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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18), 201-204

[서평] 김연희, 『한국 근대과학 형성사 (한국의 과학과 문명 006)』 (들녘, 2016), 408쪽

by 미야가와 타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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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한국 근대과학 형성사 (한국의 과학과 문명 006)』 (들녘, 2016), 408쪽

미야가와 타쿠야 (宮川卓也)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대였다. 16세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래 서서히 늘어나던 동서의 교류는 19세기 제국주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충돌이나 격돌, 지배와 같은 형태로 변모해 갔다. 하지만 19세기 동서의 만남은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서양 열강의 일방적 침략이나, 각종 문물의 홍수와 같은 유입, 동아시아 각국이 오랫동안 조성해 온 전통 문화와 사상에 대한 강제적 변혁 등으로만 그려질 수 없다. 20세기 이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 시기의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갑작스러운 변화의 파도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한․중․일 각국이 취했던 각각의 독자적 대응 양태를 신중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늦게 개항을 맞이한 조선의 경우,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압력과 간섭을 받으면서 교섭과 저항을 통해 협조와 지원을 얻어내고 동시에 자발적으로 개혁의 길을 모색했다. 김연희의 『한국 근대과학 형성사』는 변혁의 핵심을 과학기술로 지목한 조선 (후에 대한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려 했는지, 들여온 과학기술로 인해 조선 사회 및 사람들의 인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변화 양상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이 시기 기술과 산업 등에 관한 연구가 그동안 축적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방대하고 다양한 연구 축적에 비해 개항기부터 대한제국기에 이르는 시기 벌어진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상황이 저자 김연희가 이 주제에 몰두하게 된 하나의 동기가 되었겠지만, 더 중요한 동기는 한국에 (근대) 과학이 어떻게 들어왔는가, 혹은 한국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오해의 극복에 있다.

그 오해는 1900년대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일본 지식인들, 몇몇 개화파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담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과학이란 없었으며 과학을 배울 능력도 없었다고 하는 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담론은 강점기 내내 식민 통치의 정당화 논리로 자주 언급되었는데, 대한제국 정부가 추진한 과학기술에 관련된 도전적 사업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거나 망각된 채 이 담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조선 말기부터 진행된 여러 개혁들의 구체적인 과정과 실태, 그 배경에 있던 지도자들의 세계 인식과 그에 기반을 둔 국가 건설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고민한 문제들, 당시 사람들이 경험한 커다란 변화의 양상을 생생하게 그려보려는 시도이다. 그 작업을 통해 저자는 강점기 이전 한반도에 근대 과학기술의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했음을 보임으로써 한국 근대 과학기술에 관한 오래된 오해를 불식시키려 했다.

저자의 시도는 서론에 제기된 여러 질문들로 표현된다. 예컨대 조선의 전통적 지적 체계와 서구에서 들어온 과학 사이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근대 과학 도입 과정, 결과, 기간이 분야마다 어떤 차이를 보였으며 그런 차이가 발생한 요인은 무엇인가, 조선에 들어온 과학기술의 변화 양상은 도입된 서양 과학기술 자체의 특징이나 조선 사회 및 지적 전통과 어떠한 관련이 있었고 또 어떠한 상호 작용을 보였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이다. 태양력의 도입과 ‘지구’ 관념의 보급은 단지 시간 체제와 지리 인식의 변혁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세계관을 크게 뒤흔들었고 하늘의 뜻을 유일하게 알고 전달할 수 있었던 임금의 상징적 권위에 균열을 냈다. 19세기 말 조선의 사회ㆍ경제적 요건이 철도와 전차에 대한 정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게 했으며, 이미 한반도의 지리적ㆍ기후적 조건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해 온 농업에서는 새로운 농법과 농학의 도입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이처럼 20세기 전환기 정부 지도자들이 들여온 서구 과학기술은 분야에 따라 다른 대응을 필요로 했는데, 그 요인은 각 분야의 특성, 조선의 사회적 여건, 지도자들의 인식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작용한 결과였다. 제3장부터 제8장에서 다루어진 군사 기술, 농법, 교통 및 통신 기술, 하늘의 과학, 교육 제도 등 구체적 주제들을 통해 이 책은 조선 사회의 현실이 반영된 고민과 대응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과학기술이 서구에서 비서구권으로 이입되는 과정이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각 시대와 지역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었음을 보여준 많은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서술 방식은 여전히 한국 역사학계에 강하게 남아 있는, 19-20세기에 들어온 ‘근대 과학’을 완성된 것으로 보아 꼭 따라잡아야 하는 목표 지점으로 간주하는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에 쏟아진 서구 과학기술은 서구에서도 급속한 변화 혹은 발전 과정에 있었고, 낯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나라들에는 사상적 토양과 사회ㆍ경제적 요건 차이가 존재했으며, 그로 인한 인식과 대응에 차이가 발생하여 유입 후에 서구 과학기술에 부여된 의미와 역할 또한 달라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여러 층위의 차이들을 이해하려는 작업이야말로 조선 혹은 대한제국 시기에 있어 과학기술이 지닌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다양하게 전개된 과학기술 관련 사업의 역사적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도출하게 해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대한제국기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과학기술 관련 사업들이 실패로 끝났더라도 조선 정부가 주도한 다양한 시도들을 점검하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 책은 제시해 준다. 고종을 필두로 한 조선의 지도자들은 열강들의 대두 배경에 과학과 기술이 있음을 간파하여 조선도 신속히 ‘부국강병’을 이룩하도록 필요한 방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그들은 늘 여러 방해 요인과 다투어야 했다.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한 청조의 대조선 전략 변화, 해마다 강해진 일본의 간섭, 일본과 청나라의 긴장 관계와 그 뒤에 숨은 영국의 암약, 유교 전통을 고수하며 부국강병 정책에 반대한 국내 저항 세력 등은 고종과 그의 추종자들이 진행하고자 한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자꾸 저해했다. 그와 더불어 정부의 재정 문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 부족 등과 같은 요인들도 철저한 개혁과 새로운 교육 제도의 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근대화’의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서술은 당시 통치자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머무르게 하기 쉽지만, 우리는 더 큰 역사학적 의의를 여기서 찾아내야 한다. 19세기 후반 후발국에서 과학과 기술의 이전 문제, 나아가 근대화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져야 하며, 그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한 점에 바로 이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역사를 따지려 하는 낡은 역사관을 벗어나고, 한국 근대사에 관한 끈질긴 오해를 풀며, 아울러 한국의 특수성에만 귀결되지 않는 큰 문제군에 이 책은 물음을 던지려 한 것이다. 저자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약 35년이라는 기간에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전개 과정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 그 뒤에 이어지는 식민지 지배 35년 못지않게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를 이 책은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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