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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 연혁

posted Mar 24, 2014 last updated Mar 25, 2014
한국과학사학회는 4.19혁명 직후에 태어났다. 과학사가 젊은 학문임을 생각하면 비교적 빠른 출발이었다. 일본과학사학회는 1941년, 중국과학기술사학회는 80년에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 7월 16일 서울의대 구내다방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회 창립총회에는 30여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김두종과 이덕봉이 각각 회장, 부회장으로 뽑혔고 평의원회를 구성했으며 임채원, 조형원, 최정봉이 간사로 임명되었다.

이에 앞서 7월 9일 13명의 발기인들이 모임을 가졌는데 학회 결성을 주도한 것은 김두종이었다. 김두종은 해방직후 서울대 의대에 의사학교실을 만들었고, 47년 대한의사학회를 창립해 윤일선, 심호섭에 이어 회장으로 있었다.

김두종은 역사에 관심있는 과학자들을 규합한 것 같다. 이덕봉(생물학), 장기원(수학), 최윤식(수학), 권녕대(물리학), 김태봉(화학), 이종진(화학), 이민재(생물학)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발기인의 절반 정도가 의대에서 나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과의 강석영과 의사학교실의 조교 임채원이 주로 준비실무를 맡았다. 

한국사에서는 일찍이 「조선과학사」를 낸 홍이섭이 참여했고 과학사를 전공으로 내세우며 저서를 내고 강의를 하던 박익수도 끼였다. 그밖에 한국과학사를 독학하고 있던 박태규, 송상용도 창립회원이다. 

학회는 창립총회에서 과학사강좌 설치 및 과학박물관 재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대학 총장들에게 건의문을 보냈다. 2년 뒤에는 「과학문화사」,「과학사화」집필 계획도 마련했다. 행사로는 해마다 학술강연회를 연 건이 고작이었다. 

63년 말 총회를 끝으로 학회는 긴 동면에 들어갔다. 그렇게 된 데에는 서울의대 의사학교실의 변화가 무관하지 않다. 회장 김두종이 숙명여대 총장으로 가면서 간사 임채원도 따라갔고 의사학교실은 침체되어 일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학회가 잠자고 있는 동안 몇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66년에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가 출간되었고 이듬해에는 박성래와 송상용이 과학사를 전공하러 미국유학의 길에 올랐다. 2년만에 귀국한 송상용은 8년전부터 이름만 걸쳐 놓았던 학회간사직을 70년부터 도맡게 되었다. 

71년 일본 과학사학자 나카야마가 서울에 오자 학회는 초청강연회를 마련했다. 8년만에 처음 열린 이 행사를 계기로 학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72년 총회에서 한국과학사학회는 거듭 태어났다. 박익수와 전상운이 새 부회장으로 뽑혔다.

학회는 사회의 주목을 끌기 위해 한국과학의 쟁점을 토론하는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했다. 때마침 파리에서 「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되어 떠들석했다. 창립 12돌을 내세워 첫 토론회는 금속활자들 다루었는데 그 반향은 상당히 컸다. 쟁점 토론회는 첨성대(73· 79· 81년), 지전설(75년), 구선(76년)으로 이어지면서 그때마다 바람을 일으켰다.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주년(73년), 산소발견 200주년(74년), 양자역학 50년(76년),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79년), 쿤의 과학사서술과 인접과학(80년), 다윈 100주기(82년) 등 발표회는 과학자와 다른 분야 학자들의 참여를 확대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밖에도 의학사의 제문제(77년), 과학사와 과학박물관(78년), 전통사상과 현대과학(80년), 과학사의 위치(82년) 등을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74년 제14회 국제과학사회의가 일본에서 열렸다. 한국으로서는 첫 번째 기회였다. 이때를 전후해 테오도리테스(프랑스), 블랜피드(미국), 라흐만(인도) 등 세 과학사학자가 서울을 다녀갔다. 75년 김두종이 미국에서 사의를 표명해와 15년만에 회장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권녕대가 회장으로 뽑혀 4년 재임했고 그 다음에는 과학사를 주전공으로 하는 박익수, 전상운으로 이어졌다. 

77년은 특별한 해였다. 미국에서 한국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성래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영식, 그리고 송상용이 각각 외국어대·서울대·성균관대의 전임이 되었다. 이제 과학사 전임교수를 가진 대학은 성신여대(전상운), 전북대(오진곤)을 합쳐 다섯으로 늘어났다. 같은 해 과학사학회는 전국역사학대회에 가입했다. 이것은 과학사가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았음을 뜻한다. 이때 미래학회는 과학사부회를 만들어 봄모임을 대체했고 82년과 92년 두차례나 대회를 주관했다. 80년대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가입했다. 과총의 회원이 된 것은 과학사가 과학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학회는 79년 과총의 「한국과학기술30년사」편찬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에도 참여했다. 또한 그해 학회는 산학협동재단의 연구비를 얻어 과학문화재 조사사업에 착수했다. 최종보고서는 84년에 나왔고 연구한 여러 점의 문화재가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70년대에는 박성래가 이른바 '과학사운동'을 벌여 회원을 400명대로 확장하고 과학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학회지도 못내고 행사만 자주 여는 학회는 공허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과학사학회지」는 79년에야 창간되었다. 편집인은 송상용이었고 연간으로 나오다가 91년 김영식이 이어 받으면서 연 2회 나오기 시작했다.

81년부터 학회는 한일과학사 세미나를 열었는데 제1회는 서울에서, 2회는 83년 교토에서, 그리고 3회와 4회는 86년 서울과 91년 교토에서 번갈아 개최했다. 제15회 국제과학사회의(에딘버러, 77년)에 학회가 처음으로 참석했으며 제16회(부쿠레슈티, 81년) 때 북한학자들과의 대화가 처음 이루어졌고 국제 과학사·과학철학연합(IUHPS)에 학회가 정식으로 가입했다. 82년 학회는 과학사에 뜻을 둔 젊은이들을 훈현하기 위해 과학사워크숍을 시작했다. 이 모임은 2년 동안 11회까지 계속되었다. 86년에는 대우재단 후원으로 과학사 월례토론회가 조직되어 8회까지 이어졌다.

84년 간사에 임명된 김영식은 학회의 운영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는 행사를 최소로 줄이는 대신 내실을 다지는 방향을 택했다. 이 방향전환을 뒷받침한 것이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의 탄생이다. 84년 석사과정으로 출발한 협동과정은 4년 뒤 박사과정을 설치했다. 이공계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94년 창립 10돌을 맞은 협동과정은 30명 가까운 석사를 배출햇고 박사 1호가 나왔다. 이들의 학위논문, 학기눈문이 발표와 학회지를 메워 학회의 수준을 크게 올려놓았다.

90년대에 들어와 학회는 '과학사 연구의 국제동향', '과학사와 과학철학' 등 세미나를 다른 학회들과 공동으로 가졌고 한국과학재단과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의 프로젝트를 잇달아 맡아 처리했다. 93년에는 엑스포 전통과학 국제심포지움을 주관했고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국제과학사회의에 참가했으며 87년 차기회의를 한국에 유치하기도 했다.

학회는 91년 송상용 회원이 출연한 기금으로 한국과학사학회 논문상을 제정했다. 젊은 학자들에게 주는 이 상은 92년에는 김근배가 받았고 93년에는 김미경이 수상했다. 그동안 학회장은 이은성, 유경로, 이찬, 송상용, 박성래, 김영식, 이성규, 황상익, 김기윤, 성영곤이 차례로 맡았다. 현재(2011년) 회장은 박희주(명지대)가 수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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