 그 함의들을 과학적으로 큰 오류 없이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1960년대 후반 분자 생물학의 여러 발견들, 특히 발달 생물학에서의 모계 인자들의 역할이나 후생 유전학(epigenetics) 등은 생명 현상에 있어서 유전자의 역할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가 급격하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저명한 생물학자 에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가 지적했듯이,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이 생명 현상을 유전자의 행동(gene action)에 기초해 이해하려는 환원론적이고 기계적인 접근법을 취했다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러한 담론은 많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과학자들은 다양한 환경과 세포 인자들이 유전자를 작동시키는 유전자 활성(gene activation) 담론에 기반을 두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켈러에 의하면 이러한 20세기 중후반 생명 과학의 역사를 유전자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20세기 후반 이후 생명 과학의 응용과 그 사회적, 윤리적 함의에 대한 논의를 오도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3]

무케르지의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에서도 이러한 유전자 중심의 역사 서술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 저서에서 그는 20세기 후반 발생 생물학과 후생 유전학의 발전들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혼란과 과장, 그리고 오류에 찬 주장으로 현대 생물학에서의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대중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 후생 유전학에 대한 그의 찬양 일색의 서술은 환경이 각 개체의 세포에 각인되어 전달된다는 과장으로 이어지며,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상기시키는 혼돈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미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러한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무케르지는 여전히 환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인간 질병의 이해와 치료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하며, 유전자 치료(gene therapy)에 대해 밝은 전망을 제시하려 시도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 치료의 실패 사례들에 대한 그의 평가, 특히 제시 젤싱어(Jesse Gelsinger) 치료 실패 사례를 단순한 실수와 불운의 산물로 보는 그의 서술은 기존의 생명 윤리학 연구들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 치료의 위험과 이득에 대한, 그리고 생명 공학 규제와 생명 윤리 논의의 중요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져다 줄 우려가 있다.

무케르지는 유전학의 역사가 개인적으로 내밀할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이 개인을 넘어 집단의 건강과 질병을, 그 정상과 병리를 다루려는 시도였음을 지적하며 그 역사의 사회적 함의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전학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그의 역사적 서술이 20세기 초중반, 특히 이미 명확한 도덕적 평가가 내려진 나치의 우생학에 대한 것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특히 그의 책이 후반부에서 유전학이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넘어 유전 공학 기술로 변혁을 겪었음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그는 1970년대 DNA 재조합 기술의 발전과 유전체 염기 분석 및 유전자 지도 작성을 통한 유전 공학의 발전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 역사적 과정에서의 주요 인물들과 개념들의 변화 또한 대중에게 쉽고 유려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재조합 유전자 기술의 안정성을 둘러싼 아실로마 회의(Asilomar Conference)에 대해서도 서술하며, 새로운 기술의 위험과 이득을 균형 있게 논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생명의 이해에서 생명의 조작에 이르는 최근의 유전자 편집 기술(genome editing technologies)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의 기술적 성취를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이에 수반되어 나타난 유전 공학 기술의 사회, 윤리적 쟁점에 대한 논의를 그 위험의 차원으로 환원시킨 점은 그의 책이 대중서로서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무케르지는 대중에게 현대 유전학이 생명과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의 이러한 성취가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어떠한 함의를 주고 있는지를 보다 생생하게 논의하기 위해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과 상호 작용한 임상 경험들과 함께 자신의 가족력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접근은 과학사적 서술과 의사로서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유전학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중요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을 위한 값싼 극적 장치로서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무케르지는 현대 유전학을 둘러싸고 과학자들, 정책 입안가들, 대중들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본 저서를 기획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분리 ·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책 입안가들은 각 행위자들 간의 관계와 상호 작용을 바라보지만 각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며, 대중은 이 둘 간의 논의를 혼란스럽게 바라보며 현대 유전학의 사회적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과학의 역사를, 과학의 성취와 한계를 제대로 바라볼 것을 촉구하며 이 책을 저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중 과학사 저술이 유행하고 그 판매 부수가 나날이 치솟고 있는 북미 시장에서 새로이 출간되는 대중 과학사 저술에 대해, 그리고 일반적인 대중 과학서들의 의미와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 책은 여러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책이 그 표현의 간결함, 현학적이고 감동적인 문장 스타일, 그리고 중요한 사회적 질문들을 제기하다는 측면에서 독서의 즐거움과 지적 만족, 그리고 사회적 고민을 던져준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책이 대중에게 접근 가능한 유전학의 역사를 서술하고, 이를 통해 현대 과학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함의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를 위한 대중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성공했다면, “응용 과학사”로서의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사적 정확성을 희생하고 정치한 학문적 논의를 다소 단순화하는 것에 대해서 그 역사적 서술의 목적과 해석의 폭과 깊이가 다를 수 있는 과학사 학자가 이러한 점에 기반을 두고 이 책을 비평하는 것 역시 비생산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평자가 내린 결론은 여전히 대중 과학사 저술에 대한 과학사 학자들의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복잡 다단한 과거의 역사적 발전을 표준화하고 도식화하여 이러한 과거의 분석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이론과 실천, 정책들을 끌어내는 것이 과거의 오류들을 잊게 하고, 현재를 성찰적으로 돌이켜보게 해 주며, 미래를 새롭게 기획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무케르지의 서술처럼 유전학의 역사를 과거의 오류가 극복되는 진보의 역사로 서술하더라도,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는 여전히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복잡하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반성과 성찰은, 오히려 보다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문제 제기, 성찰을 저해할 수도 있다. 유전학의 발전에 대한 희망 섞인 전망을 내 놓기 위해서, 역사적 증거가 선택적으로 사용되고, 그 복잡한 과학의 발전 과정과 사회와의 상호 작용이 잘못 이해되고, 유전학으로 인한 사회적, 도덕적 오류와 실패들이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처럼 역사를 해석한다면, 이러한 저술이 현대 과학의 역사와 그 함의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 과학의 사회적 의의와 그 역할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는 응용 과학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Siddhartha Mukherjee,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New York: Scribner, 2010)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까치, 2017)]. 이 책은 2015년 미국 공영 방송 (Public Broadcasting Service)에서 켄 번스 (Ken Burns) 감독의 “Story of Cancer: The Emperor of All Maladies” 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하여 미국 전역에 방영되었다. 이 책에 대한 과학사 학자 Steven Shapin의 리뷰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Steven Shapin, “Cancer World: The Making of a Modern Disease,” The New Yorker (November 8, 2010), 78-83.

[2] 과학사 학자와 대중 과학 저술들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박민아, “과학사의 응용: 차이를 이해하기”, 『한국과학사학회지』 35:3 (2013), 465-479.

[3] Evelyn Fox Keller, The Century of the Gen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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